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팔기와 더위타령
남원학연구소
노 상 준
냉방기가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여름을 보냈을까? 창문에 대발을 쳐 햇빛을 가리고 바닥에는 대자리를 폈으며 죽부인(竹夫人)을 끼고 잠을 청했다. 또한 여름이면 부채와 죽토시를 이용했고, 더위팔기와 민속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이겼다.
여름철에 더위 때문에 몸에 이상 증세가 생기는 것을 ‘더위 먹는다’고 한다. 더위를 먹었을 때에 보이는 흔한 증상으로는 입맛이 없으며 두통과 어지럼 증세가 있다. 또한 몸에 기운이 없고 만성피로감을 호소하며 숙면을 취하기가 힘든 점 등이 있다. 한여름 땡볕에 장시간 노출되면 일사병에 걸릴 수 있어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세시풍속에는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재미나는 놀이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방편을 썼다. 한 예로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에 남에게 더위를 파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을 ‘더위팔기’ 또는 ‘매서(賣暑)’라 한다. 이웃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불러 친구가 대답을 하면 “내 더위가 네 더위”라고 한다든가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면 더위를 판 것이 되고, 더위를 판 사람은 한 해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의 부름에 멋모르고 대답한 사람은 자기의 더위까지 합쳐 두 사람 몫의 더위를 먹게 되므로 대보름날 아침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냉큼 대답을 하지 않으며 때로는 대답 대신 “내 더위가 네 더위”라고 먼저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위를 팔려고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의 더위를 먹게 되는 재미있는 풍속이다.
현대에는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가 더위를 내쫓는다. 손으로 부채를 부쳐 더위를 쫓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토시를 끼고 부채를 손에 들고 다니는 멋스러운 피서객도 간혹 볼 수 있다. 그리고 창문에 대발을 치고 아흔 아흡 발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을 쐬며 대자리에 죽부인(竹夫人)을 안고 자기도 한다. 더위에는 대나무만큼 요긴한 것이 없다. 판소리 ‘박타령’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담양대’ 땀받이에 한산모시 고의적삼, 전주 죽선은 왼손에 들려라. 굳이 죽선 부쳐 무삼 소용이냐. 아흔아홉 ‘발’ 틈으로 새어드는 바람, 아흔아홉 뼈마디가 아리도록 시리는데…….」 이렇게 더위 속에 꼼짝 않고 부채질 마저 거부하는 피서방법도 있었다.
고려 때 청빈낙도(淸貧樂道) 했던 시인 이인노(李仁老)의 ‘탁족부(濯足賦)’에는 「나물 먹고 배불러서 손으로 배를 문지르고 가냘픈 오사모(烏紗帽) 제껴서 쟁그랑 용죽장(龍竹杖) 손에 짚고 돌 위에 앉아 두 다리 드러내어 발을 담근다. 물을 한 움큼 입에 머금고 주옥을 뿜어내니 불같은 더위가 도망치고…, 대자리(竹席)에 조각만한 영목침 베고 꿈속에 흰 갈매기와 희롱하니 좁쌀이야 익거나 말거나」 정적(靜的) 피서 보다 동적(動的)인 피서를 즐기는 모습이다. 두레박 샘가에 등목하며 둘러앉아 이야기에 흥이나 더위를 잊은 아낙네들. 이를 담 너머 지켜보는 남정네들. 도색이 드러나는 ‘포르노’성 피서로 더위를 쫓는 차원 높은 심리적 피서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민족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온돌을 발명하였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고 죽부인, 대자리, 죽토시, 부채, 대발을 만들어 슬기롭게 더위를 이겨냈다. 옛것이 진부하다 여겨 모두 버리려 하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얼과 풍속은 소중하게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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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6 15:1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