 
햇살 담고 달빛 품은 가로내 반딧불이 캠프 하동 횡천초, 1박2일 가로내 반딧불이 여름방학캠프 운영…과학탐구 활동
하동 횡천초등학교(교장 류순점)는 지난 11·12일 1박 2일 동안 가로내 반딧불이 여름방학 캠프를 실시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캠프는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자연 속에서 우정을 나누며 협동심과 배려심을 함양하고자 횡천강 생태탐사, 전자통신, 슈퍼 문(Moon) 관찰, 에어로켓 발사 등 다양한 과학 탐구활동 중심으로 이뤄졌다.
3~6학년이 참여한 각종 탐구활동은 가로내 반딧불이 과학동아리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
낮에는 횡천강 생태탐사 활동을 통해 평소 책에서만 보았던 다양한 동·식물들을 관찰하면서 자연과 하나 돼 호연지기를 기르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는 전자회로도 보는 방법을 배우고 직접 전자키트를 조립했는데 학생들은 처음 해보는 활동이라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서로 도와가며 완성해가면서 우정을 나누고 협동심을 길렀다.
그리고 밤에는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했는데, 렌즈를 통해 보이는 슈퍼 문(Moon)의 신비로움에 학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운동장에 친 텐트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아이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아갔다.
캠프에 참여한 6학년 정원민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여러 가지 체험활동을 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며 “특히 천체망원경을 통해 본 달이 정말 신기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소감을 말했다.
류순점 교장은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도우면서 체험활동에 즐겁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평소 하기 힘든 다양한 과학 체험활동이 이뤄져 더욱 뜻 깊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횡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함께 꿈을 키워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



하동화력·지역주민 태양광발전사업 손잡아 하동군, 하동화력본부-금성․금남면 발전협과 신재생에너지 매매협약 체결
하동군과 한국남부발전(주) 하동화력본부, 금성․금남면 발전협의회가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에 부응하고 신재생 에너지 마을 구현을 위해 손을 잡았다.
하동군은 14일 오전 11시 하동화력본부에서 여태성 부군수와 이근탁 하동화력본부장, 엄현곤 금성면 발전협의회장, 황규석 금남면 발전협의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태양광 발전사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날 업무협약에 따라 금성․금남면에 거주하면서 하동에서 100KW 이내의 태양광을 개발하는 사업자는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를 하동화력본부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동화력본부는 3000KW 이내에서 계약체결일로부터 향후 12년간 자체계약 기준가격의 98% 가격으로 태양광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지역주민은 신재생 에너지 생산과 함께 안정적인 발전 수익을 창출하게 됐으며, 하동화력본부는 총발전량의 일정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한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공급의무제도(RPS)를 일정부분 충족하게 됐다.
군 관계자는 “지역주민과 하동화력본부가 태양광발전사업에 뜻을 함께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개발․보급이라는 국가 에너지 정책에 부흥하는 것은 물론 하동군을 ‘신재생에너지 도시’의 이미지로 부각되는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활력 넘치는 경로당 위해 구석구석 찾아갑니다 하동군,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노인분과 공동…횡천면 온동마을로 다섯 번째
하동군은 지난 13일 횡천면 온동마을 경로당에서 올 들어 다섯 번째 경로당 운영 활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고 14일 밝혔다.
경로당운영 활성화 프로그램은 하동군과 하동군지역사회복지협의체 노인분과가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13개 읍·면 경로당을 순회하며 공동으로 추진하는 노인복지 시책의 하나다.
이날 횡천면 온동마을에서 진행된 경로당 활성화 프로그램에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노인분과 위원 8명과 횡천 온동마을 어르신 35명이 참석한 가운데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먼저 노인분과 위원들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경로당 내부에 노인강령 및 경로당 이용수칙 안내문을 붙이고, 경로당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는 등 환경정비 활동을 했다.
이어 참석한 어르신들과 즐거운 레크리에이션과 함께 스트레칭 운동기구를 활용한 건강체조로 웅크린 몸을 활짝 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하동군 주민복지실 노인복지담당주사가 기초연금 및 폭염예방 등 현재 군이 추진 중인 노인복지 시책과 군정 전반을 소개하고 존경받는 어르신의 역할 등을 당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모(69) 할머니는 “음악에 맞춰 스트레칭 줄로 운동을 하니 몸이 한결 시원하다”며 “횡천면에서 가장 오지인 우리 마을에 찾아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노인분과는 그동안 복지혜택을 덜 받는 사각지대 경로당을 선정해 매월 한 차례 전 읍·면을 순회하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데, 지난 농번기에 개최하지 못한 점을 감안해 8월에는 횡천면에 이어 오는 27일 금성면을 방문할 예정이다.
--------------------------------------------------------------------------------

펀(Fun)의 전쟁, 유머는 선택이 아닌 필수 하동군, 신상훈 교수 초청…금남면에서 150회 찾아가는 군민자치대학 개최
하동군은 14일 오후 3시 금남면무소에서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신상훈 교수를 모시고 ‘펀(Fun)의 전쟁, 유머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주제로 제150회 찾아가는 군민자치대학을 개최했다.
개그작가로 활동 중인 신상훈 강사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코미디 세상만사’, ‘폭소클럽’, 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 ‘순간포착 당신이 특종’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칼럼니스트,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개그코미디학부 학부장, 토킹 스피치 대표로 재직 중이며, 20년의 개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1년에 200회 이상 강연하는 명강사로 알려졌다.
신상훈 강사는 이날 강연에서 “유머란 특별한 스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소소한 것들을 조금만 여유 있게 생각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재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유머지수 분석, 후천적인 노력만으로 유머리스트가 될 수 있는 비법, 다양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서 나오는 고차원적인 유머 구사법 등을 재치 있고 유쾌하게 설명했다.
자치대학에 참석한 군민들은 “강의를 들으니 웃음이 전파돼 행복 바이러스가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며 “유익한 2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강의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한편, 다음 제151회 찾아가는 군민자치대학은 넥스트리인터넷 최윤규 대표를 초빙해 ‘다르게 보는 생각의 힘’이라는 주제로 내달 11일 오후 3시 화개면사무소에서 개최된다.
--------------------------------------------------------------------------------

어울림 통해 배움과 나눔의 가르침 실천 하동군청소년봉사단, 지역 저소득 아동과 대도서 물놀이하며 1:1 멘토링
하동지역 청소년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저소득층 아동과 함께 가슴 따뜻한 멘토링 봉사활동에 나섰다.
14일 하동군에 따르면 청소년봉사단 소속의 자원봉사자들과 하동 드림스타트 이용 아동 등 30여명이 대도 파라다이스에서 하동군자원봉사센터가 진행하는 ‘2014 여름방학 멘토링 캠프’에 참여했다.
이번 여름캠프는 지역 내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즐거운 여름방학의 추억을 선사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청소년봉사자와 지역아동은 1대 1 멘토링을 맺고 수구를 이용한 물놀이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에 맞춰 즐거운 여름 한때를 보냈다.
특히 안전하고 알찬 여름캠프 진행을 위해 하동군생활체육회의 전문 강사진들이 안전사고 예방과 수구를 이용한 물놀이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적극 지원해 더욱 뜻 깊은 봉사활동이 펼쳐질 수 있도록 앞장섰다.
한편, 2013년 경남도 주관 자원봉사 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한 하동청소년봉사단은 지역 청소년들이 봉사활동과 재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하동군자원봉사센터(880-6528)를 통해 하동지역 청소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버려지는 쓰레기도 다시 한 번∼! 하동군청소년수련관, 자원봉사단 하동전통시장 정화활동·환경보호 캠페인
하동군청소년수련관은 하동장날인 지난 12일 오전 시장통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도 다시 한 번~!’이라는 슬로건으로 환경보호 캠페인과 쓰레기 줍기 환경정화 활동을 실시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날 환경보호 캠페인 및 환경정화 활동은 하동군 녹색환경과와 연계해 이뤄진 행사로, 하동군청소년수련관 소속 청소년자원봉사단 ‘자봉자봉’ 회원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불법 투기되고 있는 쓰레기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줄일 방법을 모색하고, 장보러 나온 주민들에게 쓰레기 배출기준과 요령, 일상에서 쉽게 버려지는 재활용품의 활용방법 등을 홍보하며 재활용품과 비닐류를 담을 수 있는 쓰레기봉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은선(금남고)·임수정(금남고)·백서정(하동여고) 학생은 “평소 학교급식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재활용품 활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청소년자원봉사단 ‘자봉자봉’은 노인요양원 봉사활동, 청소년축제 ‘청·바·지’ 체험활동 진행, 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 활동 보조 등 다양한 청소년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하동군청소년수련관이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청소년은 청소년수련관(880-6038)으로 문의·신청하면 된다.
--------------------------------------------------------------------------------
영호남서 순국한 항일투사 28명 건국훈장 하동문화원, 향토사학자 정재상 씨 서훈신청 결실…경남 출신 12명 포함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국내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하동 출신 정승유·이덕길 의병장 등 28명이 한 향토사학자의 노력으로 순국 106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하동문화원 정재상 향토사연구위원장(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지난 2월 토지주택박물관과 국가기록원에서 항일의병장 등 259명의 문건을 찾아 의병장 41명의 공적서를 만들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는데 이중 28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됐다고 14일 밝혔다.
정 위원장의 노력으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는 항일의병장 28명은 경남 12명, 경북 5명, 전남 6명, 전북 3명, 강원도 출신 2명이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7∼1909년 50∼400여명의 의병대를 조직해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 일대인 지리산, 가야산, 태백산맥에서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 토벌작전’ 때 체포돼 학살 당하거나 전사 순국했다.
특히 하동 출신 정승유(鄭勝有) 의병장은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체포돼 옥에 갇혔으나 탈옥해 또 다시 항쟁하다 체포된 후 끝내 총살됐다.
합천 출신 신상호(申相鎬) 의병장은 지리산과 가야산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칼로 도륙당해 순국했으며, 함양 출신 김찬언(金贊彦) 의병장은 마을이장으로 활동하며 격문을 돌리다 체포돼 총살됐다.
또 강원도 출신 김수영(金壽榮) 의병장은 삼척 육백산을 중심으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끝내 체포돼 1907년 12월 총살됐으며, 전남 곡성의 손학곤(孫學坤) 의병장은 체포된 후 일제에 의해 머리가 박살나 처참하게 순국했다.
함평 출신 이정섭(李丁燮․이원범)은 호남창의동맹 기삼연 의병대장의 후군장으로 활약했던 이남규 의병장의 아들이다. 이남규는 1990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아들 이정섭(이원범)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바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항일투사 이정섭(이원범)의 전사(戰死)기록 발굴로 인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부자(父子)가 독립유공자가 됐다. 또 전북 진안 출신 김진명(金辰明) 의병장은 목이 잘려 순국했다.
한편, 문건을 찾아 공적서를 만들어 서훈을 신청했던 정재상 위원장은 “항일의병들은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바친 분”이라며 “이번 훈장추서는 항일투사들의 민족애와 나라사랑 정신의 숭고한 뜻을 다시 한 번 생각 하게 한다”고 밝혔다.
<건국훈장 받는 28명 공적요지> ◇ 경남(12명) ▲정승유(鄭勝有~1908 12 15·경남 하동군 진교면)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박매지 등과 함께 하동 산청 진주 등지에서 의병 300여명을 규합해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러던 중 정승유는 1908년 7월 중순 하동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체포돼 하동경찰서 감옥에 수감됐다. 하지만 그는 먼저 수감돼 있던 박인환(박매지), 권석도 등과 함께 감옥을 부수고 탈옥했다. 그는 이후 계속 항일투쟁을 벌이다 12월 15일 하동진교에서 다시 체포돼 압송되던 중 하동군 양보면 봉곡촌(鳳谷村)에서 동지 2명과 함께 총살됐다. ▲이덕길(李德吉~1909 3 21·경남 하동군 악양면) 의병장은 구한말 한병 상등병(군인) 출신으로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 일대인 하동 산청 함양 진주 구례 곡성 광양 등지에서 이학로, 박매지, 황낙현, 노성화, 최경순, 우수보, 권석도, 전재수, 심상근, 이춘이, 김채홍, 송명운 등과 함께 의병 3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결사 항전했다. 그는 특히 의병대의 훈련교관으로 활약했다. 그러던 중 1909년 3월 14일 산청군 백곡면(栢谷面) 신대리(新垈里)에서 일본군 매계(梅溪)수비대와 교전을 벌이다 체포됐다. 이후 그는 3월2 1일 총살됐다. ▲신상호(申相鎬·36세, 1872~1908 8 31·경남 합천군 봉산면 송림)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남 합천군 가야산 일대와 산청군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31일 합천군 삼가 평구(平邱)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다 휘하 의병 4명과 함께 체포됐다. 이후 일본군은 신상호 의병장만 칼로 잔인하게 찔러 죽였다. ▲김홍대(金弘大~1907 10 28·일명 김창석․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인 함양 산청 남원 무주 장수 등지에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제에 항거했다. 그러던 중 1908년 5월 12일과 13일 함양남방 약 50리 지점인 마천면 추성(楸城)에서 의병 60여명을 지휘하며 격전을 벌였으나 의병 10명이 전사했다. 이후 김홍대는 10월 28일 오전 6시 함양군 북방 약 150리 부근 대곡동(大谷洞)에서 체포돼 총살됐다. ▲백운하(白雲下~1908 8 21·경남 밀양 무안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를 중심으로 의병 6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이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21일 밀양군 무안동(密陽郡 武安洞) 부근에서 의병 6명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됐다. 이날 백운하 의병장을 비롯한 7명이 총살됐다. ▲이두익(李斗益~1908 5 20·경남 삼가군 모고면)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남 합천 삼가 거창 등지에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는 특히 손태주(孫太朱·마산), 이준명(李俊明·성주), 영기선(榮基善·영산) 등 의병 수십명과 함께 1908년 4월 8일 합천우체국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5월 20일 삼가군 모고면(毛古面)에서 체포돼 총살됐다. ▲이안옥(李安玉~1908 8 31·경남함양군 휴천면 목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함양 산청 진주 등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 8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31일 함양군 동남쪽 15리 목동(木洞) 부근에서 동지 2명과 함께 체포돼 산청군 서방 약 40리 오봉산(五峯山)에서 총살됐다. 그리고 동지 2명은 9월 2일 함양군 추성(楸城) 남방 40리에서 총살당했다. ▲김순오(金順吾~1908 9 15·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촌)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지리산 일대인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 일대에서 수십명의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일본군에 맞서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1908년 9월 15일 김찬언(金贊彦) 등과 함께 함양군 일대에서 격문을 돌리다 체포돼 총살됐다. ▲김찬언(金贊彦~1908 9 15·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촌)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지리산 일대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촌(倉村)에서 마을 동장(洞長)을 하면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그러던 중 1908년 9월 15일 같은 마을 김순오(金順吾)와 함께 격문을 돌리다 체포돼 두 명이 함께 총살됐다. ▲김진규(金振奎~1908 4 25·경남 거창군 가북면 심방)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인 거창에서 유종환(兪宗煥) 의병장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며 거창인동 신방 도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8년 4월 25일 유종환, 김진규 등 의병 24명이 거창군 인동(거창 동북 약 30리)에서 숙영했다. 이후 이들은 거창 동북방 약 45리 심방(尋芳)에서 일본군과 조우, 격전을 벌이다 김진규를 비롯한 의병 9명이 전사하고 유종환 등 4명은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문봉래(文奉來~1908 6 7·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의병 150여명을 지휘하며 경남 의령 창녕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8년 6월 6일 의령북방 약 30리 부근 갑을동(甲乙洞)에서 문봉래가 지휘하는 의병 50명이 주둔했다. 이후 문봉래 의진은 6월 7일 갑을동 부근 양성동(陽成洞) 학교에서 숙영 중 새벽 2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문봉래를 비롯한 의병 12명이 전사했다. ▲성만석(成萬石~1908 8 3·경남 합천군 삼가면 목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남 황매산 일대인 삼가군 합천군 등지에서 의병 7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3일 삼가군 서북 35리 부근인 목동(木洞) 서남 5리에서 일본군과 조우, 격전을 벌였으나 성만석을 비롯한 5명이 전사했다. ◇ 경북(5명) ▲김성달(金聖達·27세, 1880~1907 9·경북 문경군 신동면 노목)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북 일원에서 의병 6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7년 9월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다 체포된 후 발각돼 총살됐다. ▲김용출(金用出·25세, 1882~1907 9·경북 화안군 달미면 광동리)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 초부터 경북 일원에서 60여명의 의군을 조직해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이며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던 중 1907년 9월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다 체포돼 총살됐다. ▲김직현(金直玄·32세, 1875~1907 12 14·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경주 출신의 이모(李某) 의병장과 함께 1907년 초부터 영천 청송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7년 12월 14일 영천군 신촌면 하란동(新村面 下蘭洞) 부근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중 일본군과 조우, 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체포된 후 순국했다. ▲박인시(朴仁是~1908 8 26·경북 고령군 명곡)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북 고령과 경남 거창 일대에서 의병 15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이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26일 의병 20여명과 함께 경북 고령군 서북방 약 35리 지점인 명곡(明谷)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휘하의병 15명이 전사했다. 이날 박인시 의병장은 체포돼 총살됐다. ▲김성칠(金成七~1907 12 19·경북 봉화군 황엽령)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북 봉화군 일대에서 채모(蔡某) 의병장과 함께 의병 2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1907년 12월 9일 일본군 수비대와 황엽령(黃葉領) 백산 서방에서 교전을 벌이다 채의병장을 비롯한 의병 31명이 전사하고 김성칠은 체포돼 총살됐다. ◇ 전남(6명) ▲손학곤(孫學坤~1908 4 29·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계리)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 지역인 곡성 구례 광양 하동 남원을 중심으로 소광선(蘇光先) 의병장과 함께 의병 15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1908년 4월 28일 무렵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남 곡성군 동계리에서 체포됐다. 이후 그는 4월 29일 일본군 숙사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후 머리가 박살나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정섭(李丁燮․이명 이원범~1908 11 7·전남 함평군 식지면)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그의 부친 이남규(李南奎)와 함께 기삼연 의진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던 중 1908년 11월 7일 그의 부친 이남규(기삼연의 후군장)와 전주 남문 밖에 살고 있던 이내구(李內逑)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돼 3명 모두 총살됐다. ▲김권석(金權石~1908 7 7·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범계리 천평) 의병장은 을사늑약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 일대인 구례 곡성 남원 하동 등지에서 의병 2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1908년 7월 7일 전남 구례(지금의 곡성군) 천평(川坪·구례 서남방 약 50리)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김권석을 비롯한 4명이 전사했다. ▲김학삼(金學三~1908 6 14·전남 구례군 구례읍 독자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 일대인 전남 구례에서 신모 의병장의 부장(副將)으로 활약하며 일제에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1908년 6월 14일 김학삼은 의병 30명과 함께 구례군 독자동(讀子洞)에서 일본군과 조우, 치열한 격전을 벌이다 김학삼을 비롯한 9명이 전사했다. ▲최상광(崔相光~1908 6 14·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리)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지리산 일대인 구례 곡성 광양 하동 남원 등지에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최상광은 1908년 6월 14일 전남 구례군 상사리(上沙里·구례 동북방 약 10리)에서 의병 20여명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최상광을 비롯한 6명이 전사했다. ▲김례중(金禮中~1908 4 7·전남 나주 월명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전남 나주를 중심으로 의병 70여명을 지휘하며 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김례중은 1908년 4월7일 나주 서방 약 20리 월명동(月明洞)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체포돼 총살됐다. ◇ 전북(3명) ▲김진명(金辰明·44세, 1863~1907 12 1·전북 진안군 진안읍)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 초부터 전북 진안을 중심으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대일 항전의 기치를 올렸다. 그러던 중 1907년 10월 19일 진안 경찰서와 우체국 등을 습격했다. 이후 그는 12월 1일 일본군에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참수(斬首․목이 잘려) 순국했다. ▲이내구(李內逑~1908 11 7·전북 전주 남문 외)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기삼연 의진에서 이남규(李南奎), 이정섭(李丁燮) 등과 함께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1월 7일 이남규, 이정섭과 함께 체포돼 3명 모두 총살됐다. ▲안내성(安乃成~1909 1 16·전북 재동 계수역)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전북 남원 지리산을 중심으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결사 항전했다. 그러던 중 안내성은 1909년 1월 16일 의병 30여명과 함께 계수역(契樹驛) 북방 약 20리 부근인 재동(在洞)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동지 5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 강원(2명) ▲김수영(金壽榮~1907 12 19·강원도 삼척 도계 육백산)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북 북부지역과 강원도 육백산(六百山) 탕실(湯實) 석개(石開) 등지에서 의병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던 중 1907년 12월 17일 강원도 삼척 도계 육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체포돼 12월 19일 총살됐다. ▲김성산(金成山~1907 11 18·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강원도 삼척군 장성면 황지(黃地)에서 의병 150여명을 지휘하며 일제에 항거했다. 그러던 중 그는 1907년 11월 18일 소백산맥에 있는 강원도 황지 및 경북 봉화군 고직령(古直嶺) 부근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나 의병 50여명이 일본군의 칼에 찔려 한꺼번에 전사하고 그는 체포돼 격살(擊殺)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