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둘레길 그리고 삿갓 막걸리
시민신문 논설위원 서호련
조소수혈개유거 (鳥巢獸穴皆有居)
고아평생독자상 (顧我平生獨自傷).
날짐승도 길짐승도 다 제 집이 있지만
내 평생은 혼자 슬프게 살아왔구나.
김삿갓이 전남 화순
동복 적벽강 범선 위에서 운명하기 직전에 읊었던 시의 첫줄이다.
김삿갓은 1807년(순조7)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여, 20세에 영월에서 장원급제하였고, 말년에 3년 남짓 지리산을 주유한 뒤 1863년 철종14년 57세의 나이로 전남 동복 적벽강에서 세상을 떴다.
김병연이 스무 살 되던 1826년(순조32) 장원을 했던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시험의 시제(時題)는 ‘논정가산충절사 惀鄭嘉山忠節死 탄김익순통우천 嘆金益淳罪 通于天’이었다. 풀어쓰면 홍경래란 때 가산군수 정시(鄭蓍)의 죽음을 논하고 반란군에 항복한 선천부사 김익순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통탄하라였다. 그런데 김병연의 장원 답안지 말미는 이러했다.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을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이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이 시로 그는 장원을 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김익순이 반란군에 잡혀 항복한 죄로 참형을 당한 자기의 친 할아버지였고 그로 인해서 가족이 폐족처분을 받아 영월에 은둔했다는 어머니의 고백을 들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자처하고, 삿갓을 쓰고 세상을 방랑하면서 민초들의 한과 아픔을 달래주는 시를 읊었던 민중 시인이 되었다.
그가 동복 땅에서 죽기 전 3년 남짓 지리산을 주유하면서 남원땅 동림 고을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가 있다.
동림 산하 춘초록(東林山河春草綠)
소축 대축 휘장미(小丑大丑 揮長尾)
오월단오 수리과(五月端午 愁理過)
팔월 추석 역가외(八月秋夕 亦可畏)
동림 산하가 신록에 물들었는데
크고 작은 소들이 긴 꼬리를 휘젓고 있구나
오월 단오는 수심 중에 지나갔는데
팔월 추석이 또 두렵구나.
시의 내용인즉, 어느 날 삿갓이
윤 씨 서당에 들렀다가 그의 거지같은 몰골 때문에 서생들로부터 괄시를 받자 이 시 한 수를 써서 대문에 붙여놓고 떠났겠다. 훈장이 이를 보고 소 축(丑) 자 밑에 꼬리 내리면 윤(尹)씨가 되기 때문에 자기에게 쓴 시란 것을 곧 간파하고 그를 잡으러 뒤좇아 나갔다.
그가 지리산에서
3년을 주유하면서 지리산 길을 밟는 동안 당시에 유명했던 남원 동림숲을 안 둘러보았을 리 만무하고 동림에 있는 서당을 안 찾았을 리도 만무하다. 삿갓이 동림에 있는 윤 씨 서당에 들러 괄시를 받자 윤 씨를 소들의 운명에 빗대어 빈정댔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오월 단오나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소를 잡기 때문에 우공(牛公)들은 이날이 오는 것이 두려울 게다.
지금 지리산 둘레길이
일부 개통되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남원, 함양, 산청으로 이어지는 5개 코스 71km가 개통되었지만 다 완성되면 201km가 되는 긴 길이다. 그중 남원구역 안에 있는 둘레길을 김삿갓 둘레길로 명명하였으면 한다. 그길을 그렇게 특성화한다면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능하면 현 시장 임기 안에 이루어지면 더 좋을 것 같다. 삿갓의 동림 시(詩)에 얽힌 아름다운 인연과 일화를 안고 있는 시장 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김삿갓 지리산 둘레길 역사에 오래 남는 시장이 될 것이다.
하기야 김삿갓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 문화의 원조는 역시 김삿갓의 발자취이다. 김삿갓 길은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 있는 김삿갓문학관에서 출발하여 소백산과 태백산이 만나는 영월 노루목에 있는 김삿갓 묘지를 거쳐 첩첩산중 마대산(1052m) 자락 생가 터까지 약 2k 남짓한 길이다. 마대산 정상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을 볼 수가 있다. 삿갓은 이곳을 오르내리면서 호연지기를 길렀을 것이다. 지난해 김삿갓 탄생 203주년에 영월출신 명사 203명이 초청되어 삿갓과 도포를 갖춰 입고 걷기 행사를 벌였다. 동복의 적벽강 가는 길, 청풍쉼터부터 화암마을 옛 주막 터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길이 또한 김삿갓 길이다.
김삿갓 둘레길을
어현동 관광단지 뒷길 등산로부터 시작하여 덕음봉-애기봉과 깃대봉을 거쳐 주천 소재지쪽으로 이어지는 약 10km의 완만한 소나무 숲길을 포함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 길은 남원시민이 즐겨 찾는 등산로로 중간 중간 운동기구들도 설치되어 있고 간이 상수도 약수물도 마련되어 있는 남원사람들이 사랑하는 길이다. 그러니까 지리산 둘레길이 남원시내에서 출발하여 다시 시내로 도착한다면 한적한 남원이 떠들 썩 해질 것이고 탐방객들도 훨씬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 다.
3년 남짓 김삿갓이
지리산을 주유했던 김삿갓 지리산둘레길은 충과 효로 이어지는 유교의 길이고, 자유와 무소유의 길이며, 시의 길이기 때문에 시문학과 충절의 고장인 남원에 잘 맞는 정통 스토리텔링 길이다. 남원에는 유명한 막걸리가 있다. 당시에도 풍광 좋은 남원의 어사주(御使酒)는 일품이었을 게다. 차제에 남원의 막걸리도 김삿갓 막걸리로 명명하면 좋겠다.
전국의 선남선녀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삿갓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삿갓둘레길을 걷는다면 이 아니 장관이겠는가?
그룹 05 > 사설·칼럼 5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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