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 제사(祭祀)이야기
전)남원문화원장 이병채
옛날 어느 양반고을에 김삼돌이라는 사람이 전답마지기나 부치면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양반이 아니라 글도 배우지 못한 상놈이었지만 반촌에 살다보니 어깨너머로 예법 깍듯하고 또한 성실하여 샌님들에게 예우 받고 곳간도 제법 넉넉했다고 한다. 효성이 극진하여 부모님을 잘 모셨는데 연로하신 아버님께서 어느 해 돌아가시자 예를 배우지 못함을 한탄하며 서원, 향교를 출입하며 마을에서 콧방귀 꽤나 뀌는 낙향대감을 찾아가 간곡히 청하여 예법에 따라 아버지의 초종을 잘 치렀더란다. 그 후 해마다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선물보따리를 지고 찾아가 대감을 모셔와 제례의 격식을 갖추다보니 주변 마을까지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해 대감이 전라감사를 제수 받아 임지로 떠나버린 거라 아버지 기일만 다가오면 대감은 없고 예를 갖춰 제사를 올릴 일이 난감하던 차에 때마침 이웃 서당에 새 훈장을 모시려고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예를 갖추어 도와주십사했더니 혼쾌히 “그러지.” 하더란다. 기일이 당도하여 온갖 제수를 장만해 놓고 훈장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는데 밤이 으슥토록 오지를 않는 거야. 예전 대감 같으면 초저녁부터 와서 종이위패 하나 써 붙여놓고 제상 옆에 술상을 따로 차리고 앉아 조율이시 홍동백서가 어떻고 좌포우혜에 어동육서, 반서갱동 하라느니 일일이 제수 진설을 한 뒤 분향하고 초헌, 아헌, 순서에 따라 격식에 맞지 않거나 실수라도 하면 호통까지 쳐가며 바로잡아 주었거든. 그런데 이 훈장님은 해시가 다 되도록 코빼기조차 보이질 않으니 발만 동동 거리다가 할 수 없어 몇 차례 사람을 보냈으나 곧장 갈 테니 제사상이나 잘 차려놓고 있으라는 말만 하더란다.
밤이 늦어 어쩔 수 없이 어깨너머로 본 대로 대충 제수를 차려놓고 할 일 없이 기다리는데 자시가 다 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신 이 훈장님께서는 대청에 오르지도 않고 마당에 떡 버티고 서서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다. 삼돌이가 당황하여 우물쭈물 분향을 하고 첫 술잔을 올리고 나니 마당에서 뒷짐을 진 채 소리 높여 “여보게 김서방! 오늘 자네 자식놈 삼돌이가 제삿날이라 잊지 않고 술과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여 이리도 걸게 차렸으니 많이 드시고 가시게.”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휘적휘적 가버리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하고 아무리 상놈의 제사라지만 이렇게 홀대하나 싶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밤새토록 튀적이다 새벽에서야 까무륵 잠이 들었는데 선친께서 현몽을 하신 거야. 꿇어 엎드려 자신의 불효를 사죄드리는데 환하게 웃으시며 “아니다. 내가 너희들을 버리고 떠나온 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네가 차려준 술과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간다. 예전에는 엄하신 대감님이 대청에 앉아 유세차 어쩌고 하니 뭘 어쩌란 소리인지 조차도 몰라 마당에 조아리고 섰다가 호통에 놀라 너희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오늘처럼 대청에 아무도 없어 제사상에 올랐다가 훈장님이 말씀하시고 돌아가셔서 많이 잘 먹고 왔으니 그 훈장님께 꼭 인사 여쭈거라.” 하시고 가셨답니다.
우리는 허례와 차례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도 모르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위정자들 도약의 발판으로 쓰이는 겉치레 복지 정책과 전시 행정으로 물가만 오르고 노동자들의 유리지갑에 세금 폭탄을 맞으면서도 멀쩡한 보도 블럭이 파헤쳐지고 무상급식 지원비가 아이들의 여린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돈으로 쓰여도 옳거니 하고 손뼉치는 따라 부대를 어쩌랴. 형(形)과 세(稅)는 가혹하고 올바르게 쓰지 못했던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가 겨우 15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현 시국이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국정을 농단한 자들만이 휘두르는 권력형 정국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그럴싸하게 생색내라고 낸 돈이 아니라 바르게 세우고 제대로 써라 했거늘 이놈의 나라꼴을 좀 보시구려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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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0 15:1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