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법이 지방구속법인가?
남원문화원 원장
이 병 채
지방자치제와 지방분권화를 통해 권력 구조를 피부에 와 닿게 느껴 볼 수 있는데도 대다수 지역 주민들은 지방자치에 너무나도 무관심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분석을 해보면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부터 지역에 의원과 행정만 있지 주민은 없다는 여론이 높아만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공직자들이 주민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불이익 당할까봐 의원들만 무서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지방자치 무용론으로 까지 번지고 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지방자치라는 제도가 허점투성이어서 유권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제도는 그 첫 단추부터가 잘 못 끼워졌다고 한다. 1987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지방자치법을 제정했지만 삼당 합당 세력은 경제 안정을 이유로 지방자치법을 개정했으며 자치단체장 선거를 1995년으로 미뤘다. 1991년에 탄생한 지방자치가 지방의회만 있고 자치단체장은 구성하지 못한 채 미완의 출발이었고 지방자치법 또한 그 자체가 허점 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다뤄야하는 분야가 약 641개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법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 사무는 3만 240개로 73%, 지자체 사무는 1만 1,363개로 27%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나마 27%의 대부분은 중요한 정책적 결정에 의해 입안된 사업이라기보다는 중앙에서 결정한 사항을 처리하는 지엽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자치법에는 ‘지방자치단체 관할 구역의 자치 사무와 법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속하는 사무를 처리한다.’고 되어 있지만 ‘법률에 이와 다른 규정이 있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를 덧붙이고 있다. 이 조항을 들이밀면 자치단체(장)와 지방의회 의원의 자율성이 없다고 한 상위법에 위반되지 않은 범위에서 조례 제정권외에는 전무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 사무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해야할 사업을 지방정부에 떠넘기기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된 영․유아 보육사업은 지자체 재원부족으로 순조로운 사업 추진이 불투명하다. 또한 대표적인 국가 사무라 할 수 있는 향토예비군 운영의 경우 향토예비군 설치법에 따라 지자체가 재정지원을 부담해야 한다. 중앙 정부와 정치권에 항의를 해야 할 지경이지만 지방과 지방공무원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는 국비 확보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독단적인 행정을 강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권으로부터 공천권 따내기 위해서 정치에 편승해야하고 줄서기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현 지방자치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이런 문제점을 모를 리가 없다. 담합을 하여 중앙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지방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단단히 조치를 해 두었다. 지방이 자주적으로 할 수 없도록 족쇄를 채워 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래서 “지방자치법이 지방구속법인가?”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가용자원(예산)의 부족으로 지역민들의 민원과 직결된 막대한 소요예산 부족으로 지역개발 특히 전통 민속 문화관련 사업은 손도 대지 못한 정말 안타까운 실정이다. 재선 삼선을 노리는 선거직들 모두는 민심을 달래기위한 선심성 행정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중앙정부에서 내려오는 돈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만 없다보니 민자 사업에 손을 대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보니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혈세를 낭비하는 사례 또한 비일비재하다. 시장과 시의원 재보궐 선거를 비롯한 대산 쓰레기 매립장 사건 등은 그 사례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는 일이기도하다.
지방자치가 살아나야 중앙 정부도 살고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
의식적으로라도 지방자치단체라는 단어보다 지방정부라는 표현으로 바꿔 사용하면서 중앙 정부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한다. 그래야 정부에서도 지방정부와 공생하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선출직들은 각종 행사장에 나가 얼굴만 팔지 말고 그 시간에 현장을 뛰고 주민 곁으로 다가가 민원의 소리도 듣고 행정지도 및 감시도 철저히 해야 지방자치가 바로 설 것이다.
지방자치제도를 개선하여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 일단 이번 11월에 실시되는 대선에서 후보들의 입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바꿔야할 태도는 무엇이고 지방분권 의지와 정책들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름뿐인 지방자치도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방자치가 우리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아 뿌리내릴 수 없다면 폐지하던가 아니면 기초단체는 폐지하고 광역자치단체만 그대로 유지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갑자기 폐지가 어렵다면 정당 공천제라도 폐지되어야 지방자치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룹 05 > 사설·칼럼 5 페이지
12-11-06 13:4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