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고문 서 호 련
영화. 남부군 행군장면
( 2 ) 남부군 사령관 이 현 상
-이제 영웅도 열사도 사라진 지리산-
이 현상은 나이 48세로 지리산에서 사살되었다. 지리산에서 죽음으로서 그는 지리산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었다. 그가 지리산으로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떤 꿈을 꾸엇길래 이 험난한 빨치산의 길을 걸었단 말인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6.25동란이 일어났다. 삽시간 만에 내가 살던 광주까지 점령당했고 나의 형님이 공군의 파이로트인 우리 집도 피난길을 떠났다. 미군의 인천상륙으로 9.28에 수복이 되었지만 퇴로를 끊긴 패잔병들이 지리산에 대거 집결하여 남부군을 창설하였고 우리 측에서도 남원에 서남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여 연일 빨치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빨치산의 위세는 대단하였고 화순의 백아산은 전남 빨치산의 본거지로서 미군 제트 전폭기를 격추하기 까지 했다. 매일 매일 지리산, 백아산, 순창의 회문산, 그리고 장흥의 유치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의 상보에 온 국민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가 지방의 면소재지를 들릴 때 보는 광경이다. 경찰지서는 주위를 높은 담으로 쌓아 올리고 그 담 위에는 몇 군데의 더 높은 망루가 있다. 그 외곽은 대나무 울타리를 높이 쳐 난공불락의 성을 만든 것이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밤에는 그리로 피신 온다. 밤에는 빨치산들이, 낮에는 토벌대가 점령하여 의심쩍은 사람들을 쌍방에서 죽이는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생각해도 매우 불안한 치안이었다.
하루는 장흥의 유치에서 사살했다고 하는 빨치산 시체 몇 구의 머리를 수창 초등학교 인근에 효시 해 놓은 것을 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쯤, 내가 다니던 서석초등학교는 박기병 대령이 지휘하는 20연대가 빨치산 토벌을 위하여 학교 일부에 주둔하였다. 하루는 아침에 등교를 하는데 학교 주변이 삼엄했고 정문 좌우와 위쪽 담벼락 앞에 6-7구의 총에 맞아 죽은 공비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간밤에 빨치산들이 부대를 습격한 것이다. 빨치산들은 새벽녘에 학교 안 이층 교실에 까지 들어와 이방 저 방을 뒤지면서 연대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발표는 안 했지만 우리 군인들에게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다. 그로부터 13년 후인가 나는 서울에서 개인적으로 박기병 예비역소장을 만나 환담하던 중, 그때(초등학교 5학년) 20연대를 습격한 빨치산이, 남한 빨치산 3대 성지중의 하나였던 화순의 백아산 부대라는 것을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쯤 세상이 들썩 했던 뉴스가 있었다. 그것은 지리산의 이현상이 지리산에서 사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이현상이 공비의 우두머리로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악명 높은 공비라고만 생각 했다. 그 27년 후 나는 종교에 귀의하여 지리산지역에 교회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남원에 왔고 달궁, 덕동 등 지리산 뱀사골 지역을 자주 다녔던 관계로 뱀사골 입구에 있는 지리산 전적 기념관에도 들려 지리산모형을 한눈에 보면서 당시 빨치산들과의 전투현황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뱀사골 입구 반선상가에 살고 있었던 황의지 라는 분을 마닐라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새사도교회 세계총재 훼어( R. Fehr) 사도장의 필리핀 국빈방문 예배에 참석키 위한 100여명의 방문단 일원으로서다. 이 예배 때 필자가 주교의 안수를 받았었다. 그런데 그가 빨치산 이현상 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 놀람을 금 치 못했다. 남원에 세계일보 조사위원으로 있는 이 태술이라는 지인의 이야기다. 황의지씨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는데 그는 매우 인정이 많은사람이라고 말 했다.
그분이 죽기 전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지리산 반선의 그의 집에 놀러 갔는데 그가 빨찌산 활동을 하면서 써 놓았던 일기 박스를 가리키면서 이 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으면 하는데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고 하더란다. 이태술씨도 그 때는 그 일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보물덩어리라고 말한다. 그 뒤 황의지씨는 남원의 이곳 저곳에 다니면서 출간문제를 알아보고 다녔는데 그러나 지금 그 원고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루는 자기 집에 와 내가 백선엽장군에게서 직접 받은것이라고 하면서 선그라스 하나를 주더란것이다. 아마 당시에 아군에게 귀순하면서 백 사령관과 가까웠던 모양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 선그라스를 가지고 있는데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언제 고쳐야하겠다고 말 한다. 황의지씨는 5년여 전에 죽었고 지금도 그의 아들내외가 지리산 입구 반선상가에서 전주식당을 하고 있다니 언제 들려 봐야 하겠다. 만일 어디서 그 일기를 찾는다면 그것은 우리 현대사에 주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이현상은 신출귀몰했고 축지법을 쓰면서 담장을 훨훨 뛰어 넘어 다니는 빨치산 두목 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토벌대에 의하여 사살되었다는 정도였다.
오늘 마침, 지리산 뱀사골에 사는 교우 한분을 남원에서 만났다. 이 현상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잘 모른다고 했다. ‘아니, 지리산에 사는 양반이 빨치산 이 현상을 모르다니?’ ‘그 때는 내가 태어 난지 1년이나 되었을 땐데요.’ 그러면 이 현상이 죽었다는 빗점 골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황의지를 아느냐고 했더니 그분이야 잘 알지요,라 한다. 지리산에 사는 사람도 지리산을 다 모를 정도로 지리산은 광활하다. 전북. 전남, 경남, 7개 시 군 약 471km2에 두루 걸쳐 천왕봉(1915m), 반야봉(1732), 노고단(1507)등의 봉우리를 비롯해 25km의 주 능선 상에 해발 1000m가 넘는 준봉들이 수 없이 버티고 있는 산이다. 이현상과 빨치산들은 이곳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싸웠던 것이다. 오늘날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태의 <남부군>을 읽은 사람 외에는 이 현상의 생애를 아는 젊은 사람은 없는 셈이다. 나 역시 오늘에서야 그의 삶을 알았으니까. 명색이 지리산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영웅도, 호걸도, 열사도 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알아야 하겠다. 그리고 지리산 민족상잔의 비극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남겨야 하겠다. 계속 ==
( 3 )그 고독한 영웅, 빨치산 이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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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7 20:4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