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바다 울돌목-명량대첩(1) - 서호련
(남원문화원, 진도 이순신장군전적지 탐방기)
10월 19일, 진도 울돌목,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지 문화탐방을 위한 남원문화원의 전세버스는 한번 쉬지도 아니하고 2시간 반 만에 진도대교에 도착했다. 어린애들을 동반한 학부모로부터 남녀노소, 전직 공무원, 문화에 뜻을 두고 있는 원로 등 40여명의 문화탐방객들은 마치 남원시민 축소판 같은 모습이어 여행길이 매우 즐거웠고 얻은 바도 많았다. 귀로의 차중에서는 각자 답사 중 느낀 소감과 남원 관광발전에 대한 의견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진도대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진도군청 문화해설사와 함께 대교 아래 바다가로 내려갔다. 거센 물살이 굉음을 내며 소용돌이 친다. 바다라기 보다는 홍수진 강물로 보이며 물길이 소용돌이 쳤다가 솟아 오르면서 세차게 흘러내려 그 소리가 해협을 뒤 흔든다. 이는 해협의 폭이 좁은데다가 해구가 깊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물살이 이에 부딪쳤다가 솟아 오르기 때문이다. 이 홍수와 같은 물결이 소용돌이 치며 서해로 내려 가고 있었다. 진도 대교를 몇 차례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그 다리 밑이 바로 울돌목이란 사실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울돌목이 진도 대교 아래 어디쯤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울돌목 해협은 겨우 294m 내외의 한강 폭 정도 되는 좁은 폭으로 위쪽 넓은 바닷물이 일시에 좁은 골목길로 몰아붙이니 그 유속의 빠름은 물론이고 양안 바위절벽에 부딛힌 물결의 소리가 요란한 것이다. 물길은 동양최대의 시속을 지닌 11노트(시속24km)의 조수이다. 마치 요란한 울음소리를 지르는 듯 물소리가 크다. 거품이 일고 물이 용솟음쳐 배가 거스르기 힘든 곳이다. 바로 해협의 수로 건너편 다리 끝, 산등성이 뒤편이 전라우수영이다.
사실 나는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곳 울돌목에 와 본적이 있다. 당시 나의 큰누님의 시아버지가 이용효씨라고, 우수영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는데 그때 누님과 함께 시댁을 방문했었고 시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울돌목 구경을 시켜주셨다. 누님의 손을 꽉잡고 절벽위에서 포효하는 바다물살을 직접 내려다 보았는데 그때의 무섭고 두려웠던 추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분으로부터 이순신장군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쇠줄을 걸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해남과 진도에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수영은 육지로서 한국 최남단이었으며 수로 바로 건너가 진도였던 것이다. 진도대교는 29년 전 인 1984년에, 제 2진도대교는 8년 전인 2005년 12월 15일 에 개통되어 한반도의 최남단이 된것이다.(진도대교는 진도군 녹진과 해남군 문내면 학동 사이에 놓인 길이 484m, 폭 11.7m의 사장교로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고 다리아래의 울돌목 물살은 장관이다. 다리 양 끝, 해남쪽에는 우수영 국민관광지인 명량대첩 기념공원이고 진도 쪽엔 충무공 승전기념공원 안에 국내 최대 30m 높이의 충무공동상이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으며 현재 진도군에 의하여 명량대첩승전광장이 조성되고 있다)
나는 해설사에게 물었다. 이 곳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대첩의 명자는 울 명(鳴)자 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양 자는 무슨 양 자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대들보 양(梁) 또는 물결 양(梁)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곳 바다물결의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 해서 명량(鳴梁)이라는 이름을 붙힌게다. 급류는 굴곡이 심한 암초사이를 소용돌이 치고 이러한 빠른 물길이 암초에 부딪쳐 튕겨져 나오는 바다소리가 20리
밖까지도 들린 다고 한다. 명량대첩은 1597년 (선조30년)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5일0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 13척이 명량에서 일본수군 133 척을 무찌른 해전이다.
우리는 진도대교 일원에 걸친 전승지, 기념공원 답사를 마치고 충무공의 또 다른 전적지 벽파진과 삼별초군의 항쟁지인 용장산성 그리고 조선 남종화의 대가이던 허유가 말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던 화실인 운림산방을 방문하고 진도가 낳은 세기적인 화가 소치 허련, 미산 허형, 남농 허건등의 작품을 감상하였고 역시 진도가 낳은 서예대가 소전 손재형의 미술관을 방문하여 진도 문화의 정수를 음미하였다.
현재 진도군은 이곳 진도대교 지역 1만 1천 688m2 부지에 110억원을 투자하여 승전광장과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2천358m2. 최고높이 60m 규모의 전망대, 건립기념관, 레스토랑 등, 건축물을 이해 말 완공목표로 건설중 에 있다는 것이다. 이 명량대첩 승전광장이 조성되면 울돌목 명량대첩지, 강강술래터, 벽파진 등 불멸의 호국 충혼이 서려 있는 이순신 관련유적지와 진도대교, 해양 에너지 공원등 기존 관광자원을 연계한 새로운 관광테마 단지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진도는 현재도 년 중 관광객으로 붐빈다. 연간 외국인을 포함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200만 여 명이나 되는 국제 관광명소가 되었다.
전라도, 호남은 구국성지의 고장이다. 국가가 누란(累亂)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전라도의 의로운 정신은 더욱 빛을 발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창을 손에 들고 서라도 전쟁터로 나아갔다. 고경명, 김덕령으로 대표되는 의병장들은 국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키려는 충절로 전국 산야를 피로 물들였다. 특히 1908년 전라도 의병들은 왜군과의 교전횟수와 의병들의 참전수에서 전국대비 25%를 차지했으며 1909년에는 무려 60%가 전라도 의병들의 몫이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한말 호남의병은 1895년경부터 1915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약 20년간을 투쟁했는데 이 무렵 호남에서는 기삼연, 기우만, 고광순등이 참전하였고, 여수 흥국사의 기암대사, 석천사의 옥형선사 같은 이들을 이순신 장군의 곁에서 승병들의 동원과 해전 당일의 천기(天氣)를 자문했다. 이때의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보면 여수 흥국사에 약 800여명의 승군이 주둔하였고 나아가 싸우는 군사들의 대부분이 전라도 지역의 농부나 어부들 출신이었으며 그들이 먹어야 할 군량미 역시 모두 호남의 들판에서 거두어들인 양식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니 어찌 이 충무공이 호남국가지보장(湖南國家之保障) 약무호남(若無湖南) 是無國家(시무국가) “호남은 국가의 보루요 장벽이니 어찌 호남이 없이 나라가 있을수 있으리요”라는 말을 하시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진도해설사의 말대로 특히나 진도나 남원은 모두는 호국의 성지이다.
정유년 같은 해에 치러진 명량대첩지인 진도와 왜적의 침공으로 만민이 순사한 남원 만인의총이 있다. 또 남원에는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무리친 황산대첩지도 있다. 모두 호국성지이지만 진도와 남원의 현재 모습은 너무 다르다. 시민들의 의식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호국성지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얼마전 광주에가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우리는 애국시민이 아니라 호국시민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남원시민들도 ‘춘향골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호국성지, 만인의총에 사는 사람’ 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겠다. 진도에 비하여 남원의 만인의총과 황산대첩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인월 황산대첩지의 피바위엔, 오고 가면서 볼수 있는 안내 표지판 하나도 세워져 있지 않다. 이게 무슨 호국관광지인가. 마치 죽은 시체와도 같이 조용한 호국성지가 아닌가?
해설사에 의하면 진도문화해설사는 38명이라 한다. 남원의 문화해설사는 17명이다. 진도는 남원면적의 절반정도이고 인구는 3만2천명이라고 한다. 물론 해설사의 수자가 문화의 척도는 될 수 없어도 분명한 것은 진도는 해설할만한 곳과 해설수요가 많다고 하는 반증이다. 만인의총이 비록 도 관리기관으로서 제향을 도청이 주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청사와 묘소등 시설물을 관리하고 있는 묘지기 역할에 머무른 것 같다. 도청에서 파견된 이방 공무원들에게서 애향이나 지역경제, 만인의총의 전향적 문화를 기대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이다. 만인의총은 남원에 속한 호국기관이 아니라, 남원과는 관계가 없는 어떤 외딴 섬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인가. 칠백의총과 같은 국가관리가 되던지 아니면 도로 남원시로 이관하여 체계적이고 전향적인 국민 문화관광지요 호국교육의 산실을 만드는것이 낳을성 싶다. 주체가 우리 남원시와 남원시민이 되어야지 하지 않겠는가. 도지사가 초헌관임에도 도지사가 직접 참석치 않은지가 여러 해가 되었다.
특히 남원문화원의 역할이 커야 할 것이다. 남원성이 복원되고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개발 된다면 그 이상 좋을 일은 없겠지만 언제 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을것이다. 남원성 복원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만인의총을 활용하여 ,고무기를 진열하고 화포를 쏘고. 조명 연합군의 사열식을 하는 등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역동적인 행사를 기획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남원성의 일부구간 (220m) 이라도 복원된다면 남원은 역동적인 관광 동력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만인의총 앞에서 만인의총의 의의를 되살리고 국민적관심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연구 개발하는데 문화원이 중심이 되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역시 공무원에게는 발상과 추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선진국에 있어서도 문화적인 추진체는 민간전문가와 민간단체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도대교 이순신장군의 기념공원을 떠나 벽파진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