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일까 몰락인가?
글/오동명
인간관계에서 판단잘못으로 인한 시간소비·순수열정낭비가 몸을 서두르게 만든다. 그저 달리다보면 다 잊다가 얻는 게 있는데 바로 땀이었다. 애쓰는구나, 내게 주는 칭찬은 관계에서의 가벼움을 그까짓 것이라며 내 자존에 더 깊이 무게감이라는 자각으로 되돌려준다.
내 몸이 힘든 만큼 내 정신도 더 오롯하다. 앞에 턱 버티고 누워있으면서도 서있는 거대한 괴물 <야후저팬 돔>과 눈부터 마주친다. 저 운동장의 주인은 한국인? 손정의 씨를 당연하게 떠올리게 되고 ‘국적은 어디인가?’ 기자들의 질문에 그가 한 현명한 대답,
“나의 국적은 인터넷이다.”
도 덩달아 떠올린다. <야후저팬 돔>을 보았기에 생겨난 떠올림은 아니었다. 20인치 바퀴 미니벨로 자전거로 시속을 거의 25km 이상 내달려오면서 내내 떨쳐내지 못한 게 있어서다.
자살과 책임이라는 상념.
내겐 당장 무관한 덕목이라서 잡념이 될 테지만 계속 되새기다보니 잡념이 상념이 되고 이래서 내 의지대로는 떨쳐지질 않았다. 자살에 대한 남의 의견, 헤르만 헤세의 생각을 훔쳐본다.
‘자살자는 그 생각의 잘잘못을 고사하고 흡사 자기가 깊은 웅덩이 속으로 빠지게 되려면 밖에서 조금만 밀든가, 자기가 마음만 약하게 먹으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든가, 새끼손가락 하나만한 바위의 모서리 위에 서 있는 것과 같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운명선의 특징은 자살이 그들에게 있어서 적어도 그들의 공상 속에서는 가장 개연성이 많은 죽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중략) 자살자 가운데는 특히 힘차고 정력적이고 또한 대담한 성질의 인간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앓기만 하면 곧 열을 내기 쉬운 인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살자라고 하는, 언제나 다정다감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들은 조그마한 충격을 받아도 곧 자살의 관념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중략) 자살자에게 있어, 인생의 목적은 자기완성이 아니고 자기를 해체하여 어머니에게로, 신에게로 되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중략)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역시 자살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들이 구제를 삶에서 구하지 않고 죽음에서 구하기 때문이며 언제나 자아를 버리고 해체해버림으로서 태초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도리어 약한 것이 되어버리는 수가 있듯이, 전형적인 자살자는 얼른 보아서 약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자살이라는 것을 무슨 힘, 혹은 지주(支柱)처럼 여기는 일이 있는 것이다. (중략) 비참하고 불행한 꼴을 당할 때마다 죽음에 의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에서 오히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철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략) 어떠한 자살자라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살이라는 것은 물론 도망치는 한 방편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은 만부득이한 경우의 비겁한 방편이라는 것과 자기 손으로 자기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보다는 생활에서 악착같이 싸우다가 나자빠지는 것이 훨씬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잠언箴言론> 중에서
분명 살아 달리고 있는 나는 어느 덧 하마자키 해변에 닿아 바다를 마주하고 내 나라 한국을 향해 앉아있다. 헤세는 길게 썼지만 난 한 마디로 ‘비겁한 거야.’ 하며,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한편 또 다른 자살에 대해서는 ‘억울했던 거야.’ 하며, 오래 전 신문의 두 줄 기사로 묵살된 두 중학생의 자살에 대해 일갈한다. 자존감이란 단어로도 두 자살과 비교하게 된다. 자존감에는 진정성이 물론 내포하고 있다.
충남대와 전북대에서 장래 기자나 피디를 꿈꾸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던 나는 강의 과목과는 상관없이 노무현의 자살을 강의내용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시간으로 묵념을 들인 뒤 그가 살아생전 즐겼다던 노래를 기타를 치며 학생들과 함께 불렀다. 학생들도 나도 울었다.
“왜 우니?”
젖은 눈을 한 학생들은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난 화가 나서 운다.”
내 심정을, 아니 내 소신을 담아 강의했다.
“감정으로만 이 사건을 봐서는 안 된다. 결국 누구, 어느 진영을 위한 죽음이 되었는가?”
모두 시큰둥해했고 전북대생 중 한 명(ROTC 복장을 하고 있었다)에게선,
“교수님이니 참는다.”
라는 배려의 핀잔(?)까지 들었다. 강의를 끝내고 강준만 교수를 만났다. 교수 왈,
“이런 시점에 침묵을 해야지.”
혀를 찼다. 나는 침묵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다음 강의 때 학생들에게 나눠줄 양으로 글을 썼다. 말은 하는 순간 달아나지만 글은 두고두고 남아있을 것이며, 그러기에 내 소신을 담기에는 글이 적합했기 때문이며 말 대신 글로서 다시 학생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나는 이제 눈물이 안 납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눈물은커녕...
어제 전북대 제자들 앞에서 나는 그를 성토해야 했습니다.
"난 눈물이 안 난다. 전혀. 오히려 더 화가 난다.
조문객 5백만이 모였다는 그 숫자가 허위로 들린다."
그리고 그 숫자의 의미와 셈수방법을 꼬치꼬치 따져줬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수를 세는 노무현 측이나 언론의 형식주의를 따져댔습니다.
그리고 난 이내 제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10여 년 전 전주의 한 고등학교 두 학생의 자살을 얘기했습니다.
억울하다 해서 선택한 죽음입니다.
그 애들은 이렇게 유서에 썼습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훔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저희들의 무죄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방법밖에
선택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맞춤법이 엉망인 유서이지만 적어도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이 유서로 다시 운다며 제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유서엔 이런 진실이 있었던가?
대통령의 유서는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올라오지만 다시 떠올린 그 아이들의 유서는 다시 눈물 나게 했습니다.
바보 노무현? 우린 바보인 대통령을 뽑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 바보란
말을 정말 엉터리 같이 지금 쓰고 있더군요.
고등학생만도 못한,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참으로 무책임하고 편의적인 그의 죽음에 나는
어떤 방어도 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국민은커녕 자식이나 가족까지도 생각한 유서며 죽음일까요?
그는 일확출세, 천금을 노리는 사법고시출신이며 정치인이며, 그리고
국민 아니 적어도 그를 어떤 정치인보다도 더 믿었던 나를 속인 사기꾼일 뿐입니다.
왜 그런 자 때문에 며칠을 힘들게 살아야 했는지
이제 그가 간 뒤에도 화가 납니다.
어제 밤에는 그래요, 그가 즐겨 불렀다는 '사랑으로'를 부르고 부르고 불렀답니다.
죽음 앞에 그래도 숙연해지더라구요.
어제는 인천의 한 여대생이 그를 따라 목숨을 버렸답니다.
이 죄는 노무현 씨가 다 지어야 하고 지어줘야 합니다.
왜 그까짓 못나빠진 대통령에 이리 야단들인지.
인간을 어찌 고작 대통령에 비유합니까?
계급적 사대적 권위주의의 다름 아닙니다.
왜 이리 대통령에 약해지는 겁니까?
이제 그의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의 무책임에 국민이 따져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삽니다. 냉정하고 이성적이어야 이 기회에 이명박 같은 정치부류와
조중동이라는 극히 이기적 사대집단을 이 나라에서 완전히 뿌리 채 뽑아낼 수 있으며,
주변 눈치나 보고 저열하게만 살아 자기몸 하나 보전하면 그만이었던 우리의 권력자들을 따라 바뀌어버린 국민성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이제라도.
자살은 살인보다도 나쁘다고 배워왔습니다. 기독교에서도 그렇지요?
그 자살에 왜 구별을 해줘야 하는 건가요? 대통령이라 하여 예외, 아니 예우
오히려 지나치게 극진한 대접을 왜 해줘야 하나요?
베르테르 효과니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은 똑똑한 대통령이라 더 잘 알 겁니다.
그런데?
바보 노무현이 아니라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간 대통령일 뿐입니다.
그는 누릴 것 다 누린 사람입니다. 그렇게 죽어서도.
근데 그를 따라 죽는 젊은이들이나 티브보다 죽은 어르신네나...
많이 들어왔을 조의금으로 가족들은 아버지 노무현, 남편 노무현 대신하여
그들의 희생에 금전적으로나마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입니다. 야속하다 해도, 난 노무현으론 눈물이 나올 수 없지만
그를 따르는 여대생이나 젊은이들에게서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아직 꿈도 펴지도 못하고 죽음을 따랐습니다. 무모한 인간 때문에.
이제 국민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죽음 후를 내다보지도 못하는 그 하찮은 덜떨어진 이기적인 자에 의해 더 우리 젊은이들을 길로 거리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또 나에게,
네 앞에서는 누구도 욕을 먹어야 하냐? 너만 옳으냐 하실 지라도!
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릴 것 다 누린 그 무책임한 자 때문에...
적어도
‘자살은 해서는 안 된다. 맞서 싸워야 했다. 뒤에 우리가 있지 않는냐?’
는 말들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요?
‘억울하고 힘들면 그냥 죽어버리면 돼? 그저 폼 나게 유서 갈기고?’
오늘도 동네 공원에서 중학생들과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덧붙여 공히 이러더군요.
“쪽팔려요. 외국에서 뭐라 하겠어요? 난 잘 모르지만 죄를 지은 것 같던데
죽으면 단가요? 아님 만약 죄짓지 않았다면 끝까지 버텨서 당당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할 거 아니에요? 대통령을 한 분이고 더구나 말 잘하는 변호사잖아요.”
중학생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게 진짜 국민의 소리일 수 있으며
이를 여당이며 조중동이 여론수집하고 있을 게 뻔합니다. 이런 그들을 상대하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길에선 이 쓴소리가 더 많이 들립니다. 나가서 들어보십시오.
미디얼리티, 지금 또 다른 미디얼리티로 미디어가 일방통행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반이성은 고립을 자초합니다. 고립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혐오하는 집단의 크기를 불리게 하는 일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꼴이 될 것입니다.
이럴수록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반이성적인 자살자는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고 우리의 정신은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알량한 감정에 우리의 정신을 언제까지 내팽개치려 합니까?
그리고 모든 대학강의를 접었다. 아마도 분명하진 않지만 무력감은 나의 무능함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즈음 다시 이곳 <야후저팬 돔>과 모모치 해변까지만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갔다. 나의 체력은 5년 전과 부쩍 달라져 있었다. ‘그 때 내가 어떻게 해냈지?’ 몸이 몹시 힘들어했다. 그리고 정신마저 흐릿하다. ‘나 혼자 성토한들 무슨 의미가 있어.’
그 사이에 한국에 판권이 팔려 영화로도 만들어질 거라던 일본의 소설가며 영화감독인 무라카미 류의 소설 <반도를 떠나라>는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이 소설의 무대가 된 <야후저팬 돔>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 그는 그 소설을 쓰기 위해 10년의 공을 들였다는데... 하며.
정체 또는 후퇴.
나만은 아니다 라고 자위하려니 내가 한없이 졸렬해지고 만다.
내 앞에 펼쳐진 바다가 일본지도 상에 현계탄이라고 쓰여 있다. 현해탄이다. 무심히 듣고 말하던 현해탄에 예민해진다. 임화의 시 <현해탄>을 주머니에서 꺼내 스마트폰으로 뒤져 읽는다.
1936년, 그 시를 썼다. 일본인들이 부르던 현해탄을 그대로 써야 했을 것이다.
‘영원히 현해탄은 우리들의 해협입니다.’
시인은 현해탄을 건넌 일본땅이 마치 희망의 땅인 양 쓰고 있다.
‘청춘의 즐거움과 희망을’
현해탄이란 이름의 바다에 부여한다.
이중섭의 <현해탄>의 그림에서는 가족이 담겨 있다. 손을 번쩍 들고 아빠를 환호하는 가족이 바다(현해탄) 건너에 있다. 시인에겐 침략국이라기보다는 선진국으로 일본을 희망의 바다 또는 그래서 좌절의 바다이기도 한 현해탄이 화가 이중섭에게는 가족이 있는 일본 가는 길을 가로막는 그리움의 바다이다.
그러나 지금도 현해탄은 자주 쓰이고 있다. 임화는 시의 끝에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대한해협은 나라를 찾은 해방 이후에나 비로소 쓰였다. 독도가 그렇듯이.
청산하지 못한 과거만이 아니라 오히려 못난 과거를 부여안고 ‘우리는 아직도’ 그 바다를 현해탄이라고 부른다.
정체 오히려 후퇴된 기분.
발전하지 못하는 역사인식을 눈 앞의 바다이름에서 본다.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타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었고 한국땅을 향해 대한해협을 바라보며 일본땅에서 5년여 전의 주제로 다시 글을 써내려간다. 사실 이 글을 이곳 대한해협을 관통해 한국땅을 바라다보며 쓰고 싶었다. 감회가 어떨까? 다를까?
한 사람의 죽음을 단지 안타까움으로 슬퍼하고 아쉬워서 그리워할 수만은 없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단지 회고나 더욱이 산 자들의 이용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그 한 사람이 죽어서도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면? 줄 수 있다면?
죽음이 과거로 묻힌다면 그 죽음은 역사 속에서도 묻히고 만다. 공과를 역사에 맡긴다는 말을 하는 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하나 같이 현실의 비판 또는 비난을 피하려는 술수로 죽음 이후에까지도 사기를 치는 야비한 자들이며 비겁한 자에 불과하다. 현재에 제대로 고쳐놓지도 못한 역사를 어찌 미래에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죽음을 끝으로 여기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어낸 인간이다. 새로운 것이란 혼이다. 바로 정신이다. 내세는 모든 종교가 수단으로 내세우는 달콤한 유혹이거나 음흉한 현혹이며, 권세가들이 죽어서도 누려보겠다는 치졸한 허세이며 옹졸한 허영에 불과하지만 혼이나 정신은 그렇지 않다. 알지도 알 수도 없는 다음 세상의 것이 아닌 현재에서 지속되고 지금에 계속되는 미래 속의 현실이 바로 혼이며 정신이다.
그러므로 혼과 정신으로 그 한 사람의 죽음이 환생할 수 있다면 그 죽음은 결코 죽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현실에 그대로 남아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면 그 죽음은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혹하는 부활이 아니라 마뜩한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짜 부활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죽고 나면 혼도 정신도 거의 끝난다. 가족이나 친지에 의해서 그것이 남아 있을지라도 단편적이고 한시적이다. 그러나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혼과 정신으로 지속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이런 자는 죽어서도 엄청난 특혜자이다. 그 특혜를 단순하게 처리·처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본인 자신이든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든. 그런데 스스로 그 특혜를 무시해서 함부로 다루거나 버린다면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기리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을 모욕하고 모독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배웠다. 자기 목숨이라 하여 자기가 임의대로 어떻게 해보는 것은 죄라는 것을. 그것도 인간의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린 일찍이 배워 알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벌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자기 목숨일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이유를 더 많이 갖고 살아온 사람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물며 그 특혜를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끊어버렸다면 이는 무책임의 소산일 뿐 삶의 소신이 절대 될 수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지탄 받아 마땅하다. 요즈음 더욱 더, 말하고 웃고 화도 내다 머쓱해하던, 살아있던 그사람이 즐겨 불렀다는 대중가요가 자꾸 내 입에 절로 흘러나오는 것은 왜일까. 참으로 형편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 꼴을 보고 위안일지 자위일지 아님 그리움일지...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그 노래에선 또 이렇게 내 가슴을 저리게 하는 구절로 이어진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바람 부는 언덕에 재가 되어 홀로 갇혀 있는 그사람이 더욱 외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솔잎 하나 떨어지는 그 작은 땅 위에 내가 눈물을 흘려야 했고 눈물이 떨어진, 그사람이 묻힌 땅 위에 햇살이 비치면 더욱 그사람의 죽음이 야속하기까지 하는 것은 또 왜일까.
가슴 가슴마다 그사람을 반기건만 세상 세상마다 햇살은 햇살이 되지 못하고 더 짙어지는 어두운 그림자로만, 암울한 가슴에 확 막혀오는 답답함이 더 큰 것은 또 왜일까.
노래를 나도 모르게 웅얼거리다 말고 그에게 소리를 질러댄다.
“이러니, 살아있었어야지요.”
이제 듣지 못할 그 죽음의 귀로 다가가 본다. 평소 말도 많던 그러나 지금은 말없는 그에게 속삭이지 못하고 울분하며 악다구니를 쳐대는 이 가슴에선 여전히,
“이러니, 이 나라가 이모양이꼴이니 살아있었어야지요.”
이렇게 세상은 더더욱 어두워만 가고 있는데...
암담하기 그지없이 변해만 가고 있는데...
그는 스스로의 죽음으로 언제까지 침묵만하고 있을 것인가.
밝혀야만 한다던 어두운 곳은 더더욱 늘어만 가고 있건만...
그사람을 깨우는 일은, 이미 스스로 죽어버려 사라진 야속하고 때론 야비하기까지 한 그사람의 몫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책무이다. 예수님도 죽어 제자나 추종자들에 의해 환생되었고, 소크라테스 역시. 등등... 부활은 그가 아니라 그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이 치욕스럽더라도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 지키고자 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 한다. 이게 바로 민중의 시대에 민중인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니던가. 언제까지나 민중을 권력의 시녀로, 권좌의 하수인으로 내팽개친 채 그대로 내버려두고 보고만 있을 건인가. 언제까지 민중이 권력의 추종이나 그 추중의 변죽에서만 겉돌게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권력의 콩고물만 핥아먹고 빌어먹는 것으로 자족해야만 하나. 민중이 권력의 노예일 수는 없다. 민중은 그저 민중이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든 어느 집단에게든 종속된다면 이미 민중은 아니다. 종속되어 편입·동화된 민중은 민중이랄 수 없다. 민중을 사람의 삶에서, 인간의 역사에서 중심이 되게 해야지 변두리·짜투리 생활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민중이란 단어를 내 가슴에 잡아끄니 그사람 역시 한갓 최고의 자리에 목을 매고 그 자리에 머물러 만족한 졸개에 불과하다는, 토할 것 같은 울렁증이 같은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오고 만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삶의 최고목표나 되는 듯 권좌에서 물러나자마자 홀연히 떠나버린 그사람에게 뭐 그리 기댈 구석이 있었다고, 하며...
‘너 하나 죽어버리면 다야?’
그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듣고 새벽 자전거타기 후 이른 점심을 함께 먹고 있던 대학생 제자 앞에서 내가 외쳐댄 첫 탄식이다. 믿지 않았다. 믿지 못했다. 더욱이 도사 같은 몇 마디 유언을 남기고 떠나버리다니... 기대와 희망이 걷히자 치밀어 올라오던 탄식은 체념과 절망의 자조 섞인 한숨으로 이내 차분해졌다. 졸개였을 뿐인 것을... 그래 졸개는 죽었다. 어차피 졸개는 졸개다. 민중을 변두리·짜투리 삶으로 전락시킨 졸개는 죽었다.
그사람이 죽은 지 햇수로 꽤나 오래되었지만 이제라도, 라는 생각에 비로소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렇게 알량한 감정에만 맡겨둘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스스로 죽었다 하여 그사람의 자살을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더욱이 억울해할 이유나 필요도 없다. 억울해야 할 사람은 그를 믿었던 바로 우리 민중이다. 다 누리고 도망치듯 가버린 그사람에게 결코 우리 민중이 슬퍼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치욕스럽더라도, 목숨을 어찌 됐든 부지하듯 살아있는, 한 번도 영화를 누리지 못하며 과거 힘들었고 힘들게만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더 힘들게만 살아가야 할 우리가 이제 왕이 되어보자. 이제 우리가 왕이 되는 거다. 왕 따위에 의존하고 대통령 따위에 의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래봐야 남일 뿐이며, 내가 왕이어야 하고 내가 대통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광주 망월동 묘역의 영령들이 떠오른다. 4·19 묘역 역시. 현충원의 일반 병사의 무덤들 역시. 오래 전 총을 들고 쳐들어온 일본을 막겠다고 돌과 방패로 버티다가 죽임을 당한 전북 남원의 <만인의총>의 선인들도 떠오른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어린 나이에 죽어간 이들에 비해 저항 한번 없이 한양과 서울을 빠져 나와 도망쳐 가버린 그 임금이며 그 대통령들을 함께 떠올려본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에 묻혀있는가. 죽음의 뒤에도 그들은 넓은 터를 물려받고 편히 누워 있지 않은가. 현충원에 그리고 수많은 왕의 무덤에. 가까운 역사를 들춰보면 광주 망월동엔 누구보다도 김대중이 그 자리에 함께 묻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는 어디에 있나? 이승만과 박정희 사이에 끼어 있듯 죽어서도 치욕적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 자리는 더구나 그 가족이 원했다고 하니... 누굴 믿겠는가. 그의 삶에 민중은 수단이지 않았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협잡이 융합이니 통섭으로 가장돼서 득세하고 두루뭉수리 타협이 관용인 듯이 포장돼 삶의 바른 처세인 양 되어버린 지조 잃은 사회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거대 재벌언론에 의해, 역시 거대 권력에 의해 포섭된 자들이 그럴듯한 말주변으로 변절을 성형으로 탈바꿈시키며 그들의 하수인으로 발을 들여놓는 짓거리를 처세의 달인처럼 취급하고 존경까지 하고 받는 꼴을 보면 가소롭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을 부활로 가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함과 동시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함에 있다.
죽음을 부활로 가장하는 것은 모든 것을 세정함과 동시에 새로운 하나를 세우고자 함에 있다.
<이러니, 살아있었어야지요>는, 사를 생으로 바꿔보려는 순순한 가정이지만 더불어 사를 생이게 할 수 있다는 순수한 희망이다. 그것은, 순진한 가장이지만 더불어 순전한 꿈일 수도 있다. 결과야 어찌되든 그것은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이다. 민중만이 할 수 있는, 민중만이 해야 하는. 크든 작든 우리 몫은 다 하다가 제 명에 죽어야 하는 게 우리 민중이지 않은가. 이것이 민중의 당위다. 눈치 볼 이유가 없는 우리 민중의 몫이다. 민중에게 자살은 허영이며 허세에 불과할 뿐이다. 부리고 싶어도 부릴 허세도 허영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바로 우리 민중이기 때문이다. 책임지고 부양할 가족을 생각하면, 살아 그래도 해야 할 몫을 떠올리면, 자살은 허영이며 허세일 뿐인 게 우리 민중이지 않은가. 허영과 허세의 공통점은 자기본위·자기안위만 있을 뿐이다. 남은 없다. 남을 그리도 많이 두고 산 그사람이 그 많은 남들을 전혀 생각지 않고 저지른 방일하고 치졸한 짓에 화가 들끓는다.
‘우린 이렇게 힘 드는데 치사하게 너만 죽어?’
죽지도 못하는 게 민중이다.
‘우린 그래도 살아야 하는데 뻔뻔하게 너만 죽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지만 살아내야 하는 게 민중이다.
그의 죽음에 의해 민중은 방치되었고, 그의 방관에 의해 민중은 방임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민중은 죽었다. 그러니 그는 졸개다.
‘나는 상관없음’, 오불관언을 고착시킨 자가 바로... 그사람이 아닌가. 오불관언만으로 시비를 걸 수는 없다. 긍정적 오불관언은 타인의식을 배제한 자기집중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대체로 백이면 백, 오불관언은 타인이나 타 집단의 견강부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견강부회는 철학이 아닌 입장이다. 자기 처지에 맞춰 아전인수하는 것이다. 뜯어 맞추기다. 무조건 옳다고 여기거나 틀린 것을 알기에 무작정 자기주장을 고집한다. 헐뜯어야 하는 속성과 독성을 갖고 있다. 착각을 초래한다. 정의라고 자신을 믿고 싶은 것이며 정의라고 남을 속여야 한다. 그러자니 자가당착·자기모순에 빠지기 일쑤고 모순개념의 흑과 백, 옳고 그름의 시비로 상대존중은 전혀 없는 흑이면 흑이고 백이면 백일 뿐이다. 그러니 틀릴수록, 잘못되었다고 할수록 더 공고해지고 더 똘똘 뭉치게 하는 경향을 빚는다. 이쪽이 됐든 저쪽이 됐든. 결국 ‘나는 상관없음’은 결국 나와 나의 집단을 방관으로 방치함으로서 또 다른 이기집단의 어부지리로 이어지게 하고 만다. 이래서 침묵 또는 외면의 오불관언은 사회악의 방임 또는 공범이 되어 결과적으로 상반된 입장세력을 동조하고 협조하게 되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반대편의 손을 들어주고 마는 일이다.
최근 10년,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대통령선거가 이런 결과로 나타났고 매번의 지방선거가 그렇지 않았던가. 보궐선거 역시.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준 정치적 무능을 넘어선 도덕적 무지·무치를 뻔히 보면서도 말이다. ‘이나저나 같은 놈’의 오불관언이 빚어낸 결과는 ‘더 나쁜 놈’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나마 ‘좀 나쁜 놈’은 배제된다. ‘좀 나쁜 놈’이거나 ‘좀 모자란 놈’이 ‘더 나쁜 놈’보다는 그래도 나은 건데도 ‘털어 먼지 안 나는 놈’ 운운하며 먼지 더 풀풀 나는 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놈’은 누가 퍼트리는 걸까? 먼지 풀풀풀 나는 놈 쪽이다.
최근 10여 년의 이런 경향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누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까. 우리는 그사람의 자살이라는 단순인정에 휩쓸려 우리 사회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늦었지만 겉껍데기가 아닌 그 안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허접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고갱이 말이다. 이제라도 나무만이 아닌 숲도 보자 함이다. 나무에만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아버렸다. 이제 숲으로 들어가 보자. 숲에선 숲의 자정으로 그 먼지가 흙이 되기도 한다. 곰팡이는 숲에서도 곰팡이일 뿐이다. 이미 곰팡이가 돼버린 털어 더 나는 놈의 먼지를 솎아내고 오래 두면 역시 곰팡이로 변질될 털어 먼지 덜 나는 놈의 먼지를 주머니에서 까발려줘야 한다. 그사람을 통해. 자칭 타칭 먼지 덜 난다던 그사람의 주머니를 털어 시작해보자.
이제라도 질문을 던져본다.
‘그사람을 죽인 자는 과연 누구일까?’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다. 죽여야만 부활한다. 예수가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부처도 그랬고 또 고흐도 그랬고 니체가 그랬고 등등. 부활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남은 그 후세인들이 해야 했던 일이었다. 죽은 자 스스로는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죽이자. 그럼으로써 살려내자. 부활시키자. 그럼으로써 되살아나자.
살아나는 것은 결국 부활한 자가 아니라 부활을 도모한 자들이다. 부활한 자는 그저 수단이며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부활은 산 자가 살아서 누리고자 하는 방편이며 목적이다. 결코 죽은 자는 부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주여, 우리를 ~~~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구원하지 않는가. 산 자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 자는 죽은 자처럼 죽지 않기 위해 죽은 자에게 구원하는 것일 뿐이다. 구원을 기구하는 자들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십자가를 지지 않기 위해 십자가를 섬기는 것이다. 상징이라는 말이다. 죽은 자는 그저 죽었을 따름이다. 산 자만이 살기 위해서 구하는 것이다. 산 자가 죽은 자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희생해줘야 하는 것이다. 산 자의 뜻에 의해. 산 자의 바람에 의해. 결국 죽은 자가 산 자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철저히 산 자를 위한 부활이지 않은가. 죽은 자는 상징적 포스터여야 한다. 모델화된 마스크(가면)여야 한다.
그러니 철저하게 죽이자. 그러니 철저하게 죽여야 한다.
그러자니 철저하게 살려내야 한다. 그러자니 철저하게 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아닌 신으로. 상징으로...
그사람을...
부활이냐 몰락이냐는 결코 죽은 자와는 상관이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고로 순전히 산 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부활일까 몰락인가, 그사람은.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은?
이 글을 한국으로 돌아와 <다음뉴스펀딩>에 게재제의를 했다. 그러나 퇴짜를 맞았다. 이유인즉슨,
‘부담스러워한다.’
시인 임화가 나라 없는 나라에서 1936년에 쓴 시의,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아니 ‘자발적 식민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도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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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1 09:5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