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형제가 있어 실화다.
어려서는 뭐든 맏이가 하자는 대로 하여 의좋게 살았다. 나이가 들자 흩어져 살게 되었다. 맏이는 고향에 남고 둘째와 막내는 서울로 갔다. 세월이 흘러 각각 장가가 가족과 벌어먹고 살다 보니 3형제의 어릴 때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맏이는 ㅇㅇㅇ당 당원으로 고향유지가 되었고 정치색이 보수 성향 우파다. 막내는 서울서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ㅇㅇㅇ당원이 되어 개혁 좌파다. 둘째는 정치에 관심 없어 좋은데, 집안 대대로 내려왔고 맏이가 믿는 전통 불교를 버리고 그렇게도 싫다하는 기독교 장로가 되었다. 이때 여기 어떤 나쁜 놈 있나?
문제는 명절이나 제사에 모이면 형제간에 싸운다. 뉴스도 같이 못 본다. 정치 얘기하다 싸워 며느리들이 안절부절 어쩔 바를 모른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3형제의 늙은 애비다. 그러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 서로가 다 자기가 옳다하다 몇 년간 오가지도 않고 제사에 오지도 말라 가지도 않겠다하고 앙숙이 돼 버렸던 적도 있다. 형제간에 이 무슨 꼴인지.
중간에서 둘째가 마음고생이 많다. 맏이 편도 막내편도 못 드는데, 처갓집이 목사 가정이라 믿게 된 기독교 골수가 되다보니 안수까지 받아 독실한 장로라 제사에 절 안 한다고 또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형과 아우는 무슨 정치가 밥 먹여 준다고 만나면 싸운다. 가장 괴로운 사람이 누굴까. 맏이가 제일 괴롭다는 말도 맞고 막내가 더 괴롭다는 말도 맞고 둘째가 가장 괴롭다는 말도 맞다. 이것이 지금 우리 한국 기성세대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내 의초가 무너져 내린 반목과 불화이며 파벌이다.
타임머신을 한 60바퀴를 돌리고 내려가 보면, 그 시절의 3형제는 더 험악하다. 우익 맏이에 좌익 막내다. 부정 선거에 앞장서며 그게 당연한 한 것으로 아는 맏이- 공산당 물이 들어 오금을 못 펴고 은거하면서도 구태여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막내- 신교육을 받아 기독교인이 된 둘째- 한번은 조부 기일이라고 모처럼 큰집에 오자 지서에 가서 잡아가라고 일러 바쳤고, 간신히 체포를 면한 막내는 밤중에 산속에 피했다 도망쳐 그 후 형제간에 의절하고 완전 원수가 맺혔다. 그러니 늙은 애비가 얼마나 괴로울까. 자- 이쯤하고...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도, 살다보면 환경이 바뀌어 바뀐 환경에 따라 식성, 체질이 바뀌듯이 생각이 바뀌고 정치적 지지성향도 따라서 바뀐다. 이것은 아주 지극히 당연하고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병도 아니고 나쁜 놈이라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려서는 누구나 정치적 색 없다. 전부 무색무취, 키가 욱 크는 놈이 있고 마디게 안 크는 놈이 있고 감기가 잘 걸리는 놈도 있고 위가 나쁜 놈도 있으며 심지어는 정신병자도 있고 간질을 하는 놈도 있다. 정치성향 변화도 이와 똑같다.
이게 누구 탓이라도 되느냐? 악인이라 그렇다는 말이냐?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환경에 의한 방식일 뿐이다. 어떤 집이나 삶의 방식은 조금이든 많이 든 무조건 다르게 돼 있다. 이걸 왜 그러냐고 따지고 미워하고 마치 악종이고 마귀새끼 취급을 하고 때려 부수려 한다면 그놈이 문제지 저놈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려면 이것도 따지고 두들겨 패라. 왜 운동을 안 해서 똥배가 나왔느냐고 패고, 왜 음식을 가려먹어 삐썩 말랐느냐고 두들겨 팰껴? 어째서 그런 여자를 좋아해 저런 여자와 결혼했느냐고 욕 할까?
물론 앞서 맏이처럼 고향이고 타향에 사나 한번 보수우익은 죽을 때까지 일편단심이라면 좋다만, 분명한 사실은 어려서는 맏이도 무색무취였다가, 자라면서 보수정당의 정치 물이 들었을 뿐이다.
단호히 말하노니 이건 위대한 것도 아니고 지조도 아니며 뻐기고 자랑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어려서는 무색, 나이 들고 삶의 환경(학력+결혼+직업+체질+병+음식+운동+인간관계)에 따라 무색에서 청색 노랑 회색도 되고 심지어는 빨갱이 물이 드는 수도 있다. 이게 죄고 이게 고발할 일이고 이로서 원수 척지고 만나면 못 잡아먹어 독설을 퍼부어야 할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 형제지간 아닌가?
더구나 남남 간 다른 생각 성향 칼라들이 모여드는 곳이 정치토론방이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한나라당을 지지하든 알고 보면 그는 그쪽을 지지하게 돼 있다. 그러면 전부 총살시켜? 그러다가는 형제간도 다 죽이고 며느리 다 내쫓고 부부는 죄다 이혼하라 할래? 자식들과도 전부 상종을 끊는 고주박이 꼴 보수되면 너 때문에 나라가 병들어 너는 ‘국충(國蟲)이’가 된다.(소나무는 ‘송충(松蟲)이’고 나라에는 ‘국충(國蟲)이’)
우리는 달라도 형제고, 틀려도 형제다. 좌나 우나 모두가 다 대한의 국민이다. 병들었다 하여 형제를 뒈지라 못하고- 돈 없다 죽어라 못하며- 뚱보라고 배지 가르라- 못한다. 좌파도 감싸고 고이 물어봐야 한다. 순한 말로, 제발 짜증내지 말고, 못 참고 꽥꽥 소리 지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라 응? 이게 낫지 않니?” 설명하면서, 이 말을 꼭 해야 한다. “너도 차근하게 얘기를 한번 해 봐라 맞으면 나도 들어줄게 응?” 그리고 그의 입장이 되어 읽어보고 이해할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저놈은 틀려먹었어!!” 소락지부터 지르고 싹수없다 단죄한다. 병들거든 마누라도 갖다 내 버릴 테냐? 이 얼마나 비정한 국민화합 저해사범인가.
전통지향(傳統指向)이냐? 미래지향(未來指向)이냐? 국가나 개인이나 둘 중에 하나다. 전통지향이 당연하다는 말 맞고 대대수라는 것도 맞다만, 미래지향이라도 죽일 놈은 아니다. ‘송충(松蟲)이’는 있어도 ‘국충(國蟲)이’ 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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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4 11:3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