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사령관 이현상 (1)
‘지리산 빨치산의 전설적 영웅, 이현상(李鉉相) 남부군 사령관. 1953년 9월 17일, 지리산의 빗점골 에서 아군에 의해서 사살됨으로서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을 마쳤다. 그는 남한 빨치산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숫한 전설과는 달리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현상을 잡지 않고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 했다고 할 수 없다’ 면서 그의 생포를 위하여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남부군이란 이현상의 직할부대로서, ‘이현상 부대‘ 또는 ‘나팔부대’ 라고도 불렸다. 휴전 이후 이 현상과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서 지리산을 에워싸고 전투를 벌렸던 국군, 경찰 부대가 1만 8천명에 이르렀고 교전회수는 1만 717회, 아군의 전사자 6,330명, 빨치산의 희생자도 1만 수 천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현상 남부군 사령관이 있었던 것이다.‘지리산, 그 천국의 나날들!’ 지리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남원 국제 학술 세미나가 아니었으면 이 글안에 든 이현상이를 만나지 못했을 번 했다. 지금 우리는 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리산 세계유산에는 한국 현대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지리산 전란이라는 비극의 흔적도 담게 된다. 민족상잔의 비극이 그 이상 인류에게 재현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지리산, 그 천국의 나날들’ 이라는 이 글 은 한 학술단체의 소식지에 실린 윤주옥이라는 여자가 쓴 글이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은 지리산 전란사의 주인공이며 한국현대사에 빼 놓을 수 없는, 그리고 지리산 세계문화유산에도 빼 놓을 수 없는 비극적 인물이다. 윤주옥은 인간 이현상을 이렇게 조명 하고 있다.
‘왜, 산으로 갔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디다. 부모, 자식, 아내, 모두 버리고 왜 산으로 들어갔냐고. 누구는 우리를 사회주의자라 합디다마는 실은 사회주의가 뭔지 잘 모릅니다. 산으로 들어온 어느 날이었어요. 저 멀리 불빛이 보입디다. 진주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불빛을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한 분이 제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동무, 식사하셨습니까?‘ 라고요. ’동무, 식사하셨습니까?‘ 란 그 말, 제가 태어나 들은 첫 존댓말이었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그런 다정함과 따뜻함으로 말 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 전 생각했습니다. ’내가 고추장 퍼준 죄 때문에 산으로 들어 왔지만, 난 이 사람들을 위해 죽어도 좋다.‘ 이 사람들, 저를 인간으로 대해 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과 밥 먹고, 이야기하고, 꿈 꿀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곳에서 제 삶을 마칠 수 있어서 더 없이 행복 했습니다.“
지리산 토끼봉에서 명선봉-형제봉- 덕평봉-영신봉에 이르는 주 능선의 남쪽은 통칭 대성골로 불린다. 토끼봉 남부능선과 영신봉 남부능선 틈새의 이 골짜기에는 커다란 계곡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주능선 토끼봉에서 덕평봉 까지의 남쪽사면의 큰 골짜기들의 물길을 아우르는 상류 합수지점. 너덜강이 있는 곳이 빗점골 이다.
1953년 이현상은 빗점골에 있었다. 9월 17일 그가 숨어 있는 대략의 위치를 파악한 토벌대는 빗점골을 포위했고, 이튿날인 9월 18일 오전, 총상을 입고 사망한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지리산, 그 천국의 나날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분은 누구에게도 반말을 쓰지 않았어요. 모두에게 존대를 했죠. 먹는 것 도 그랬답니다. 우리 생각에는 대장이 살아남아야 우리도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분 먹을 건 항상 남겨뒀는데 그분은 언제나, 기꺼이 나누는 거예요. 혼자 먹는 법이 없었지요, 원칙적이면서도 딱딱하지 않았던 것도 인상에 남습니다. 쉬는 날에는 모두 모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그런 자릴 거리낌 없이 만들어줬어요. 그러다가 전투가 있는 날엔 칼처럼 강인하고 간결했습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좋은 세상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랬습니다.”
“1948년 말 부터 1954년 까지 그런 저런 사연으로 산사람이 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지리산이요, 이 산이 없었다면 우린 1주일도 견디지 못 했을 겁니다. 지리산은 우리들에게 모든 걸 다 내어준 산입니다. 생명과 같은 산이지요. 우리에게 지리산은 아픔이 아니라 꿈입니다. 지리산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키고 싶은 걸 지킬 수 있도록 한 곳이니까요. 사람들은 말한다. 얼어 죽을, 굶어 죽을, 총맞아 죽을 각오를 하면서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지금보다 나은 세상,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던 사람들 이니 행복하였을 거라고, 그러니 지리산은 아픔이 아니라 희망의 산이라고 한다. 옷, 양말, 신발 등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이, 그들은 영하 40도의 천왕봉을 맨발로 다녔던 것이다. 다음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