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와 고수레
남원학연구소 소장 노 상 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 중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어떤 일이 보다 잘 되어 주기를 바랄 때에 행하던 고사(告祀) 지내는 풍속이 있다. 새로운 일에 앞서 실패와 우환질고(憂患疾苦)를 예방하기 위한 기원의 성격이 크며 명절 등을 맞이하여 행운을 기원하는 고사 등도 있다. 동제나 기우제의 경우에는 지방관리 또는 마을 이장이 제주가 되지만 고사의 경우는 그 집안의 주부가 되는 것이 상례이다.
고수레는 들녘이나 산천에서 무엇을 먹고 마실 때, 산제를 지낼 때 먼저 고수레를 하고 나서야 먹든 마시든 한다. 밥이나 반찬, 술을 조금씩 떼어내어 주변에 뿌리는 것을 일러 ‘고수레’ 또는 ‘고시레’, ‘고씨네’, ‘고시래’ 등으로 지방 따라 달리 불린다. 이 속신 행위는 대개 들놀이, 산놀이, 뱃놀이 갔을 때나 전답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먹을 때 사람들이 먹기 전에 자리 밖에 고수레하고 음식을 던지는 일을 말한다.
산신제나 성묘 가서 제물을 차리고 고수레는 당연한 순서이다. 천지에 고하고 먹는 것은 우리네 풍습이었다. 고수레에 스며있는 정신은 자연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요,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천지의 덕(天德)이라는 것이다. 고수레는 모든 생물과 함께 나누어 먹고 함께 살자는 공생(共生)의 깊은 정신이 깃들어 있다. 공생은 다 함께 잘 살자함이다. 이러한 공생의 정신을 대동(大同)이라 한다. 풀도 먹고, 벌레도 먹고, 산새도 산짐승도 먹는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고수레라는 풍습이 생겼다. 그런데 요사이 산림녹화가 잘 되면서 산에는 산짐승, 특히 멧돼지가 많이 서식해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산골 농사에 큰 피해를 주고 도심권까지 출몰할 때도 있다. 특히 산제를 지내면서 묘 주변에 고수레를 하는 것이 멧돼지를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며 멧돼지가 묘를 파헤치는 일이 허다하여 졌다.
멧돼지는 술이나 음식냄새를 멀리에서도 잘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묘 주변에 가까이 고수레를 하면 안된다. 아직도 가정이나 공장 사업체에서 고사의 풍습이 지켜지고 있다.
음력 10월은 상달이라 하여 많은 고사(시제)를 지낸다. 고사를 지낸 후에는 술과 떡, 과일 등을 가족이나 친지,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덕담과 함께 행운을 비는 말들을 한다.
고수레는 우리에게 음식은 하늘과 땅이 준 것이니 나누어 먹고 함부로 하지 말라는 지혜를 터득케 하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이며, 천지에 있는 온갖 목숨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생의 대동정신이 ‘고수레’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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