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100인 원탁회의 관전기
글/사진 오동명
'청년·여성의 눈으로 남원을 이야기하다'
지난 12월 5일 남원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남원시 100인 원탁회의>의 연단에 걸린 글귀가 상투적이지만 노인이 되어가는 나의 눈에 더 선명하게 띈다. 청년·여성이 아니어서 일까. 의견수렴 운운... 어느 도시에서나 보는 이벤트행사라서 일까.
15개의 원탁을 맞춤맞게 꽉 채운 것을 보고 ‘열기가 대단!’ 그리고 ‘동원?’ 시비로 잠깐 갈등하지만 이내 남원발전에 관심과 열성을 보이는 남원시민들을 보게 돼 시비는 긍정의 한쪽으로 기운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시민들의 소리를 많이 듣고 시정에 반영하고자 한다.”
며 이 행사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는 어두에 ‘비켜주는 게 좋지만 처음 갖는 일이니 시장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 좋겠다며 연단에 올라왔다’고도 한다. 연단에 내려와서는 그의 말처럼 바로 자리를 비켜주기는커녕 원탁을 돌며 마치 유세라도 하듯... 서울 중앙에선 보기 힘든 일을... 격려라고 하지만 왠지 정치적인 제스처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정치인기피 결벽증세일까. 그의 언행은 이 행사의 동기와 취지를 헤아리는 데에 헷갈리게 만든다.
유행처럼 되어버린 경청의 중요성, 인문학의 필요성... 그러나 이 사회가 유행어를 만들며 구호외침만으로 그 소임을 대신하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잦은 이런 행사로 더욱 식상되어 있어서일 게다. 긍정이 그렇고 화합이 그렇고 융합, 여기에 더 어려운 통섭이 어쩌구저쩌구... 그런 냄비 두드려대는 요란한 소리에 비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조화는 이루고 있는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드니 참여한 시민의 소리에 더 관심이 집중된다.
정치에 비해 시민의 의식은 순수하기에.
‘청년·여성의 눈으로 남원시 톺아보기’라는 주제로 원탁에 모인 시민들(15개의 각 원탁에 7명 정도의 시민과 원탁회의 대화촉진자로 1~2인의 공무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이 토론에 들어갔다.
우선, 참여자들을 둘러보니 여성이 약 70%, 남성보다 많고 중년이 약 60%로 청년보다 많아 보인다. 노인은 거의 없다. 귀농귀촌인들도 한 원탁에 모여 있다.
‘톺아보기’란 자세히 들여다보기일진대, 사회자는 네 개의 항목을 정해 생각나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라고 한다.
1. 있어서 좋아요
2. 없어서 좋아요
3. 있었으면 좋겠어요(‘있으면 좋겠어요’가 맞다. 미래를 말하면서 과거시제를 쓰다니?)
4. 없었으면 좋겠어요(역시 ‘없으면 좋겠어요’가 맞다)
15개 원탁마다 함께 한 참여자의 구성이 구별돼 있다. 청년, 여성, 중년. 관심사가 원탁마다 각 다르지만 또 비슷하기도 하다. 남원사랑과 남원발전에 있어 진지함과 진정성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있으면 좋겠어요’에서, 어린이도서관·청년,노인일자리·주부와 임산부를 위한 시설 등으로 남원인구늘리기 위한 정책·미혼모센터 등이 눈에 띈다.
‘없으면 좋겠어요’에선, 이기심·비양심·안일무사한 공무원·부정부패가 눈에 들었고 의외로 ‘춘향문화선양회’라는 구체적인 단체도 거명하고 있다. 왜지? 문화선양, 좋은 거 아닌가? 관행이나 운영에 문제가 있음을 ‘없으면 좋겠어요’의 바람에서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겠다. 내 눈을 더 뜨이게 한 것은 ‘정파주의’다. 이 좁은 곳에 정파라니? 그러나 남원살이 거의 3년째 되어가는 내 귀에도 들려온다. 한 사람 누군가에 의해 남원이 결정된다는 정파?가 남원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소리.
20분의 열띤 토론과 제안의 시간이 지나고 원탁마다 의제를 정해 1시간 이상의 토론으로 이어진다.
문화공간의 다양성필요-문화공간 활용도가 낮다, 여성·엄마의 공간(양육보조), 청년지원(서남대 문제, 청년주거공간 등), 청소년 타지역 이탈, 교통, 의료시설 등 의제는 열의열성만큼이나 다양하다. 한 여성 참여자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중앙정부에서는 대선 약속과는 달리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지원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려하고 있다. 이에 남원시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비는 하고 있는가?”
유모차에 갓난 아이를 태워 참석한 남원사랑 열성 젊은 엄마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도 보인다. 미래를, 더 나은 세상을 넘겨줘야한다는 책임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꼬마들에게서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자연)는 후손을 위해 우리가 잠깐 빌려 쓰는 것이다.’
이 말은 당장 우리만의 편의·편리를 위해 자연을 이용-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는 만들지 말자고 모인 자리. 15개의 둥근 원탁을 둘러싼 뜨거운 열기의 토론을 보면서, 그 열정에 더욱더 들게 하는 의구심은, 의견을 제시한들? 수렴한다고는 하지만 진짜? 그래서 마련한 자리라지만?
문득 백성의 억울한 사정·사연을 듣겠다고 신문고를 차려놓았던 조선시대, 취지대로 한 번이라도 그랬나? 또 문득, 조선왕 선조가 일본의 조선내침의중을 살피기 위해 보냈다는 사신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황윤길; “멀지 않은 미래에 왜구가 반드시 침략해 올 것이다.”
김성일; “일본은 아직 군사를 일으킬 기색이 없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허성; “그들이 우리 통신사 일행을 맞이할 적에 연약한 군사만을 동원하는 것을 보아 판단하자면 침략의도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결국 선조는 누구의 말을 들었던가? ‘쥐 눈을 하고 있어서 보잘 것 없는 인물’이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외모만 보고 폄하한 김성일의 소견과 주장으로, ‘담력과 지략이 있어 보인다.’고 히데요시의 야욕을 제대로 본 황윤길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그 이듬해인 1592년 이른 봄, 일본은 부산포로 진격해 들어왔다.(당시 조선의 병력은 장부상엔 18만명이 기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천명도 안 됐다고 한다) 이러니 불과 19일 만에 한양은 함락되었고 이미 임금 선조(청나라로의 망명도 고려했다)와 당파싸움에만 혈안인 양반 정치세력은 이때만은 한 통속이 되어 신의주로 내빼 한양은 비무장시민만 버려진 채 텅 비어있었다. 남대문(숭례문) 밖에 집합한 일본군들마저 놀랐다고 전하지 않는가? 역사가 이이화 씨에 의하면, 김성일은 경상도에 부임하여 일본침략을 막아내는 전공을 세웠다는데, 이이화 씨 외의 다른 역사서에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도산서원 이황의 제자인 유성룡이 역시 같은 서원의 제자인 김성일을 두둔한 일을 우정으로 돋보이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듯해서 이이화 씨의 이 의견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일본군을 막지는 못했어도 저항한 사람들은 왕도 양반도 아닌 바로 의병, 우리 백성들이었다. 무기는 없어도 돌이나 작대기를 들고도 저항한 우리의 조상이었다. 남원의 만인의총이 땅 속에서 침묵으로나마 말해주지 않는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차려놓은 밥상만 버젓하면 무엇하냐는 것이다.(사실 원탁엔 풍부한 먹을 것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은, 원탁이 보여주는 이미지로 연상된 탁상 위의 공론이다.
우려가 기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모처럼 모인 남원시민의 의견이 탁상 또는 정치적 손에 우롱당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이게 나만의 생각일까. 적어도 참여한 백여 명의 남원시민과 참석치는 않아도 남원의 진정한 발전을 염원하는 대다수 남원 시민의 뜻이 아닐까.
남원시의 홍보물을 대행하고 있다는 한 젊은이를 행사장 밖에서 만나 그의 말을 들어본다.
“실행하지 않으면 이런 행사 또한 남원시 재원낭비지요. 시간낭비고요. 그리고 무력신드롬, ‘의견을 내놓으면 뭐해?’ 이런 것 말입니다. 2회 때는 남원시 공무원의 안일무사가 ‘없으면 좋겠어요’에선 보이지 않게 되길 빌 뿐입니다. 저희가 무슨 힘이 있나요? 실행부처인 남원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행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시민의 의견을 듣기라도 한다니 그 추후를 이젠 지켜봐야지요.”
그는 덧붙인다.
“동원된 거나 다름없지만 참여하니 더 남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바람도 커진 것은 사입니다. 우리가 오늘 내놓은 의견의 일부라도 시정에 반영이 되면 그것으로도 이 행사는 의미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룹 05 > 사설·칼럼 35 페이지
15-12-14 11:14: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