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만은“
또 이런 속담도 있다. ‘티끌모아 태산’ ‘걱정이 태산 같다.’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떠 올리지 못하여 태산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전 남원의 한 퇴역장성이 쓴 자서전의 제목이 《태산을 넘어》였다. 나는 태산이 흙으로 쌓아 올린 인공토산인지, 아니면 그냥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학상의 산인지? 그 개념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안내서나 가이드의 설명으로 태산이 실제로 존재하는 유명한 산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태산은 신이 만든 산으로 숭앙되어온 중국인의 영산이다. 중국 5대 명산 중 하나인 ‘동악 (東岳)’으로 고대 황제들이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했던, 예로부터 영혼이 깃든 산이라 여겨진 산이다. 봉선의식이란 황제들의 제사의식이다. 나는 봉선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흙으로 둥그렇게 봉 같은 흙무더기를 만들어 그 위에 향불을 피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데서 연유된 말이라고 이곳 향교 명륜당의 교수님이 알려주셨다.
드디어 버스가 태산 입구에 도착했다. 막상 와보니 듣던 것처럼 높지도 않고 보통 산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나라 오대산 정도의 높이인데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우리네 산봉우리와 달리 산동의 평원지대에 불쑥 솟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이 보일 뿐 우리나라 북한산을 몇 개 겹쳐놓은 것 같은 산세였다. 중국의 남서부에는 4,000m가 넘는 산들이 많은데 높지도 않고 그리 멋있게 보이지도 않는 태산이 왜 이처럼 유명한지 궁금했다. 산의 높이는 해발 1,545m로 산동성 구릉에서는 최고로 높은 산이다. 산기슭에서 정상까지는 직선거리로 9km의 거리인데 7,000개의 돌계단이 정상까지 놓여 있고 올라가는 길엔 수많은 비석과 묘당이 있다.
우리는 천외촌(天外村)이라는 셔틀버스의 시발점에서 중턱의 중천문(中天門)까지 버스를 탔고 거기에서 다시 삭도(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밑의 남천문(南天門)에서 내렸다. 버스는 태산의 둘레를 요리조리 돌아서 위로 올라가는데 산의 폭이 보기보다는 훨씬 넓고 깊은 골짜기도 많았다. 삭도를 타고 다시 남천문으로 올라갈 때는 고도가 높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올라가는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허연 폭포수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내리고 있다. 높은 산이라기보다는 깊은 산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보통 관광객들은 항상 관광객이 붐비는 홍문에서 시작하여 가파른 7,000개의 돌계단을 걸어서 남천문을 거쳐 정상에 오른다. 6시간 이상을 걸어 올라 가야 한다니 중간쯤 오르면 다리가 아파서 태산이고 뭐고 괜히 올라왔다는 후회가 드는 고행이다.
그러나 태산에서 복을 빌거나 아니면 태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인지 사람들은 기를 쓰고 산에 오르려고 한단다. 태산은 도교의 성지다. 태산의 산기슭에 자리 잡은 수십 개의 사찰은 모두 도교의 것이다. 중국인들은 우리가 보기에도 무식하리만큼 향을 한 다발씩 피우면서 연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간절히 뭔가를 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중국도 설화가 많다. 관직에 오르려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비를 맞으면 왕이 된다는 설화다. 그러니까 비 오는 날 이곳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개 정치지망생들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한국의 전짖 모 대통령도 비를 맞고 태산에 올랐단다. 그 뒤 한국정치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는데, 물론 비 오는 날에 맞추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삭도가 남천문에 도착하니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어제 내린 비로 날씨가 매우 추웠다. 비오는 어제도 사람들이 많이 왔을 것이다. 정상 쪽으로 나아가는 길 좌우에는 여관과 상점들이 즐비했고 여기에서 방한복을 팔고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서 근무하다 오셨다는 분이 국방색 방한복 외투를 20달러(2만원)를 주고 사서 입었는데 마치 중공군 같았다. 우리는 가을 사파리 위에 어제 곡부에서 산 일회용 우의를 걸쳤는데 우의가 너무 얇고 찢겨져 바람과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곧 이어 천가(天街)라는 높은 누각과 현판이 보였다. 영어로는 Heavenly Street 라고 써 놓았으니 이곳이 신선이 걸었다는 하늘 길, 하늘거리라는 뜻이다. 중국사람 들의 표현 방식을 따르면 남천문 부터 본격적으로 하늘나라가 시작되는 것이고,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까지를 하늘거리라고 명명한 것이다. 좌측으로는 거대한 중국식 상가가 줄을 이었고 우측은 운무 사이로 아스라이 태안시가 내려다 보였다.
운무위에 떠올려진 하늘길이 왜 하늘길인가. 왜 하늘아래 뫼 라고 했는지를 느끼기에 충분 했다. 이곳에 이러한 취락이 생겨 여관, 식당, 상점들이 들어섰는데 이는 청나라 때부터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태산은 사람들이 오르고 싶은 곳이었나 보다. 수많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갈망했던 태산이니 백성들의 갈망이야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어떻게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저런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여 이런 건물들을 건축했으며,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7천 개의 돌계단을 쌓았단 말인가? 돌계단이 그냥 막돌을 쌓아 만든 계단이 아니라 큰 돌을 대리석같이 반듯이 잘라 폭 4-5m의 넓은 계단을 만든 게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여하튼 중국 사람들은 알아주어야겠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태안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모택동의 넷째 부인이며 문화대혁명의 주역이었던 강청은 바로 이곳 태안 출신이다.
정상의 비림(碑林) 석각 군(群)에 ‘과연(果然)’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청나라 강희재 때 쓴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 큰 바위면 에 단 두 글자만 새겨져 있다. 과연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하냐 라는 뜻일 게다. 태산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 복합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복합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산의 자연경관, 도교의 사찰들, 기복신앙의 흔적, 황제들이 올라와 국태민안을 위하여 봉선의식을 행 했다는 신비의 역사, 거대한 돌 계단 비림석각의 예술과 문화 등이 태산이 세계복합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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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02 20:4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