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를 알고 살자
남원언론문화재단
노 상 준
요사이 정치 지망생이 너무 많다. 보다 좋은 내일을 가꾸기 위하여 헌신 하고자 하여서인가, 자기 입신을 위해서인가, 잘못하면 패가망신하고 지역사회에 큰 누를 끼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것인데, 정치는 정말 어렵다는데 너무 쉽게 알고 덤비는 것 같다. 그들은 유권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고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유권자들을 찾아 자기 알리기에 동분서주한다. 그들은 자기능력도 분수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분수를 지키는 것은 반상(班常)간에 우리전통 사회를 사는 기본 조건이었다. 처지가 달라져도 분수를 잃지 말라는 교훈으로 놀부나 흥부처럼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서당에서 글을 가르칠 때 ‘놀부처럼 되어도 안 되고 흥부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놀부 같지 말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고약한 심사를 경계해서 그렇다. 그런데 흥부가 되지 말라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유는 이렇다. 흥부가 박을 타서 정신없이 치부 하자, 그 가엾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양귀비를 데려다가 별당 후원에서 화초 구경, 옥란간 밝은 달에 둘이 비껴 앉아 은은히 천녀우의곡(天女羽衣曲)을 듣는다. 또 글이라고는 일자무식인 주제에 제자백가와 사서삼경을 가득 담은 책롱(冊籠)을 방안 가득 즐비하게 들여 놓고 있다.
현대 유행어로 북콘서트(Book Concert)란 말이 있다. 뮤직콘서트(Music Concert)는 있어도 북콘서트란 말은 최근에 와서 정치 지망생들이 자기 알리기 위한 출판 기념행사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음악 감상은 많은 곡에 대한 음악적 지식과 음악사는 물론 그 측면에의 깊은 이해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지지만 출판기념회장은 저자의 얼굴을 쳐다보고 저자의 자랑을 듣고 내용도 모르는 책 한권을 사들고 파티 장을 빠져 나오는데 불과하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음을 경계하는 말로 ‘분수를 알고 살아가라’는 말이 있다. 먼저 자기 주제를 깊이 생각하고 정치판에 뛰어 들어야 한다. 옛날 선비 사회에서는 자신의 기품(氣稟)이나 심덕(心德), 견문(見聞), 처지(處地), 경륜(經綸), 재국(才局)을 객관적으로 따져 일분(一分)에서 십분(十分)까지 분수를 정해놓고 그 분수에 알맞은 집차림, 옷차림, 그리고 음식차림을 비롯한 행동거지를 검속했던 것이다.
옛 중국 고전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어느 서생이 과거 공부를 하는데 번번이 낙방만 했다. 절망에 빠지자 죽기를 결심하고 목을 매려 하다가 죽기 전에 한 번 옥황상제에게 왜 나만을 이렇게 괴롭히는가를 따져보고 싶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이 세상사람 얼굴이 각각 다르듯이 성품이나 재간도 그만큼 씩 다르다. 다른 만큼 그 사람에게 알맞은 일 또한 다르다. 알맞지 않은 일을 하려할 때에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는 자기의 적성과 능력을 알고 속세에 돌아와 그길로 대성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권력형 부정혐의로 잡혀 들어간 전경환씨가 구속되면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분수에 맞게 살았어야 하는데….” 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의 분수보다 대통령의 동생으로서의 분수가 더 큰 분수였을 텐데….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분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역분수가 그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우리 모두 깨우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지역발전에 큰 비전도 역량도 없으면서 분수도 모르고 뛰어들어 선거구민을 실망케 하고 패가망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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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5 14:4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