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에 올라보니-중국산동성 태산 여행기(2) -
한국새사도교회 주교(ret)
서 호 련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
‘
태산에 올라와 보니 세상이 작다’
이 시는 정상 바로 밑 바위에 새겨진 공자의 시다. 태산엘 힘겹게 올라가니 내 마음에 떠오른 의문이 하나 생긴다. 황제들이 정말 이토록 험하고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것인가? 필시 그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태산의 하단이거나 아니면 중턱이 아니었을까?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제사를 지내는 곳은 저 꼭대기의 옥황정(玉皇頂)이었다고 한다. 황제가 이곳에 거동할 때는 수만 명부터 20만 명에 이르는 군사들이 호위하고 동행하였고 황제를 가마에 태워 정상까지 올렸다는 것이다. 적어도 2-3일은 산에 머물렀을 테니 그 많은 군사들의 음식과 잠자리도 궁금했다.
봉선의식(封禪儀式)이란 중국왕조의 국가적 행사가운데 가장 장엄한 의식으로 황제가 즉위하고 난 후 나라를 태평성대로 만들거나 만들려고 할 때 하늘에 올리는 신고식이다. 군주는 태산에 올라 천명을 주신 하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보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역대 제왕이 열광적으로 추구했던 봉선(封禪)이다. 후덕한 황제에게만 허락되었다는데 후덕치 아니한 황제들도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올리고 민심을 수습했다고 한다. 고대의 제왕 72인이 이곳에서 자신의 공적을 하늘에 아뢰는 봉선을 행하였으나 춘추전국시대 600여 년 동안에는 봉선을 한 제왕이 없었고 황제로서는 최초로 진시황이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전한다.
한고조 유방의 다음 황제가 한 무제(漢武帝)다. 그는 건국 이래 숙적이던 남만과 북적을 정벌하여 사해를 평정한 뒤 BC 110년에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올렸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淡)은 사관으로서 지방에 있었던 관계로 이 봉선의식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분사하였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태산에서 행해진 봉선의식의 중요성을 이해할 만하다. 정상 바로 밑에는 무자비(無字碑)라는 한 무제의 거대한 비석이 있다. 수천 개의 비각과 비석 중 이것만 아무 글자가 없다. 그의 업적이 너무도 넓고 높아서 도저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하여 글자가 없는 비를 세워 놓고 갔다고 한다.
황제를 한 번 만나 볼 겸 태산에 올랐지만 그 어디에도 황제는 보이지 않았다. 천국의 경계선이라고 하는 승선방(昇仙坊)에서 정상을 올려다보니 직선거리로 70여m, 시간으로는 한 2-30분 걸릴 것 같은데 나는 너무 추워서 아내에게 그냥 하산 하자고 하였다.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등반하러 온 것이 아니고 태산이라는 곳이 대충 어떤 산인가 감이나 잡으려 왔는데 추위를 무릅쓰고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느냐고 설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뒤돌아섰다.
그런데 정상까지 올라갔던 NASA의 그분은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사 입은 외투를 벗어 휴지통에 집어넣으면서 말 했다. 정상에 올라가 보니, 바로 밑에 200여 개의 석각들이 장관이더라고 하였다. 중국 인민을 해방시킨 모택동이 지은 시 구절이며 공자의 후손들이 공자가 태산에 오른 것을 기념해서 새긴 공등암(孔登岩)이며 ‘과연(果然)’ 이란 두 글자만 새겨 논 거대한 석각이 있더란다. 옆에서 공자학회 회장이신 김 교수님도 거들고 나서면서 비각에 새겨진 시 구절들을 대충 설명해 주신다. 잠깐 입고 버린 2만 원짜리 그 중공군 군복 같은 외투가 비싼 것이 아니었다. 우리도 그 외투를 사서 입었더라면 정상에 올라 비림(碑林)의 석각에 새겨진 호걸들의 명시를 보았을 것이니, 후회막급이었다.
태산의 바위란 바위에는 수많은 세월동안 중국역대의 제왕, 정치인, 시인들이 남긴 글로 가득 메워져 거의 빈자리가 없다. 현재 태산 일대에 새겨진 석각은 천 8백 여 곳이다. 그 가운데 비석이 8백여 개, 마애석각이 천여 개나 된다. 태산은 거대한 ‘마애석각박물관’인 셈이다. 태산 정상의 석각만 258곳이다. 태산의 칠부 능선엔 중국의 시선인 이태백이 시와 술에 취해 영원히 잠들었다는 바위가 있다.
중국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마음을 갈고 닦았던 태산! 그들이 남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맹세가 담긴 글들을 보니 태산이 중국의 영산은 영산이었다. 그래서 태산은 자연경관과 함께 세계복합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남원의 지리산. 우리도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이만한 환경파괴도 없을 듯싶지만 이런 환경파괴는 오래되면 문화유산이 되는 모양이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유명해진다.’고 했다. 태산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천연역사물이며 예술박물관이라 할 수도 있다. 암벽에는 여러 시대에 걸친 제자(題者), 경문, 시 구등이 여러 서체로 새겨져 있다.
남천문 부근 바위벽엔 ‘부앙무괴적 俯仰無愧적)이란 석각이 있다. 태산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 수치스러운 일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비림 속에는 모택동의 시 한 구절이 큰 글씨로 쓰인 비석이 있다.
수풍류인물환간금조(數風流人物還看今朝)-
‘이제 영웅으로 불리던 그 어떤 인물도 다 지나갔고 현재 영웅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무산계급만 남았다.’
모택동의 이 시는 1936년 그가 중국공산당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십팔반이 시작되기 직전에 지은 심원춘설(沁圓春雪)의 한 구절인데, 이는 인민에 대한 모택동의 애정을 표시한 글이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다.
주은래의 부인 등영초의 글도 있다.
등태산간조국산하지장려 (登泰山看朝國山河支壯麗)
‘태산에 올라 중국의 산하를 내려다 본다’
당 현종이 봉선한 옥첩내용의 글도 있다. 이전까지 하늘에 고했던 옥첩은 모두 비밀에 부쳐졌지만 현종이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것이다. 정상 바로 아래 커다란 절벽에 새겨져있다. 금박을 칠한 휘황찬란한 966자의 예서체이다
천하대관기태산명마애비 (天下大觀記泰山銘摩崖碑)
‘선인들의 비문이 태산의 위엄을 찬양하고 당시대의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구나’
오늘 이 태산에서 어느 황제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충정과 역대 영웅호걸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내 가슴을 적셨다. 공자의 말씀대로 태산에 오르니 세상이 작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천하의 인걸은 다 어디로 가고 태산엔 그들의 숨결만이 남아있는가?
나와 아내는,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고 뒤 돌아섰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떠 올리지 못하여 태산을 이루지 못했다’는 선현의 격언은 마치 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던가?
참고; 태산은 세계자연, 복합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가 1972년 제정한 세계유산협약에 따르면 세게 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등 3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2011년 7월 기준으로 148개국 890점( 문화유산 686점, 자연유산 176점, 복합유산 25점)이다. 이중 한국은 문화유산으로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 등 9점과 자연유산으로 제주 화산섬 및 용암동굴 1점등 10점을 보유하고 있다. 아직 까지 복합유산은 1점도 없는데 이번에야 지리산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복합유산이 어려운 것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선정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까다롭고 많은 학술자료가 필요하다. 지리산은 역사문화 경관 등의 보고다. 지리산은 남한내륙의 최고봉인 1916.77m의 천왕봉을 주봉으로 동서 100여리에 이르는 거대한 산악 군이다. 깊은 협곡의 물은 낙동강지류인 남강과 섬진강의 몸을 불리고 1200여종의 동식물을 키워내고 있다. 또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실상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국보 보물 등의 문화재를 품고 있다. 이러한 명성으로 1967년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이 세계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시험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되기만 하면 전북. 남원을 비롯한 3개도 7개시군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자랑이 된다. <지리산 새벽포럼>이 이 문제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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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1 20:3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