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
남원학연구소 노 상 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의 가죽만은 쓸 만한 것이다. 호랑이의 가죽이 인간에게 쓸모가 있고 없고 간에 죽은 후에 남겨진 그의 가죽은 고고하고 그가 살았을 때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혀야 하고 그리고는 남는 것이란 이름밖에 없다. 이 이름만으로도 죽기 전의 그의 모습과 성품과 업적을 생각케 하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과 더불어 생각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기억하며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좋은 이름을 짓고자 하고, 좋은 일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바라고, 좋은 기억과 더불어 연상해 주기를 누구나 기대한다. 사람들은 이름을 빛내는 일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며 이름이 더럽혀지는 일을 가장 치욕으로 느낀다. 이름은 곧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인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인이 된 사람이나 옛사람의 이름을 들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육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과 생활과 정신의 모두를 연상한다.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을 뜻하고 우리는 자신의 이름이 좋은 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나쁜 일로 나오면 그처럼 부끄럽고 민망스럽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자기의 이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하여 자신의 업적이 아닌 것도 자신의 이름으로 나타내고자 하고, 자신의 업적을 선전하고자 하며 조그마한 것도 과장해서 나타내고자 하기도 한다. 또 이름뿐 아니라 어느 집 자녀, 어느 성씨, 어느 고장 사람, 어느 학교 출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 어느 나라 국민 등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고유명사 외에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산다. 이런 이름들은 한 개인의 이름은 아니지만 이 이름으로 불리는 지역 단체나 집단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나타내어 준다. 자기 살고 있는 고장이나 마을사람을 칭찬하면 즐겁고 욕을 하면 불쾌하다. 한고장의 이름도 나의 고유명사와 마찬가지로 좋은 일로 불리면 그 고장 사람들이 즐겁고 자랑스러우나 나쁜 일로 오르내리면 수치스럽다. 최근 우리고장이 재정자립도 전국 시 중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 지방축제(춘향제)도 전북권에서 김제, 무주, 순창 다음이라니 남원 사람들은 우울하고 허탈하다.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시민 스스로 반성하고 원인을 찾아 시민들은 나서야 한다. 남원시가 옛 영화를 찾으려면 ‘세계 사랑의 expo’를 개최하여야 한다. 사랑의 도시로써 기반조성도 열심히 하고 고전거리(춘향전, 흥부전, 변강쇠전, 만복사저포기)도 만들어야 한다. 관민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시정에서 가장 중요한 쓰레기 처리장 문제로 패소하여 30억을 배상하고도 시민에게 잘잘못을 말하지 않는 것은 가장 잘못된 처사였다. 그러나 한사람의 기초의원이 국비 10억 원을 확보하여 화제가 되는 기쁨도 있고 만인의 총 성역화 사업에 3억 원의 도비를 확보한 도의원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고위공직자와 선량들은 지역을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을까? 자기 입신에만 도취되어 있는 것 같다. 지역 정체성 기초위에 지역발전을 위한 청사진은 무엇인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창구로써 중요정책 토론회 한번 제대로 개최하지 않는다. 이웃인 정읍시에서는 민선 5기 출범 후 2014년 1월 현재까지 총 117회의 토론회가 진행됐으며 178건의 주요 정책이 의제로 다뤄졌다 한다. 남원 시민은 귀먹고 말 못하는 벙어리만 살고 있는지 아는가? 행정경험만 앞세워 지역을 이끌어가는 구시대적 착상은 버려야 지역이 발전한다. 투철한 애향심과 사업능력이 있어야 하고 시민과 융화하고 시민의 조언을 겸허히 받을 줄 아는 자세와 지역 현안사업을 위해 중앙요로에 열심히 뛸 수 있는 마당발이 필요하다. 남원의 역사는 찬란하였다. 통일신라 5소경 중의 하나요, 고려시대 남원부, 조선시대 남원도호부의 영광이 이제 전국 꼴찌에 가까운 서러움을 남원 시민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지난날을 돌아보면 광한루를 증축한 역대 남원 부사들, 황산대첩비지를 성역화한 이화익 군수, 구룡치 스카이웨이를 개설하고 육영사업에 앞서신 유광현 국회의원, 향토발전과 고향사랑이 남다르신 양창식 국회의원, 육영사업과 시장 개설에 열중하신 이남근 이사장, 그리고 육영사업에 앞장섰던 양승권, 양승대 이사장, 고향을 지극히 사랑한 심재명 사장,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 사업에 내놓으셨던 양병식님, 남원의 원로였던 이만기, 양창현 어른…. 그분들께는 남원발전에 그렇게도 심혈을 기울이셨건만 오늘의 남원현실은 처참하다. 남원의 명예는 땅에 떨어져 있다.
우리 전통 지방지자체의 규약이라 할 수 있는 향약(鄕約)에는 그 규약을 어겼을 때 가하는 벌칙이 정해져 있었다. 율곡(栗谷) 선생이 정한 해주(海州)의 향약에 보면 벌은 상벌(上罰), 차상벌(次上罰), 차중벌(次中罰), 하벌(下罰) 다섯 가지로 하고 양반과 상민에 가하는 형벌을 달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대들거나 상중(喪中)에 술에 취해 주정을 하면 상벌에 해당된다. 그것이 상민이면 태(苔)를 40대를 치고, 양반이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 자기 이름을 써 들고 앉아있는 명예형을 가했다. 이는 만좌명책(滿座名責)이라 하여 향약이 가할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었다. 이름을 공개 훼손하는 것이 어떤 처벌보다 더 중형이었음은 이름을 얼마만큼 중시했는가의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남원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사람들은 남원 시민들 앞에 자기 이름을 써 들고 석고대죄(席藁待罪)하라.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 뜻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당신의 입신보다 먼저 향토를 사랑하고 지역발전에 혼신의 힘을 다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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