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일 土요일날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104 산 107번지에 자리한 서진암 석조 나한좌상 5구가 있다고 하여 이곳 주변의 문화재 답사를 하였다, 지리산에 위치하고 있는 실상사의 작은 암자인 서진암에 계범스님이 지난달 부터 살게 됐다. 이전에는 탄공스님이 살고 있었던 서진암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특히 지난 10년간 찾는 이가 거의 없어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서진암의 새로운 암주가 된 계범스님은 유명한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 서진암 석조 나한좌상 5구가 모시어져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마천면과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187m·소백산맥 남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백운산·법화산·상산 등이 있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전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어 산세가 험하다. 남쪽 산록은
백운산·지리산 등으로 이어져 지리산국립공원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상산·월경산·
(칠성각)
덕유산으로 이어져 덕유산국립공원과 연접해 있다.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계류는
임천강 으로 흘러들며, 북쪽 사면에서도 많은 계류가 발원한다. 수림이 울창하며
산록에서는 논농사가 행해진다. 유서 깊은 서진암·백장암 등이 있다. 북쪽 산록으로는 함양읍으로 통하는 도로가 지난다.
서진암 석조나한상( 현재 금산사 불교 박물관에 보관 중)
나한은 깨달음을 얻은 조사를 일컫는 것으로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등으로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유명한 오백나한으로는 경북 영천 거조암의 고려시대 오백나한을 들 수 있다.
실상사 서진암에는 현재 석조 나한좌상이 5구가 있는데, 그 중 1구의 바닥에 '정덕십일년병자화주경희'라는 글자가 둥글게 새겨져 있다. 1516년이라는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시대 전반기 석조상의 면모를 반영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나머지 4구의 상들도 각 부의 양식과 조성기법이 명문에 있는 상과 흡사하여 1516년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5구의 나한상은 모두 머리에 형태가 약간씩 다른 두건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약간 살이 쪘지만 나한상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움추린 어깨와 형식화된 손모양, 양 어깨를 모두 덮은 의복의 옷주름 등의 표현은 조선 전반기 조각양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기둥석 좌대는 2기가 남아있는데, 이후 불교공동체는 계속 커져서 2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초기경전에는 ‘비구여’라는 표현을 쓰셨지만, 이후 대승경전에는 ‘선남자 선여인들이여’라는 용어를 쓰실 걸로 보아 대승불교 공동체는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비아를 포함한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칠성각 내부의 칠성탱화) 부처님의 깨달음은 당시 기성의 가치관을 뒤엎는 것이었다. 수행자들은 집을 나와 함께 집단을 구성해서 생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계급을 뛰어넘는 가르침이 계급사회속에서 함께 할수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깨달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고도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의 구분된 삶으로서 승가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서진암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하였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22년(순조 22)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대영비구가 다시 세웠다. 1917년에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1927년에는 세진암을 서진암으로 명칭 변경을 신청해 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1933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35년에 중수하였다.
현재 서진암에는 독특한 손모양을 한 불상과, 1516년(중종 11)에 만든 석조 나한상 외 4구의 나한상이 있다.
입구에서 서룡산 정상까지 1,2km 이며 서진암자까지는 600m이다, 스님께서 귀화장에 글귀를 적어 두었군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생계로 돌아가 그들을 구제해야한다.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외부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선방에서는 안거(安居)라는 형태와 만행(萬行)이라는 방식으로 ‘닫힘과 열림’의 주기를 만들어놓고 있다. 승가공동체는 오랜 역사속에 많이 갈라져 나라마다 다른 문화와 전통으로 이어져왔지만, 계율을 통해 엄격한 내적 질서를 갖고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가장 역사적인 공동체이다.
이곳에는 경치가 뻬어난 곳이며 실상사와 멸리 경상남도 마천면이 한눈의 들어오는 곳으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아따 스님께서 글귀를 적어두었는데 스님은 업는 상태이고 어디를 출타하셨는지 절터에는 아무도 업으니 산 중간쯤의 돌탑을 쌓아올린것이 군데 군데 남아있다,
(나무아비 타불 관샌보살) 공력드려 쌓아올린 돌탑은 스님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흔적임니다,
올라가도 긑이업는데 의그럿계 멀꼬 다리가 휘청거려 쇠었다가 올라가는데 옷은 땀으로 목욕하고 말았으니 스님이 계신다면 비누나 어더서 옷좀 빨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올라왔건만 스님은 출타중이었으니 부쳐님은 알고 게신지 궁굼하다, 천년의 사찰을 찻아서 문학기행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을 어재를 담아 내일을 전하는 소중한 유산 오늘도 가시밭과 덥풀을 해치고 찻아간 천년의 사찰 빝바랜 꼴짜기의 선조들의 향기가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