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만능이 아니다.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누군가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헌법적 권리라도 제약을 받는 게 당연하다.
방자를 중심으로 춘향전을 재창조한 ‘방자전’. 청백리의 상징 이몽룡은 비열한 모사꾼으로, 정절의 화신인 성춘향은 자신의 육체를 신분상승의 도구로 활용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주인공 방자가 일편단심으로 춘향을 사랑하도록 꾸민 얘기는 별로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영화가 원작에 대한, 남원시민과 춘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마저 저버렸다는 점이다. 방자를 중심으로 영화를 그려내고 싶었다면 그러면 된다.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다. 하지만 영화의 상당부분은 주연 여배우들의 적나라하고 끈적끈적한 배드신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 상영 전부터 주인공 여배우 조여정의 노출 정도와 향단을 맡은 류현경의 전라 노출이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성기노출만 없을 뿐 포르노나 다름없다는 식의 입소문이 돌았다. 두 여성의 노골적인 노출신은 입소문의 핵심 테마였음을 제작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북 남원 쪽에서 지리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춘향묘역이 매우 정갈하게 조성돼 있다. 절개의 권화 춘향의얼 그 고결한 정신을 기리는 제사를 매년 올린다. 매우 장엄하고 진지하게 올린다. 행사는 80회가 훌쩍 넘었다. 남원이라는 동네는 대대로 춘향의 정신을 기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모여 사는 동네라는 것이다. 영화 제작사가 이를 몰랐을지 만무하다. 아무리 스와핑이 유행인 시대라지만, 방자가 춘향을 범하게 하고, 이몽룡과 향단이 살을 섞는 스토리, 그것도 포르노나 다름없는 수위로 표현할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해야 영화의 스토리가 탄탄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상 필수불가결한 장면이었는지 알 수 없다.
방자전의 노출신이 만약 볼거리 제공차원이었다면 더더욱 용서받기 어렵다. 방자전 연출을 맡은 김대우 감독은 ‘음란서생’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방자전이 음란서생 정도 수위만 됐어도 남원시민들이 이렇게까지 모욕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의 여자인 내명부와 청백리 사대부의 발칙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이 작품에서는 절제미가 특히 돋보였다. 방자전처럼 난잡한 장면 없이 탁월한 솜씨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이끌었다. 방자전이 3류 애로영화를 제작하는 감독도 아니고,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이 인기배우를 동원해 제대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춘향을 난잡한 여성으로 만들지 않아도 됐다는 얘기다. 100년 가까이 춘향의 정신을 자랑스러워했던 남원시민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표 고전에 대한 모독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남원시민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생채기 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조사위 이 태 술
그룹 05 > 사설·칼럼 50 페이지
11-04-27 02:1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