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과 춘향제
남원학연구소 노상준
영국의 문호인 셰익스피어의 생가(生家)는 영국 사람들의 자랑이요, 세계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춘향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 고대소설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남원의 자랑이다. 확실한 고증은 없다고 하지만 춘향전은 분명히 이 고장 남원 사람에 의해 쓰였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재와 배경이 모두 남원이다. 지리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치와 고색창연한 많은 문화유적 그리고 조선 초기의 정원을 대표하는 “광한루원”의 주변경관 때문에 춘향전에 쓰여 졌을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경관들로 말미암아 어떤 지역보다 이 곳 남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인과 묵객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기에 뛰어난 곳이다. 그리하여 “남도 판소리”가 이곳에서 움터 자랄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천혜의 좋은 자연환경은 춘향전처럼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소재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조선 영․정조 전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춘향전은 판소리 12마당 가운데 하나가 소설화된 것으로 내용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만남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양반의 아들과 천기의 딸이라는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장애 없이 사랑은 무르익고 화촉을 밝히며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것은 당시 조선봉건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의 외도가 아닌 인격 대 인격, 인간 대 인간의 사랑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점은 셰익스피어의 명저(로미오와 줄리엣)와 비교해 볼 때 사랑의 계급타파를 이룬 점에서 본질적으로 그 뜻을 달리하고 있다. 춘향은 천기의 소생이지만 열녀(烈女)라고 표현되고 있다.
“충신”이란 불사이군(不事二君)하고 열녀란 불사이부(不事二夫)라는 유교정신에 바탕을 둔 조선사회에서 춘향은 변학도의 회유와 박해, 고문, 옥살이 등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끝내 항거하면서 송죽 같은 절개를 지켜나간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송죽 같은 절개하나만을 볼 것이 아니라, 변학도와 같은 양반계급에 대한 피나는 저항정신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춘향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의 구원을 받아 옥에서 풀려나고 다시 이몽룡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 어사 이몽룡이 출두하여 변 부사를 봉고 파직한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춘향을 못살게 굴었다고 해서가 아니라 변 부사의 실정과 학정을 단죄한 것이다. 그리하여 권력자에게 억눌려 온 민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춘향전의 마지막 대단원을 보면 변 부사의 생일잔치에 과객으로 가장하여 참석한 이몽룡은 그들이 준 술잔을 받아놓고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금잔의 좋은 술은 천인의 피요.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 萬成膏)/옥반 위의 맛있는 안주는 만인의 기름이로세.
촉루낙시 민루락(燭淚落時 民淚落)/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네.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또한 높구나.
라는 시를 지어 그들의 면전에 내동댕이치고 나간다.
변 부사를 비롯하여 이 시를 읽은 현감 등의 권력자들과 이들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는 이방, 호방 등 아전들이 혼비백산하여 말을 거꾸로 타고 신발은 거꾸로 신고 도망가는 등 웃지 못 할 쇼를 벌인다. 여기에서 이몽룡이 지은 시는 춘향전의 모든 내용을 대변해주는 당대의 명시(名詩)로서 춘향전의 저자는 이 시를 내놓기 위해서 춘향전을 저술하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춘향전의 저자는 당대의 사회상을 고발하고자 이 시구(詩句)를 춘향전이라는 옷을 입혀서 표현하고 자신의 목숨이 부지되지 못할까 두려워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숨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부드러운 솜만을 보고 그 속에 숨겨진 활촉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표현이 직설적이기 보다는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점이 그들의 호감을 사서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고 그것을 안 아전과 광대들이 이야기를 사설과 가사로 엮어서 판소리로 발전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춘향전은 양반과 아전, 광대 등이 공동 제작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사설과 노래, 춤 등으로 엮어진 종합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 시대 서민층에서 즐기던 탈춤이나 마당놀이 등이 서민층의 애환을 노래하면서 양반들을 욕하고 비난한 점에서 춘향전과 맥을 같이 하지만 문학성 내지 예술성에서 춘향전과 대비할 바가 못 된다. 춘향전의 저자는 이 소설 속에서 이몽룡과 변학도 사이에 천민인 춘향을 등장시켜 두 양반 관료끼리 쟁탈전을 벌리게 해 놓고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구경을 하다가 급기야는 양반을 시켜 양반의 목을 치게 하고 양반의 입을 빌려 민중이 하고 싶은 소리를 다하게 한 것이다.
춘향전이 불후의 명작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회자되는 것은 타 소설들이 단순한 사랑을 그린 애정 소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반해 춘향전은 애정소설의 틀을 넘어 조선조 봉건사회의 부패상과 양반계급의 전제적 폭정을 고발하는 새로운 옷을 입히고 문학적 형식을 통해 당대의 억눌렸던 민중의 소리를 대변한 민중소설이라는 점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춘향의 일편단심과 정절을 기리기 위해서 1931년 춘향사당을 건립하고 제례를 시작한 지 올해로 85회가 되었다. 춘향제는 춘향과 이 도령이 광한루에서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여 5월 단오날로 정하여 실시하였으나 춘향의 생일인 음4월 8일로 날짜를 바꾸어 오늘까지 전국적인 축제로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1985년 춘향전의 문예적 제반 연구와 재조명을 위하여 “춘향문화선양회”가 발족되었다. 이는 춘향전의 학술적 연구와 춘향을 보다 더 긍정적인 자세에서 해석하고 춘향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해서 살아 숨 쉬는 신화로 표현하고자 하는 남원고을 사람들의 강한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고장 남원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고 남원사람들은 반드시 춘향전을 읽어보아야 한다. 외국인들도 즐거이 읽는 춘향전은 세계적 고전이요, 그 요람인 남원은 남북한 국민 누구나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고장이기도 하다. 어떤 분이 남북교류 일환으로 북한에 가서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물었더니 춘향골이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우리 고장은 고전(古典)의 도시로 가꾸어야 관광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춘향제를 세계화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남녀의 만남의 축제를 열어야 한다. 사랑의 가교 오작교(견우, 직녀가 7월 7일에 만나는 다리)에서 사랑을 맹약하는 행사를 하여야 한다. 남원시의 공공디자인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바로 고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남원을 고전이 살아있는 도시로 계획하고 가꾸어 생동감 있게 가꾸어야 오늘날의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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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9 17:3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