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관 후보자의 부모
오동명 (소설 ‘불멸의 제국’ 저자)
‘내가 무슨 기자라고...’
하지만 취재랍시고 작은 노트를 준비해 집을 나선다. 펜을 들고 현장으로 가게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작금의 언론보도다.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그대로 복제해 내는 기사들, 주로 이 짓거리는 주요 그리고 유력매체들에게서 자행된다. 자행...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복사기가 된 기자가 단순히 복제 기능만 있다면, 기계로만 존재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AI(인공지능)가 탑재돼 있고 신문사나 방송국 사주에 의해 인공지능은 맹종기능으로 전락.퇴락하고 만다.
내가 기자를 버린 지도 20년이나 됐는데도 이 짓거리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언론을 이용,악용하려는 부류들이 달라붙어서다. 역시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걸 커넥션이라고 하나. 지금 검찰이다. 검언유착이라고 한다. 기자가 쓴 글에서 불편부당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쪽만 편들자니 상대를 상대적으로 죽여야 한다. 어휘에서 드러난다.
어느 장관내정자의 기사... ‘당사자의 해명’이란다. 해명은 변명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한 국회의원의 말만 주워 옮겨 큰 죄를 지은 양 써놓고는 한 줄... ‘해명했다’라 쓴다. 다행히 오보로 드러났다 그러나 기사의 기자나 신문사는 오보임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오보인정은커녕 의심을 더 들게 만든다. 조작하고 있다는 말이다. 조중동의 수법이며 조중동이고자 하는 그 추종언론들이 이를 맹종하며 흉내낸다. 복사의 복제다. 조중동이 언론의 교과서가 되고 그 교지에 따라 시늉으로 조중동을 좇는다. 먹히기 때문이다.
‘구린 게 있으니까’ 애매함으로 의구심을 키우고, ‘그렇지 않고서야...’ 모호함으로 죄를 뒤집어 씌운다.
그래, 확인해보자.
내가 남원으로 이사 와 산 지 3년쯤 지난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 남원 시내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었다.
‘남원소리사 아들, 차관...’
소리사란 곳으로 내 발길을 이끈 건, 출세 따위가 아니었다. 구멍가게 같은 곳, 소리사였고 가난이란 추정... 확인하고 싶었던 충동이었다. 남을 훔쳐보려는 관음재미였을지 모를 충동이었다. 흙수저니 금수저 등으로 또 한 번 가름하며 청년의 사기를 두 번 죽이는 언론의 작태, 청년들에게 ‘해봤자’ ‘애써봤자’ 소용없다, 로 또 주저앉게 만들어대는 언론의 행패. 조선시대 오백년, 사람을 태어남에서부터 규정하고 계급을 지어주며 더는 태생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말라며 백성들을 옭아 묶은 성리학을 21세기의 한국에선 언론이란 것이 그 자리를, 그 역할을 물려받고 그 수호를 위해 갖은 기만,위법,불법도 마다 않는다. 양반들이 그랬듯이 그래야 지들이 누리고 있는 지금을 영원하게 유지지탱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란 것도 그 중 하나다. 간지러운 데를 긁어주는 척하며 더 자괴감, 더 배신감, 나아가서 사회불신으로 붕괴시켜야 그들의 목적, 영원한 그들만의 제국이 가능하리라 믿고 있어서다. 조장하려니 조작해야 한다.
예상했던 대로 작은 가게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공설시장 안에 남원소리사는 끼어있었다. 보기에 쓰지도 못할 것 같은 중고가전제품들이 가득했다. 그 안에 나이 70 중후반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보였다.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게 노인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등에 얹혀 보인다. 그 옆에서 노부인이 양말을 깁고 있다.
‘이런 집안에서 차관이 나왔다고?’
충동은 이 정도로의 호기심 만족으로 그쳤다. 장관이 되려나? 기다려보자. 행정직이라 해도 차관과는 달리 장관은 정치적 색채가 짙은 정치인 몫이다. 특히 보건복지부나 환경부, 문화체육부, 여성가족부는 더 그렇다.
소리사의 아들은 보건복지부 차관이 됐다. 거기까지. 장관은 불가능, 같잖은 점을 치고는 공설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최근 그가 장관으로 내정됐다 하니 4년 전 나의 어줍은 불가능 점괘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예상을 깨고? 상식을 뒤집고? 정치인의 몫인 장관의 자리에 임명됐단 말야? 이번엔 제대로 확인해보자.
보이는 것만으로 가난을 단정해서도 안 되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청렴을 단언해서는 안 된다. 취재노트를 준비하고 집을 나선 이유 그 하나다.
4년이란 시간의 흐름과 그 변화,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는 나의 관심이 그 두 번째 이유이다.
십 수 년, 기자라는 직업을 달고 살면서 보아온 숱한 변화들, 특히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은 아쉬움, 안타까움을 넘어 가여움, 가소로움으로 채워진 그들에 대한 기대나 희망들의 변성이었다. 소위 출세한 자들의 출세 후 행태는 출세 전의 의기나 결기, 때로는 신념까지도 듣기 좋은 타협, 협의, 포용, 관대, 급기야 어느 학자의 주장이던 통섭 등으로 희석되면서 그들 역시 그전 기득권 안에 순치되고 말았다. 그들은 그들이 삿대질해대던 저편의 그들에 섞여 한 떼의 동질세력으로 둔치고 말았다. 유착의 목표며 목적에 잠수, 침수하게 되고 말았다. 많이 보아왔다. 거의가, 거개가... 변질이니 변절이란 말은 바뀐 그들에게 힙힐 옷이 아니다. 변해 섞여버린 그들 과거의 의기,혈기,신념마저 출세의 수단이요 입신의 도구며 양명의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변질이나 변절은 한 때 그들에 대한 추억으로 아름다운 과거회상으로 미화될 수가 있다. 그들은 애초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러니 변질이니 변절이 있을 수 없다.
수도 없이 보아온 지라 이 역시 그러려니, 지레짐작으로 기대 않고 장관내정자 주변으로 다가간다. 남원소리사라는 가게는 그대로 있지만 간판만이다. 노부부 대신 청년,장년 두 사람이 보인다. 공설시장 보수공사의 현장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현장인부들에게 물어도 남원소리사 주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이 집 아들이 장관이 될 거란 말은 이 시장에서 듣긴 했어요.”
옆의 옷수선가게에서 알게 된 사실, 차관의 아버지는 올 초 3월에 지병인 당뇨로 돌아가셨다 한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가게에 나오셨다는 아버지의 나이는 여든.
“아들이 차관이 되고도 여전히 이 일을 하셨나보군요.”
“워낙 말이 없는 분이라... 부부가 똑같아. 여기도 전기 고치러 여러 번 왔지만 제 일만 끝내고 갈 뿐이제. 두 번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전기를 꼼꼼하게 봐주고 갔구만. 적당해야는디 그리 살다보니 돈을 벌 수가 있었간디.”
아들이 차관이 된 뒤를 듣고 싶었는데 마침 옆 가게주인이 먼저 들려준다.
“그 분 돌아가시고 바로 가게를 포기했지 아마.”
오래 전 남원시에서 지어준 공설시장의 상인들은 땅을 시에 기부체납하고도 2평이 채 안 되는 가게의 경우 월 1만의 세를 내는 영세세입자나 다름없다. 단 사용권만은 갖고 있었는데 이 사용권을 포기했다는 말이다. 그 작은 가게의 소유주도 아니었단 말인가.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광요(리콴유) 전 총리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들이 총리임에도 불구하고 구두닦이를 계속 했었다는 리콴유의 자서전을 어릴 적 읽은 적이 있어서다. 기억에, ‘아들은 아들이고 나는 나’라며 총리의 아버지가 했다는 말.
남원소리사 옆 가게에 70대로 보이는 두 분이 앉아있기에 들어갔다.
“통 말이 없는 사람이라서. 권 씨라는 것도 차관이 됐다는 현수막을 보고서야 우리도 알았다.”
다른 분의 말도 같다.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 그런 사람이 생색을 냈을 리 있었겠나? 남을 해치기는커녕 제 일에만 충실한 매우 성실했던 사람.”
으로 이웃은 회상한다.
차관이 된 후 잔치는? 현수막이 그렇듯이 지방에선 아주 흔한 일이라 묻게 된다. 이 대답은 어머니가 사는 금동주공아파트의 자치회장인 윤재춘 씨(64)에게서 듣는다.
“차관임명 뒤 현수막은 우리 자치회에서 걸었어요. 후에 아들(당시 차관 본인)이 와서 보고는 현수막을 내려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자치회장은 나를 아파트관리사무실 밖으로 이끈다. 녹이 많이 슨 접이식 자전거를 가리킨다.
“돌아가시기 전 날도 이것을 타셨다니깐.”
자전거는 남이 쓰다 버리려는 것을 고쳐 수년간 장관내정자의 아버지가 타고 다닌 것이었다. 장관내정자의 언론보도를 읽었단다.
“무조건 헐뜯지만 말고 와서 보면 그런 글은 안 쓸 텐데. 묵묵히 제 일만 하던 정말 성실한 분이었지.”
찾아온 기자는 내가 처음이란다. 금동주공아파트는 임대아파트에서 시작해 20년 전 분양, 최고 평수 15평으로 서민아파트다. 현 시세는 5천만 원 정도.
“영세민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겁니다.”
지난 11월말에 아들(장관내정자)과 부인(치과의사)이 와서 여동생들과 함께 김장을 하고 갔단다. 배추는 물론 파나 고추 등 송동의 작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들로 김장을 담는 것은 주민들이 다 잘 알고 있다. 어머니가 나를 만나주지 않을 거라며 자치회장이, 만나려면 꼭 아침 10시에 나와 벤치에 한 시간가량 앉았다고 들어가시니 그때나... 귀뜸해준다.
이튿날 그 시간에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흔하고 진부한 질문을 하고 만다.
“공부를 아주 잘 했나 봐요.”
고개를 젓는다.
“전주고등학교를 떨어져서 전라고를 갔고 대학도 서울대를 떨어져서 성균관대를 갔는디요. 자랑을 않으니 공부를 잘 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에게 욕먹을 짓은 안 하고 살았을티죠.”
대학 때도 장학금으로 다녔다며 경제적 지원을 해준 적이 없었단다.
“지가 열심히 했응께.”
“김장을 담그러 부부가 왔었다고 하던데요.”
“누가?”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집게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쉿싓”
이런 어머니, 생전의 아버지는 보건복지부 차관인 아들에게 짐이 될까봐 노인 도우미도 일체 받지 않았고 홀로 사는 어머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팡이라도 짚을 힘이 있는디 왜 남 신세를 진다요?”
세속에 젖은 나는 또 묻고 만다.
“보건복지부 차관의 부모님이신데요?”
어머니는,
“그게 나랑 무신...”
이런 어머니의 입에선 어떤 말이 나올까... 또 묻는데,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자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나요?”
고개를 저으며 더듬더듬 작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남을 울게 할 일은 없이 살어야 한다. 애들 아버지가 그런 말은 했던 것 같습디다.”
어머니를 만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소장을 만나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자식이 뭘 배우고 자랐겠어요.”
옆에 앉아 있던 한 주부주민이 거든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아요. 외모도 그렇고 말 없는 것도 그렇고, 여길 와도 티 하나 안 내고 아주 조용히 왔다가곤 하지요.”
흙수저, 금수저 따위의 물건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 어떤가로 그 자녀들을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만. 차에 시동을 걸자 부릉, 차가 떠날 채비를 해준다. 내 고개를 절로 좌우로 흔들더니 이내 끄덕인다. 예상이 깨져 KO패를 당한 기분, 그러나 그 KO패의 방망이가 뼈저리도록 상쾌한 건 왜일까.
지방의 가난한 가정에서 차관까지 오르며 소위 출세입신한 사람은 그 후 4년, 달라져 있고 주변에서 달라지게 만들어놓고야 말았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박살이 났다. 타협,협의로 상식이며 지혜처럼 돼버리는 변질,변절의 세상에도 예외는 있고 그 예외가 있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단 생각...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예외가 내가 사는 마을, 내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만 반갑고 기쁜 게 아니다.
우리 동네 아저씨 권덕철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가 오늘 청문회로 국회에 나와 있단 뉴스를 보고 전에 써놓고 게을러 미루던 이 글을 부리나케 워드로 옮긴다.
▲ (사진설명) 15평 서민아파트 1층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 앞 작은 터는 1년 내내 풀과 꽃, 채소로 채워져 있다. 올 김장에 넣은 파나 마늘도 여기서 기른 것들이다. 권덕철의 부모님(부친 권정수 부부) 손길과 정이 끊이지 않는 정원이다.
▲ (사진설명) 남이 버리려는 자전거를 고쳐 타고 다니던 아버지의 자전거.
▲ (사진설명) 남원소리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사용권을 포기한 이후 이젠 시장보수공사의 현장사무실로 쓰고 있다.
그룹 05 > 사설·칼럼 5 페이지
20-12-22 19:23: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