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평가돼야 할 고전의 가치
이병채
춘향골 남원에서 지난10월22일 제23회 흥부제를 맞아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문학소설 춘향전 흥부전 변강쇠가 만복사저포기 홍도전 최척전에 대한 학술대회가 전국 유명대학 교수 12명을 포함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 문화의 시대를 대비 고전의 활용방안(관광상품화)에 대한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고전에 대한 고전적인 경구가 있다.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책이라 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아나톨 프랑스가 한 말이다. 마크트웨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될 책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다.
이는 뼛속 깊이 공감하는 시대의 상황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전이란 끊임없이 다시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책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언제든지 시간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고전을 다르게 읽고 새롭게 해석한 책 등을 통해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이정원의 ‘전을 범하다.’와 김민웅의 ‘동화독법’이 그런 책들이다. 제목이 도발적인 ‘전을 범하다’는 국문학자인 저자가 시도하는 우리 고전 다시 읽기와 여기서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춘향전(春香傳)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소설이다.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자미상의 판소리계 소설로 이본이 무려 120여 종에 이를 정도로 조선후기에 인기를 누렸던 작품 중 하나이다. 춘향의 미모에 반한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맹세했는데 새로 부임한 부사 변학도가 춘향의 미모에 반해 수청을 강요하지만 일편단심 이몽룡과의 정절을 내세워 수청을 거절한다.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변학도의 학정과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변학도의 생일에 봉고 파직하고 춘향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만고열녀 춘향이야기다. 숙종조나 영조 초에 판소리로 불리어 오다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 장르로 문장체 한글소설과 한문본 소설 등이 있다.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므로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작품군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춘향전】의 모태가 된 근원설화를 보면 남원에 살았던 춘향이라는 기생이 이부사 아들 도령을 홀로 사모하다 죽은 후에 원귀가 되어서 남원에 많은 재앙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양진사가 제문으로 창작했다는 액풀이로써의 제의(祭儀)설에 근원을 두고 시작된다. 그리고 노진 조식 성이성 박문수 등 야담에서 전해지는 암행어사 출두 설화가 【춘향전】에 부합되었다는 설과 조선조에 비롯된 기생과 양반도령과의 애련설화 등의 야담이 바탕이 되었다는 다양한 견해들이 많다.
【춘향전】의 연구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조윤제의 【교주춘향전】이 나오면서 시작된 이래 1965년 김동욱에 의해 발표된 【판소리 발생고】로 본격화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판소리 춘향가와 소설 춘향가와의 관계를 근원 설화로부터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이후 판소리 대본 및 판소리계 소설로의 정착이라는 전개도식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로써 【춘향전】의 소설이 판소리 춘향가보다 앞섰다는 선행(先行)설을 극복하고 판소리 춘향가의 선행설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근원설화에 관한 연구도 도미설화의 변이형인 구례현에 살았던 부인의 【지리산가】백제오가 열녀설화와 남원에서 노진 김우항 박문수 성이성 부사의 기녀가 사랑했다는 설화도 있고 신임부사 생일잔치에서 지은 칠언시 설화인 암행어사설화 남원지방의 추녀기생 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 등 5종이 전해오고 있다. 이 외에도 유사한 연애설화와 아랑설화 심수경 설화에 얽힌 신원설화(伸寃說話) 성현의 아들 성세창이 평양기생 자란과의 애련설화 염정설화 등 허현의 아들이 혼례식 날 부친의 급서로 초야정사를 치르지 못하고 여묘(廬墓)살이 하다가 정사를 치러 자식을 낳았지만 신랑이 죽자 신랑이 주었던 신표로 친자위기를 모면했다는 수기설화(手記說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로 발전한 것으로 귀결되어 왔다.
어쨌든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인간중심의 사랑이야기인 【춘향전】은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춘향묘 성안의 부사의 기적비 이도령이 다니던 박석고개 춘향이 버선발로 이도령을 따라갔다는 버선밭과 오리정 등의 배경과 소재들이 실제 산재돼 있다. 또 남원에서 매년 실시되는 춘향제가 193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85회째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민간설화와 더불어 전해지는 유. 무형의 춘향 문화의 선양사업은 판소리 다섯마당을 중심으로 매년 개최되는 판소리 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사람은 명창명인으로 등단하게 됨으로써 남원이【춘향전】의 본향임을 세계 만방에 홍보되고 있다.
1949년 80세 된 조성국 노인담에 의하면 박색 춘향이 이도령을 위해 수절하다가 옥사한 뒤 남원에 가뭄이 들자 양진사가 백지3장에 춘향의 해원(解寃)을 담아 기우제를 지낸 뒤 흉년을 면했는데 그것이 훗날 춘향전으로 발전되었고 자신이 70년 전 (고종16년 1879년) 이용준 남원부사 시절에 남원 광대 기생들이 춘향계(契)를 만들어서 춘향의 제사를 춘추에 2번 지내는 걸 보았다는 목격담을 이야기해왔던 故조갑녀 여사께서는 제 1회(1931년) 춘향제향 때부터 참여해왔던 분으로 2015년 4월 1일 향년 93세로 작고 남원 국악의 성지납골당에 봉안되었다.【춘향전】은 18세기 영국의 새뮤얼 리처든슨(1689-1761)이 귀족의 아들 백작 Mr.B와 그 집의 하녀 파멜라가 신분적 차이를 극복하고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는 애틋한 사랑을 편지체 소설로 완성한 서구 근대소설의 효시인 【파밀러】와도 유사한 이야기구조를 보이고 이 소설에 견주어 보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고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흥부전(興夫傳외)은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권선징악/ 형제간의 우애정신 나눔정신 행운정신)를 해학적으로 풍자한 작자연대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는 조선후기 판소리계 소설로 【흥보전】【박흥보전】【놀부전】【박타령】등으로도 불린다. 전하는 이본은 사본으로 【흥보전】【박흥보전】등 6종 판본으로는 경판본만 20장본 25장본 2종이 있다.
흥부의 발복지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지로서 이마을에는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일 뿐만 아니라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고 있다. 놀부의 마을은 인월면 성산마을로 약 12㎞떨어져 있다. 옛 문헌에서 증명되는 복덕촌이란 복덕성리(福德星里) 마을이라는 지명과 영로복성치(嶺路福星峙)또한 1770년에 간행된 문헌비고(文獻備考)와 1809년에 발간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영로의 첫 번째로 복성치(福星峙)를 들고 있다. 이는 판소리 흥보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복덕촌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조선 중기 때 시인이며 작가 승려,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만복사를 배경으로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다섯편중 첫 번째 수록된 작품이다. 조실부모한 총각 양생(梁生)이 배필을 얻기 위해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통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고 3일 동안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여인이 왜구들의 난리 때 죽은 처녀의 환신임을 알게 된다. 양생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여인의 명복을 빌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주인공으로 생사를 초월해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명혼소설(冥婚小說)이다.
최척전(崔陟傳)은 조선 인조 때 조위한(趙緯韓)이 쓴 소설로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1619년 후금의 명나라 침입을 배경으로 가족의 이산과 재회를 소재로 한 전쟁관련 소설이다.
남원에 사는 최척(崔陟)과 옥영(玉英)이 서로 사랑하여 약혼하였으나 결혼을 앞두고 왜적의 침입으로 의병으로 나가 헤어진 후 몽석이 태어나고 옥영은 정유재란 때 왜병에게 포로가 된 후 최척은 가족을 찾아 헤매다 중국까지 건너가게 되었는데 안남에서 옥영과 재회하여 항주에 정착 몽선을 낳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흩어진 가족들이 모두 만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홍도전(紅桃傳)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려있는 작품으로 조선중기 유몽인이 남원부사를 역임 당시 남원에서 실화로 전해오는 홍도이야기를 수합하여 쓴 것으로 보여진다.
정생(鄭生)이라는 총각이 같은 마을에 사는 처녀 홍도(紅桃)와 의혼하고 아들 몽석을 낳았는데 임진왜란 때 남편이 종군하자 홍도는 남장으로 남편을 따라갔으나 서로 헤어졌다가 다행히 중국 절강에서 서로 만나 살며 아들 몽진을 낳아 중국 여자에게 장가를 보낸다. 그 후 난리를 만나 정생은 또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홍도는 몽진 부처를 데리고 제주도를 거쳐 남원으로 돌아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는 이야기
변강쇠가는 조선시대 지리산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자 연대미상의 판소리계 소설로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 횡부가(橫夫歌)로도 불리며 판소리 열두마당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1843년 송만재가 쓴 관우희와 이유원이 쓴 관극팔령에 실려 있는데 천하잡놈인 변강쇠가 남쪽지방에서 북쪽지방으로 올라가고 팔자에 과부로 운명 지워져 마을에서 쫓겨난 옹녀가 북쪽지방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만나 부부로 인연을 맺고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에 정착하면서 하층평민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남성의 성기를 묘사한 기물타령 등 강쇠와 옹녀와의 사랑이야기다.
심청전 또한 효 이야기와 효성이 지극해서 아버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친 게 아니다. 아버지라는 부계질서를 지키기 위한 이념공동체의 심청살해라는 것이다. 악독한 계모의 대명사인 장화홍련의 새엄마 역시 사악한 계모가 아니라 오히려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진범은 살인을 방조한 아버지와 누이의 죽음에 적극 가담한 오빠다. 또한 별주부는 결코 우직한 충신이 아니며 춘향 또한 열녀로만 볼 수도 없다. 이런 식으로 절대 가치처럼 교육된 덕목들이 도덕이란 미명하에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를 숨기고 있는지 그 이데올로기 하에서 무엇이 채택되고 은폐되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읽다보면 고전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고 원전을 찾아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남원이 이러한 산문문학을 배경으로 쓰여진 고전문학소설을 더듬어보면 첫째 민족의 영산 지리산(어머니 품속 같은 산중에 산)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따라 둘째 조선시대 남원출신 문과급제자 수가 무려 140여 명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고전문학의 도시 남원은 문화관광자원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이제 사철 전국을 누비고 해외시장까지 판을 치는 관광객유치를 위해 정책개발과 더불어 볼거리 즐길거리 뿐만 아니라 먹거리까지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
역사는 단순이 지난일의 기록물이 아니다. 역사가 준엄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것은 역사가 미래를 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거울이 투명하고 맑지 못하면 잘못 비춰진 만큼 세상의 인심도 흉측해진다. 잘못된 역사가 두려운 것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 잘못된다는데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역사거울은 얼룩 투성이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했고 빼앗긴 나라를 제힘으로 찾지 못한 결과이긴 하지만 역사를 무시하고 폄훼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절대주인공이 왕이라 하더라도 사초를 보지 못하게 한 역사 정신을 거스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공과를 떠나 떳떳한 역사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부추기는 것은 하나만 아는 수준의 문제이다. 스스로 역사의 거울에 덧칠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늘의 농촌 현실을 보면 묵은쌀 85만 톤이 차곡차곡 쌓여 정부는 수요처가 마땅찮아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간보관비부담만도 최대 2,686억원이라는데...? 이제 벼농사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남원의 경우 해발 500고지 이상 지역(운봉4개면)은 물론이고 인근 보절 산동 이백 주천 수지 일부지역까지 확대 쌀농사보다는 특수작물을 재배관광객을 상대로 가공판매망을 구축한다면 해외 유명 관광지나 박물관 미술관보다 사람 사는 향기가 물씬 풍기는 뒷골목 투어가 진정한 도시의 특색을 읽을 수 있듯이 도시의 매력은 지역 정체성과 문화의 다양성에 있다. 이제 남원에서는 행정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가를 포함 시민 모두가 힘을 합해 지속가능 발전하는 공동체 조성을 위해 상호 협력 관계가 우선 구축되어야 한다. 고전문학의 도시로써의 특색화가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그 동안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해왔던 문화적 이웃들은 사라지고 내일이 없는 희망과 비전도 없는 지역으로 전락 무주공산이 돼 버렸으니 이는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선심성 행정 때문에 국민의식마저 흉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관광객들만 기웃거리며 상술과 이권만을 노리는 척박한 자본의 각축장이 되 버렸으니 창조와 공유가 없는 곳은 최근 바다의 수온상승과 육지의 오염물질 유입 등으로 인근 해안지역에서 해조류가 달라붙어 암반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고전문학도 이러한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문화의 갯녹음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전문학이 살아 숨 쉬는 전국 제일의 문화도시라는 자존심도 살리고 특색화 차별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 또한 절실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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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1 09:2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