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에 다녀오세요
남원학연구소 노 상 준
시장님, 시의원님, 국회의원님, 도의원님 수원 화성에 다녀오세요. 화성 행궁까지 돌아보시고 시민들에게 리포트(report)를 써보세요. 향토를 위한 새로운 감회가 생길 것 입니다. 그리고 남원읍성이 복원공사를 시작한 지 24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연유를 알아야할 것입니다.
지난 5월 25일 남원문화원에서는 수원 화성으로 열린 문화답사를 다녀왔다. 남원시민 및 문화원 회원을 대상으로 타 지역의 문화유적 답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 평가함으로써 우리 고장의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수원 화성은 조선시대 정조(1777~1800) 재위 24년 중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이다. 화성은 정조 효심의 결정체라 한다. 수원성은 본래 흙으로 쌓은 단순한 읍성이었으나 정조 13년(1789)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 위치인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그 아래에 있던 관공서와 민가들을 팔달산 아래로 집단 이전시킴으로써 현재의 수원이 형성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정조 18년(1794) 1월에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 9월에 완공했다. 화성의 길이는 5.7㎞, 면적은 130㏊이다. 성안의 부속시설로는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특히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룡문, 장안문, 화서문, 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들을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점이 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 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향토사에 길이 빛날 우리 고장의 동량(棟梁)은 누구일까? 남원발전의 기수는 누구일까?
우리나라는 수많은 성곽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조선시대 대학자이신 남원이 낳은 위대한 선지자 눌재 양성지(1415~1482 조선 초기 학자. 문신. 조선도도, 팔도지리지, 동국지도, 해동성씨록을 편찬, 홍문관 대제학으로 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하고 남원군 봉해졌으며 남원성의 중요성을 상소하여 성을 넓히고 호남을 사수하는 전투성으로 완공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했다. 성곽의 수가 많은 것뿐만 아니라 외침에 대한 방어력, 유사시 주민들을 보호하는데 행정적 기능, 자연재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수행하는 성곽의 축조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성곽에는 도성, 궁성, 읍성, 산성, 장성, 행재성이 있고 성곽의 재료에 따라 토성, 석성, 토성혼축성 등이 있다.
남원은 전란지로서 충절의 혼이 서려 있는 호국성지이다. 고려시대 황산대첩, 조선시대 정유재란과 동학군의 격전지, 일제 때는 항일유격전과 항일운동이 치열하게 있었던 곳이며, 6․25 동란 후 지리산 공비토벌의 주역을 맡은 고장이다.
호남의 요쇄 남원읍성은 백제시대 처음 쌓기 시작하여 신라 신문왕때 재축성하고 조선시대에 다시 성을 넓히고 견고히 하였다. 성의 길이는 약 3.5㎞, 넓이 740.025㎡(223.858평)이고 높이 5.4m 치성이 16개소, 옹성 4개와 4대문, 치첩 1,016개, 해자 6m이고 해자 주변에 말이 달릴 수 있는 마장이 둘러있고 마면 16개소가 있었다. 정유재란 남원성전투에서 왜군 5만 6천과 대항해서 조선군 일천 명, 성내 주민과 명나라 요동군 3천명이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일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 남원성은 무너졌다. 그때 순절하신 충혼을 남원성 북문안에 만인의총이라 하여 모셨으나 일제가 만인의총 옆으로 철도를 내고 남원역 폐탄 야적장을 만들어 묘역이 완전히 훼손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건의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가 있어 성역화 사업은 시작되었다. 왕산 아래로 만인의총을 이장하고 사적 298호 지정되었다. 일제는 남원성을 헐어내고 도로를 만들었다. 다행히 북벽일부(212m)가 남아있어 일부구간의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시 재정과 역대 정권에서 소외되고 시정을 이끈 수장들의 능력 부족으로 1989년, 1997년, 1998년, 1999년 4회에 걸쳐 조금씩 성벽복원공사를 하다가 중지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시민들은 남원읍성 212m 구간이라도 완공하여 주기를 수차례 건의하였으나 복원공사의 필요성은 인정된다는 말뿐 복원공사는 중지된 채 20여 년이 흘렀다.
남원시 그리고 남원을 이끌어온 정치인들이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다면 이와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루 속히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비록 일부분이지만 북문옹성도 만들고 치첩과 치성, 해자, 마장 등도 만들어 옛 남원성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호국정신을 고양하는 문화유산으로 가꾸고, 이곳에서 조명연합군의 사열식과 전투장면을 재연한다면 중국, 일본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영화촬영지로도 활용될 것이다. 남원성이 복원되면 관왕묘와 광한루원, 만인의총과 교룡산 유적공원, 지리산 구룡치 스카이웨와 더불어 남원관광산업의 주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