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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6 22:39
<단독취재> 제83회 춘향제 연변춘향선발 예선을 위한 중국연길 방문!
 글쓴이 : 편집부
 

 

제83회 춘향제 연변춘향선발 예선을 위한 중국연길 방문!

남원춘향문화선양회는 제83회 춘향제에 중국연변지역 83만명(남원인구 10배)이 거주하는 연변지역에서 춘향선발대회에 참여시킬 2명의 후보를 선발해 참여시키기 위해 "남원춘향문화선양회 소속 원로 최익우(前교장), 정형우(前교장), 김홍곤(前시부의장)과 정정희(선양회 부회장), 최창호(선양회이사), 최원근(지리산고향뉴스대표)과 함께 5일간의 일정으로 춘향예비후보 선출을 위해 11일 출국해 15일 입국했다.

300여명의 예비후보 참석자중에서 15명, 8명, 3명과 2명으로 5번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남원행으로 결정된 예비후보는 전례홍(20세), 송윤선(20세)로 결정됐다.

남원은 대표적인 문화는 춘향문화와 국악이다.

춘향문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이고 세계적인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해 남원국악관계자들은 그동안 꾸준히 노력해 왔다.

또한 남원은 대한민국국악의 모태이며 국악성지로 알려져 있고, 많은 명인 명창들이 배출된 지역으로서 남원에서 국악은 빠트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으로서 제83회 춘향이 예비후보를 선정하기 위해 남원선양회에서 출발한 6인을 비롯해 남원국악발전을 위해 노력해오면서 연변지역과 꾸준히 교류를 해왔던 국악진흥회 김익규회장과 강대인(전)회장 진용사무국장이 현지에서 함께 만나 선양회원들과 함께 하며 일정에 참여했다.

이번 연길방문이 더욱 의미가 깊은 것은 진도 씻김굿의 무형문화재 72호로 지정된 김오현선생이 함께 동석하여 중국연변시 가무단과의 우의를 다지고 문화교류를 지속적으로 가지기 위해 자매결연을 맺는 자리를 함께 하여 어느 때 보다고 큰 의미가 있었다.

이에 연변가무단 측에서 참석시킨 동석자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신호원장, 김홍영 부주석, 연변가무단 맹철학 단장, 함순녀 수석부단장(국회의원겸직), 김춘수 부단장, 박춘수 부단장, 김홍룡 당위부서기, 연변가무단 김주미선생, 박서성(전)단장, 임향숙 국민가수, 박주미 국민가수, 송미라 무용수 등이 축하펼쳐줬으며 일정이 마무리 되는 날까지 5일간을 함께 했으며 출국장까지 자리하며 한국에서 참석한 일행모두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여 한국에서 참석한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특히 함께 자리했던 김오현선생(씻김굿72호중요문화재)은 한국인의 소리문화 특성을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83만여명의 조선족들에게 소중한 우리의 소리문화를 알리고 위해 축하공연장에서 즉석 퍼포먼스를 하며 한가락 소리를 할 때에는 연길단원들도 함께 그 소리의 매력에 빠져들어 눈물을 보이며 감동을 보였다,

연길가무단과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19년 전에 이상호남원국악협회장과김동관 전)연변가무단장이(사망)의 인연에서 시작되어 국악진흥회 직전회장인 강대인회장과 박서성 연변가무단장으로 이어졌으며 상기 연길시의 중요직책에 있는 관계자들이(국회의원 장관급)다수 참여하여 한국에서 찾아간 일행에게 예의와 호의를 베풀어줘 다뜻한 동포애를 느꼈으며 그동안 이상호회장과 강대인 전)회장 김익규 현회장의 노고와 노력이 얼마나 많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춘향이 예비후보를 뽑고 연변대학과 중등고를 방문하여 조선족 3세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한민족들의 민속놀이인 놀뛰기와 그네 띠기 등 우리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며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관찰하고 이에 감동한 춘향문화선양회 정정희부회장이 금일봉을 전달하였고, 최창호 이사를 비롯해 이사들은 그자리에서 조선족 학생들에게 매년장학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였으며 이에 조선족을 대표하는 일행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중국 땅에 거주하게 된 조선족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만주에 살고 있었지만 여기서 말하는 조선족의 일반적 의미는 일제 강점기 무렵에 만주로 들어온 세대 또는 그들의 후손들이라 할 수 있다. (건국 이후 빠르게 증가하여 19491009만 명에서 20022649만 명으로 2배 이상 거주)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만주와 중국에 있던 우리 민족의 대부분은 귀국하였는데 일부는 익숙했던 중국과 만주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귀국을 늦추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남한, 미국, 일본과 북한, 중국, 소련 간에는 이념의 갈등이 심화되고 또한 6.25 사변이 일어나면서 귀국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중국 내 소수 민족 중의 하나가 되고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대표하는 연변가무단의 활동영역은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와 창춘[长春지린[吉林쓰핑[四平랴오위안[辽源퉁화[通化바이산[白山쑹위안[松原바이청[白城] 8개 지급시(地級市), 20개 현급시(县級市), 18개 현, 3개 자치현이다. 투먼[图们지안[集安] 9곳의 국경출입구가 있으며, 연변조선족들은 전 세계 130여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교류를 하고 있다. 

청나라 말기에 이주 금지령이 풀리면서 러시아와 일본 세력이 들어와 개발하였고, 여기에 타관에서 생계를 위하여 유입된 사람들이 급증함으로써 1931년 인구가 816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대거 귀국함에 따라 인구 증가세가 다소 누그러졌었다.

인구 구성은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후이족[回族], 시보족[锡伯族] 44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수민족 비율은 약 9%이다. 옌볜[延边] 지역에 집중 분포된 조선족은 자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한다. 이들은 노인을 공경하고 아끼며 노래와 춤에 능하고, 널뛰기와 그네타기 등 민속놀이를 즐긴다.

2013년 현재 연길시에는 83만 여명의 조선족이 우리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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