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얼굴이 어여쁜 춘향을 제안한다.
미인대회 홍수 속에 남원은 춘향의 차별화에 실패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영화 ‘방자전’ 논란이다. 방자전에서 춘향은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옷고름을 풀어버리는 사욕(私慾)에 눈 먼 여성으로 그려졌다. 춘향과 정반대의 이미지로 매도됐지만 300만 관객이 찾으며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돈에 눈이 먼 상업주의가 춘향을 포르노배우로 전락시켰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다.
방자전 사태는 무분별한 상업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남원 사람들이 춘향의 이미지를 지켜주지 못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상업주의에 맞서 지방 소도시인 남원이 춘향의 이미지를 무슨 수로 지켜주고 올바로 세워주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남원은 춘향제라는 훌륭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축제이자 가장 지명도 있는 축제 가운데 하나인 춘향제는 남원이 가진 유일하고도 무시 못할 무기다. 특히 춘향이 선발대회라는 남들이 갖지 못한 브랜드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미스춘향 선발대회는 어땠는가. 춘향선발 대회는 매년 일반 국민들에게 ‘춘향이에 가장 가까운 여성’을 선보이는 행사다. 남원인들이 전통미인상을 재현하고 공감대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자리다. 다른 지역축제의 흔한 미인대회 처럼 축제의 흥을 돋우는 감초가 아니라 핵심 중의 핵심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런데 대회는 KBS를 통해 연예계로 진출해보려는 연기지망생들로 넘쳐났으며 사실상 미스코리아의 아류쯤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일반 국민들의 뇌리에는 연예인 하고싶은 여성이 나서는 좀 오래된 미인대회일 뿐이다. 그나마도 요즘에는 연예계 등용문으로도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1979년최란 88년박지영92년 오정해 94년윤손하 2001년 이다해 장신영씨 등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스타를 찾기 어렵다. 전국 100여개나 되는 이름 모를 미인대회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춘향 출신 스타급 연예인들은 자신의 프로필에서 춘향이 거론되는 것을 꺼리는 실정이다.
미스춘향 선발대회는 변해야 한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전통미인 대회를 제안하는 이유다. 춘향의 이미지를 정립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두터운 메이크업에 감춰진 얼굴로는 춘향을 대변할수도 일반 국민에게 어필하기도 어렵다. 한복을 차려입은 서구형 미인들이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하고 늘어서 있는 여느 미인대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인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수영복 심사마저 없으니 주목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맨 얼굴의 춘향선발대회는 최근 방송가나 인터넷에서도 이른바 ‘자연미인’, ‘생얼 미인’이 각광을 받는 만큼 고리타분한 발상이 아니라 최신 유행에도 발빠르게 대처하는 것이다.
지난 14일 KBS남원방송센터에서 제82회 춘향선발대회 예선 심사가 열려 본선 진출자 29명이 선발됐다. 본선 진출자는 총 31명으로 중국교포 1명, 재미교포 1명이 포함된다. 이들은 오는 21일부터 29일까지 합숙훈련을 하며 30일 오후에 벌어지는 본선에 대비한다. 전통무용과 판소리 등을 연마하며 틈틈이 남원의 문화유산도 견학한다. 올해는 전국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춘향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이 태 술
치장하지않는
맨얼굴 춘향
그룹 01 > 정치·사회·의회 234 페이지
12-04-17 09:59: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