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달고사와 천신
남원학연구소 소장 노 상 준
상달고사란 음력 10월에 집안의 조상들에게 추수감사와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올리는 의례를 말하며, 천신(薦新)은 농사를 지어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하면 그것을 제일 먼저 조상에게 드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새로 난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조상을 모신 사당에 드리고 나서야 먹었다. 식구들이 먹을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 먼저 드리고 나서 먹었다. 이것이 예의이고 질서였다.
음력 10월이 되면 농사일이 끝나고 겨울 준비가 시작된다. “입동”과 눈에 내리기 시작한다는 “소설”이 있고 김장이 시작된다.
농촌 가정에서는 추운 겨울 대비하여 창호지를 바르고, 방구들도 고치고, 가축이 춥지 않게 거적도 쳤으며 여자들은 겨울옷을 준비하며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였다.
예로부터 10월은 강신날이라고 하여 음력 10월 초사흗날이면 햅쌀과 햇과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때 고사떡은 팥 시루떡으로 지내는데 팥의 붉은 빛이 잡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지에 팥죽을 끓여 집안의 구석구석에 뿌리면서 집안의 안위를 기원했던 옛 어머니들의 정성어린 생활의 풍속도 여기에 연유한 것 같다.
우리의 민속설화에 농신(農神)으로 받드는 한얼님이 여름동안 농사를 돌봐주고 유월(六月)의 머릿날(流頭日) 하늘로 올라간 뒤 그동안 하늘에 계시다가 10월에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되는데, 이때 한얼님을 맞이하여 풍작에 대한 감사로 고사를 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월을 12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이란 뜻으로 상달이라 했다.
또 상달에는 햅쌀을 적은 단지에 넣어서 선반 위나 벽장위에 고이 모시고 삼신단지, 청룡단지, 성주단지라고 하였다. 삼신(三神)이나 천룡신(天龍神)은 다같이 한얼님의 별칭이라 한다. 아기를 낳게 해주는 생산신(生産神)을 흔히 “삼시랑” 또는 “삼신”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삼신(三神)의 본뜻은 우리나라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환인(桓因), 황웅(桓雄), 환검(桓儉:곧 단군)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오늘의 개천절(開天節)의 유래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곧 우리나라 단군신화에서 보면 10월 초사흗날 국조(國祖) 단군(檀君)이 하늘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국가에서는 10월에 한얼님이나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러 행사를 하는 제천(祭天)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고려 때의 팔관회가 있었다. 이런 유래에 따라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각 문중(門中 : 곧 씨족)에서는 조상에 대한 “시제(時祭)”를 지낸다. 대개 각 집안에서 자기의 4대조(四大祖)까지만 방안이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는 “시제”로 대체한다.
시제는 자기의 5대조 이상 중시조(中始祖) 또는 시조(始祖)까지 제사를 지내게 된다. 이 시제를 지내는 날에는 멀거나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많은 후손들이 묘소에 모여 제사를 지내게 된다. 제물은 전통적으로 묘소에 소속되어 있는 논과 밭(위토답 : 位土沓)에서 생산된 것으로 충당한다.
시제에 후손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을 그 문중에 자랑으로 여겼다. 또한 집안에서 성주제를 지내는데 성주는 집을 지키는 신을 의미하는데 성조신(成造神) 또는 상량신(上樑神)이라고도 한다. 대개의 시골 농가에서는 조그만 단지에 쌀을 넣어 성주신의 표상으로 하고 있다. 10월이 되면 농가에서는 성주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제사를 “성주제” 또는 “안택제(安宅祭)”라 부른다.
햇곡식으로 좋은 날을 택일하여 떡과 술을 정성들여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그날 저녁에 지낸다. 이 성주제는 때로 무당을 불러서 굿(성주굿)을 겸하여 하기도 한다.
예부터 상달고사와 천신은 조상이나 신에게 일 년 농사가 잘 되게 해주시어 감사하다는 뜻으로 바친 제례이며 생활 질서를 나타낸 것이다. 조상과 웃어른에게 먼저 드린 후에 식구들이 나누어 먹은 것은 인간의 예의요, 도리인 것이다. 이와 같은 풍습은 천신에서 유래된 미풍양속이며 가꾸어야할 생활규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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