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장, 어딨어?
글/오동명(전 중앙일보 기자)
제23회 <흥부제>를 기념하여 <남원고전소설 활용학술포럼>이라는 참으로 의미 있을 것 같은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10월 22일에 선약이 있어 아쉽지만 어떻게든 참석하고 싶었다. 오후 4시를 지나서야 행사장인 남원 스위트호텔에 도착했다. 꽤 넓은 스위트홀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관심이 많다니... 남원으로 이사 온지 3년이 되어가고 있는 나에겐 생소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고 여기저기 하트 모양을 곁들여 장식해 놓은 남원이지만, 정작 남원 시민에게서 진정성 있는 남원사랑, 고향사랑이 깃들여 있는 문화적인 면모를 별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불관언, ‘난 모르는 일’의 무관심이 한국에서 남원뿐이겠냐 만은 남원은 한국의 다른 지역보다도 심한 듯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학생 때 내가 서울에서 만난 남원 친구들은 한결 같이 매우 똑똑하고 고향사랑이 꽤 깊어 인상적이었다-이 친구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서울에서 고급 공무원이나 전문인으로 타지에서 아직 머물고 있다-하지만 외지인인 내가 남원에 살아보면서 보니, 남원에 대한 미래 시정이야 어찌 되어가든 당장 자기이익과 편의, 나아가 보신과 눈치보기나 편승·추종의 처신에만 급급한 남원시민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 고려대 이기대 교수가 <한문소설에 나타난 남원의 문화적 특징과 콘텐츠 방안>에 관련해 발표하고 있었다. <흥부제>라는 행사를 대외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방안모색이기에 주최 측인 남원시와 남원문화원의 노력에 부응하기에 충분한 콘텐츠 발굴 등을 제안하는 발표이긴 했다. 그러나, 듣는 내내 ‘하지만?’이라는 아쉬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 정도는 다 아는 것’이라는 발표 수준의 질을 폄하해서일까.
10분 휴식 후 이어진 <종합토론> 역시 별 다른 감동을 끌어내지 못했다.
‘왜지?’
이 지면을 통해 이미 발표자와 토론자가 이야기한 내용을 거듭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기대하고 참석한 내가 경청하다 들게 된 ‘왜지?’의 대답은 이 행사의 이름에 있다는 것을 연단에 앉아 있는 교수들을 보며 이내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남원고전소설 활용학술포럼>
활용이란 단어와 학술이라는 단어의 접목에서 최신 유행테제인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프라그마티즘(실용주의)의 또 다른 남발로 이해하게 되었고 궁극적인 목적은 활용에 있을진대 발표·토론자들은 기조발표자부터 사회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교수로 채워져 있었다. 이벤트학(?) 교수도 있긴 했지만 그들의 발표 내용을 보면 ‘학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왜지?’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교수일색에서 적어도 두어 명 정도는 행사관련 실무자들도 할애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일부 교수들은 남원을 고향으로 갖고 있더라도 현재 모두 외지인들뿐이었다. ‘왜지?’의 아쉬움이나 의아심은 나만 든 게 아니었다.
발표·토론을 다 끝내고 오늘 토론의 좌장인 유영대 교수(고려대)가 질문을 받았다. 처음 질문자는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대뜸,
“시장 어딨어?”
시장을 찾았지만 안 왔다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럼, 부시장은?”
시작할 때 잠깐 보이고 지금 없다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럼, 문화관광과 공무원은?”
뒤에 한 명이 손을 드는 듯했다.
정장을 한 그 노인은 말을 이어갔다.
“바로 이게 남원의 현재다. 오늘 강의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이 경청해야 할 자리가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이것이 남원 행정의 문제다. 부끄럽다. 그저 시민일 뿐인 나는 귀담아들었지만 더 귀담아 듣고 활용해야 할 시담당자는 없다? 시민 이전에 시장이나 공무원부터 이런 강의를 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시장 등 이런 남원시 공무원들에게 남원 시민이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유영대 교수가 다른 질문자를 지목하며 불을 끄려는 듯이 서둘렀다. 또 다른 질문자 역시,
“예촌 등 돈 잔뜩 들여 한옥만 짓고 있다. 남의 것, 벤치마킹만 한다. 남원다운 것으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유영대 교수께서 시장을 만나거나 글을 써서 사실 그대로의 남원실정을 알려달라.”
그럴 수 있을까? 다른 질문자 역시 남원시장 등 시당국자에게 오늘 상황을 전해달라는 주문형식의 성토를 이어갔다.
좌장 유영대 교수가 받는다.
“남원 시민의 불만이 눈에 그대로 보인다. 큰 안목으로 남원을 디자인해야 할 것 같다.”
역시 교수다운 발언이다. ‘큰 안목’이며 ‘디자인’이며,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전혀 구체적이지도 못하고 실속도 없는 ‘허공 속에 묻혀 버릴...’ 허무맹랑한 단어나열일 뿐이다. 이러니 그의 대답에선 현학적인 형식만 보일 뿐 진정성 깃든 내용이 가슴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비싼 강의료 받고 특강 이력이나 하나 더 스펙으로 쌓고 남원을 떠나버리면 그만인 그들, 그리고 또 1년 후 같은 주제로 이어질 것이고 새로운 것인 양... 그들 얼굴들에서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남원 시민이 갖고 있는 ‘참여하고 제안하면 뭐해? 다 부질없는 짓’하며 고개를 돌리는 오불관언이 발표·토론자에게서도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끝나고 전혀 모르는 참여자들의 몇몇 반응을 엿들어보니 나와 같았다.
스위트호텔을 나오면서 “남원시장 어딨어?”라고 한 첫 질문자를 따라 붙었다. 그에게,
“공감합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시나요? 나중에라도 꼭 자리 만들어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자냐?”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나를 피했다. 그때 한 여자가 식권 받아가라며 그에게도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지만 그 노인은,
“안 먹어. 이딴 것, 먹을 거나 먹이려 하지 말고 돈 한 푼이라도 제대로 쓰라고 해. 우리 시민이 거지야?”
젊은 여자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식권을 거부했고 나에겐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아쉬웠다. ‘시장 어딨어?’ 라고 기개 있게 질문에 나섰던 분이 더 당당하게 나서준다면 시장의 태도나 자세를 충분히 바꾸고 고쳐줄 수 있겠건만... 이것 역시 좁은 도시인 남원의 한계이며 실정이 아니겠는가, 억지 이해를 하려니 가슴이 쓰렸다. ‘나서서 손해 볼 일 안 해.’ 이것일 수 있겠다는 한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행사 마무리로 기조발표자인 김헌선 경기대 인문대학장의 말을 떠올리며 ‘믿어보자’, 해본다.
“남원시에서 ‘해피 남원’이란 구호를 내세우고 있는 것을 봤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해피’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도시가 네 군데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남원이 마지막으로 이것을 따온 것 같다. 이렇게 따라가서는 안 된다. 남원은 무엇보다도 지리산이다. 바래봉 등 지리산을 놓치고 있다. 이제라도 지리산을 잡아라.”
내년 2016년 24회 <흥부제>는 어김없이 열릴 것이고 이런 행사 역시 많은 돈을 들여 개최할 것이다.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은 좋다. 이번처럼 외지에서 비싼 강의료 줘가며 빌려온 의견이나 제안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 내년 역시 또 떠나버리면 그만이며 개최에 드는 돈만 결제해줄 뿐 제안이나 방안을 듣지도 않는 시 당국자들만이 존속한다면 이 또한 하지 않느니만 못한 행사일 것이다. 오히려 질문자로 나선 시민들을 중심으로 시장 등을 참여-강제라도, 이것이 시민참여 민주주의다!-케 해 다음 행사를 개최한다면 더 실속 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활용이며 프라그마티즘인 것이다. 연단의 책상만이 연상되는 그런 행사치례는 더는 말아야 한다. 진정한 활용이란 학술이라는 허울(탁상공론)을 벗어나 이를 뛰어 넘을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내년에도 올해와 똑같은 이런 행사를 다시 거듭해서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도 그 노인처럼 글로나마 외쳐본다.
“남원시장, 어딨어? 이런 자리엔 시민들처럼 반드시 나와서 경청하고 시재원을 제대로 써라. 사랑의 도시, 문화의 도시, 남원이라고 떠들어대지만 말고 진심으로 남원사랑을 보여 봐!”
시민이 본때를 보여줘야 진정한 민주주의의 나라 한국, 시민 중심의 민주적인 도시 남원일 수 있다. 시장을 위시해 공무원들이 시민 위에 군림하며 어찌 앉아 있으려 드는가! 건방지게!!! 시민이 굴종하면 시장이 날뛰기 널뛰기 마련이다. 서울에 가니 현수막이 붙어 있다.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고친다.’
남원스타일로 바꿔 말해본다.
‘좋은 시장은 손과 발로 일하고 나쁜 시장은 손을 악수하는 데에만 쓴다.’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우선 악수부터 받아주지 말자.
그룹 05 > 사설·칼럼 35 페이지
15-10-26 09:1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