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화덕
배움의 베풂
오동명 씀
도회지에서만 살다가 남원으로 내려와 시골집에서 살게 되니 평생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것들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때의 재미란, 생소함을 신기함으로 바꿔 채워주곤 했는데 이 신기함은 더 발전해 만들어보고 싶은 창작욕구까지 들게 한다. 흉내내기지만 말이다. 그 중 하나가 화덕이다. 사실 시골이라고 해서 나와 같은 운을 다 만나긴 어렵다. 새로 짓는 시골집들은 도시의 아파트나 단독주택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도시인 유치를 위해 조성된 시골의 단지마을은 더욱 그렇다. 집이 놓인 땅만 시골일 뿐이다. 귀촌하여 이곳저곳 살 곳을 찾아보았기에 내가 지금 어떤 곳, 어느 집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는데, 이쯤에서 나를 운수 좋은 남자로 만드는 게 바로 이런 화덕 같은 옛-지금도 버젓이 잘 쓰이고 있지만-풍물과의 만남 때문이다.
‘이래서 시골에 내려온 거지.’
내게 운이란, 이런 말을 생각 않고 나도 모르게 할 수 있게 하는 변화와의 조우다. 종종 잘 지었다는 시골집(시골에 있는 현대식 집)을 구경 가곤 하는데 돌아와 내 초라한 집을 보며, 방금 보고 온 그 화려한 집이 전혀 부럽지 않고 오히려 역시 이런 말이 또 불쑥 내 입에서 나오고 만다.
‘보여주고 싶다, 내 이 집을.’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드문가 보다. 몇 사람에게 내 집을 보여줬지만 거의 다 ‘못 살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보면 나는 궁상을 떨고 있는 게 될 테니 운수 되게 없는 놈일지도 모른다.
화덕을 만들어 마을회관 등에 기증한다고 하니 취재 가는 길에 든 집에 대한 잡념이며, 각기 다른 취향에 대해 든 생각이다.
화덕기술자 이윤성 씨는 귀농하기 전 프로그래머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 귀농한지 6년이 된 그는 서울에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난로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일이란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난로? 아무리 꿰맞춰보려 해도 내 머리로는 유사성을 발견해 낼 수가 없다. 확장해 프로그래머와 난로개발자라고 하니 자신 없지만 고개가 약간 끄덕여진다. 만드는 것은 같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완성품으로 보이는 쇠화덕을 보면서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오기 전에 국어사전을 들춰서 글로만 안 쇠화덕을 처음 보니 아쉬움은 이내 지워지고 ‘저기에 어떻게 솥을 건다는 걸까?’ 의문과 관심에 바로 묻게 만든다. 내가 시골집에서 본 건 흙화덕이다. 이윤성 씨가 조근하게 설명해준다.
“단지 흙화덕의 변형만은 아니다. 기존 쇠화덕의 개량이지만 상당히 다르다. 흙화덕과는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선 다르지만 더 큰 차이점은 구조에 있다. 이 화덕은 미국기술인 로켓스토브형식과 중국기술인 열기고리방식을 접목했다. 로켓스토브형식은 화력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열기고리방식은 열을 머물게 하여 열지연을 돕는다. 이것은 딱히 우리만의 기술은 아니다. 이것은 한 대 제작비용이 30만 원 정도 드는데 순수한 우리기술로 지금 10만 원짜리 화덕 발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화덕과 비교해 길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열효율을 높이고 재활용으로 자연고갈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막는 화덕에 중점을 두고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윤성 씨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데 있었다. 귀농자 중심으로 적정기술을 배우고 익혀가고 있다는 말에, 적정기술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이동식 화덕제작에 동참을 통해 배우러 왔다는 장현규 씨가 예를 들어가며 장황하게 설명하자 오래 전 책에서 읽은 게 그제야 떠올랐다. 그러나 듣고 있던 이윤성 씨는 해설이 아니라 논설을 펴 보인다.
“적정기술은 망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시혜적이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 화덕의 예를 들어보자. 기존 화덕은 하늘을 데우는 데 열을 거의 소모하지만 이것은 열효율이 높아 처음 누구나 솔깃해한다. 그러나 제작비용 절감을 위해 화통의 크기 작게 하고 열효율을 더욱 높여주기 위해 나무를 좀 더 잘게 잘라줘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안 돼 설치만 해놓고 방치하는 게 많아지고 있다. 토막을 내자니 귀찮은데다가 기존 방식에 얽매여 바꾸려고 하지 않아서다. 적정기술이 망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기술이 망한 게 아니라 그 쓰는 사람의 자세가 그 좋은 기술을 망쳐놓고 말았다는 말이다. 전에 하던 기술보급은 단지 기계를 떠안겨 주는 것에 불과하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쓰지 않던 방식이라면 애써 쓰려 하지 않는다. 기존 방식대로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기계나 기술보급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걸맞는 문화와 정신의식의 교육이다. 그래야 자연고갈이 심해지는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적정기술은 되살아날 수 있다. 나는 이에 중점을 두며 이를 귀농귀촌자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10만 원짜리 화덕이 완성되면 특허를 받아낼 것인데, 이는 기업상술이 끼어들어 우리의 근본 취지를 깨트릴 것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자 함에 있다. 공동체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귀농귀촌인들의 의식부터 나 하나에서 벗어나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이 이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이럴 수 있을 때 귀농귀촌인들이 더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 숫자만 늘리는 것은 오히려 자연훼손이 된다. 도시인들의 이기적인 의식이 시골까지 침투해 들어와 자연을 결국 망가트리고 만다는 말이다.”
그렇다. 쇠화덕을 처음 볼 때보다 더 크게 고개가 끄덕인다. 또 내 시골집이 떠올랐다. 시에서 철거비 백만 원을 준다고 해서 곧 철거예정이던 집. 주인이 7년째 방치한 다 쓰러져가는 흙집을 보자마자 내가 고쳐 쓰겠노라고 해서 허락을 받고 수리에 들어갔다. 처음 백오십만 원의 수리비를 예상했지만 구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동네 어른들은 부시고 새로 짓고 사는 게 낫지, 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연기와 때에 절여 새까만 서까래를 닦아내자 상량문이 드러났고 그 순간, ‘우리가 이 집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며 목수와 함께 얼마나 기뻐했던가. 단기로 쓰인 한자를 셈해보니 나보다 열 살 더 먹은 어른집. 옛집 복구에 헌신해준 목수가 내게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오 작가는 복 받을 것.”
복을 받고 있다. 흙벽이 얇은데도 불구하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놓으면 사흘은 그 열기가 남아 뜨끈뜨끈하다. 찜질방에 돈 들여 따로 갈 필요가 없다. 목수 역시 편리성 주택으로 탈바꿈하며 없어져가는 흙집들을 보고 아쉬웠다고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화덕기술자 이윤성 씨가 ‘의식 없이 들어오는 귀농귀촌인의 숫자 늘리기는 자연훼손과 다름없다.’던 말에 절대공감했기에 고개가 절로절로 세차게 끄덕거렸을 것이다.
화덕은 완제품이 아니었다. 폐드럼통을 잘라내 솥을 걸 틀을 짜야 했다. 김동설, 문해성, 김 진, 장현규, 이귀섭 씨가 이윤성 씨를 중심으로 둘러 모였다. 이윤성 씨는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 오히려 되물었다. 그리고 답을 모았다. 같이 배워가는 자세로 마무리까지 이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무조건의 수용은 아니다. 선험과 선기술을 가진 그가 배움인의 선배로서 단호한 입장도 표명한다.
“의논하려는 자세에는 자기주장에 앞서 남의 말이나 뜻을 귀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동면 만행산 깊은 기슭의 귀정사에서 절밥 공양을 서둘러 마치고 먼저 나오려는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마을 안에서 가능한 한 다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배움의 순수한 베풂이 서로 선행되어야겠지요. 이래서 공동체가 살맛나는 것이고 이래야 공동체다운 마을들이 살아나고 늘어나겠지요. 자발적으로 말입니다.”
요즘의 귀농귀촌 세태에 대한 꼬집는 비판이 귀농귀촌의 패러다임을 새로 짜야한다는 애정 듬뿍 담긴 선구자적 충언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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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7 09:3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