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희망자와의 만남
오동명
전화가 왔다. 40대 목소리의 여인이었다. 남원 귀농귀촌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했단다. 재능기부에 관한 글을 읽고 세상과 문을 닫고 살고자 온 남원 운봉에서의 귀촌의 삶에 빗장을 풀어볼 생각이 들게 했단다. 나는 이내 고맙다고 했다. 왜 고마웠을까. 재능기부 동참의사를 보내와서? 이보다 더 다른 데에서 고마웠다. 그동안 석 달 재능기부 현장을 취재하고 글을 올리고 그림까지 그려 나름 애써 보았지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나한테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재능기부에 얼마나 서로 관심을 가져 보았는가. 적어도 재능기부자들 사이에 오불관언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상치 못한 다른 사람이 읽고 있었고 그녀의 말대로 마음을 열게 한 글이 되었다는 데에 가슴이 뭉클했다.
기부나 수혜나 다 나눔이다. 나눔의 출발은 인사일진대 남원귀농귀촌센터에서 작은 일을 하며 인사나눔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으로 답답했다. 이러면서 어찌 남을??? 혹자는 그런다. 말로 해야 하나?
아무튼 그녀를 무조건 만나 함께 작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나눠보자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는 참여할만한 능력을 아직 하나도 갖추고 있지 못해요.”
그녀는 서울에서 출판편집자로 오래 일해 왔다고 한다. 이젠 반가웠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살아온 내겐 그녀의 과거직업만으로도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 알고 있었어요.”
나를 알고 있었단다.
“인터넷을 치면 나오잖아요. 유명하신 분.”
“예?”
그녀처럼 나도 시골에 처박혀 산지 어언 10년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과 다름 없이 노출되어 굴러다니는 내 이름으로 숨어서도, 처박혀서도 살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린 지금,
“인터넷에요?”
“아니요. 중앙일보를 박차고 나오실 때 떠들썩했잖아요.”
벌써 15년이 지난 일, 그 일을 기억하는 이가 아직 있다. 기억은 인터넷처럼 연결고리가 되어 현재이게도 하는구나......
“나는 다 잊은 걸요.”
어찌 잊겠는가. 그러나 잊고 싶은 것도 잊음과 같으리라. 그녀는 졸라대듯 만나자는 내게,
“지금 서울이에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러면서 나를 만나서 반갑단다. 아니 만나보고 싶었었단다.
이틀 지나서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남원에 막 도착했다고 한다. 터미널로 나가니 2절지 큰 도판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여자가 멀리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싱긋 웃는다.
“난 줄 알았어요?”
“유명한 분이잖아요.”
어색해서 무겁지 않을 도판을 들어주겠다고 하니,
“대신 이것 좀 들어주세요.”
작아 보이는 비닐봉투가 보기보다 꽤나 묵직하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야 물었다. 돌이란다. 남원에 와서 전각을 독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저 큰 종이들엔 그림이 그려있겠군요.”
그녀는 낙서장이라고 하며 묻고 듣고 싶은 말을 먼저 꺼냈다.
“제가 사는 운봉에는 재능 많은 분들이 많은데요. 화가도 있고 시인도 있고 만화가... 대부분 저처럼 지리산과는 친해도 사람들과는 별로 소통 않고 사는 분들이지만.”
그래, 잘 만났다는, 우리가 만난 의미를 들으니 기뻤다.
“예. 그렇게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운봉과 인월에 무작정 자주 가보곤 하거든요. 그분들을 찾아내 함께 해보자고 하고 싶은 거구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났구요.”
그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저를 만난 걸 쓰려고요?”
고개를 젓는다. 오프더레코드라며 내놓는데 이름과 전화번호만 쓰인 단출한 명함이다.
“여기 온 대부분 사람들은 방해 받고 싶지 않을 겁니다.”
“지리산 같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듯이, 보람을 나눌 수는 있잖겠습니까? 그분들을 다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그녀가 듣기만 하고 웃는데 자기부터 설득해보라는 듯 장난 끼 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 돌이랑 그림을 좀 보여줄 수 있나요?”
그림을 보자마자 ‘어린이책 편집자이셨나요?’ ‘일러스트레이터셨어요?’ 이내 묻게 하는 정감 있는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창피했다. 남원 귀농귀촌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내 그림이 그녀의 그림과 오버랩이 되어서였다.
“흉 많이 보셨겠군요.”
그녀는 눈치를 채고,
“사실은 그림이 전화를 걸게 용기를 줬어요.”
“용기요? 그렇죠? 이 정도면 나도 하겠다, 이런 용기를 제가 줬으니 내 참뜻을 이뤘네요.”
머쓱하게 웃는 내 앞에서 그녀가 이번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는다.
“그림까지도 그리시네, 뭐 이런 호기심이랄까......”
관심을 돌렸다.
“이 선생님이 그림으로 저희 재능기부에 참여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책 편집이나 북아트 같은 것이면 여기 학생들도 흥미로워할 텐데요.”
“멀었어요. 아직. 저도 이제 배우고 있는 수준인 걸요. 대신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녀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살 집을 찾아 가까운 ‘소규모삶터’(주택단지라고 말했다)에 가 보았다. 문화마을도 가 보았다. 귀촌인들도 우연히 만났다. 대부분 텃밭 정도 가꾸고 사는 그들은 살기는 남원에서 살지만 일은 여전히 그전에 살던 서울 등 도시에서 얻어 오니 그전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면 지날수록 불편해서 다시 전의 생활로 돌아가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도 그렇다. 문화마을이나 소규모삶터는 주변 자연에 어우러지지 않아 비친환경주택 같아 보였고 따뜻해보여야 할 집들이 뜬금없어 썰렁해보였다.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을 모아놓고 문화마을이라고 한다. 남원만이 아니다. 문화마을이 아니라 인테리어, 아웃테리어 마을로만 보인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귀촌인들의 전직을 엮어보았어요. 디자이너로도 충분할 화가, 나 같은 출판편집자에 사진가, 만화가, 컴퓨터그래머, 그리고 작곡가도 있었어요. 떠오르는 게 없나요? 이들이 함께 만들어 낼 작업이 완성품으로 떠오르던데요, 저는. 이렇게 모여 사는 마을이 진짜 문화마을 아닐까요? 담벼락에 그림 그려놓고 문화마을이라고 할 순 없지요. 이것은 문화를 도둑질하는 표절행위지요. 이분들이 서울이나 도시에서만 일을 받아와 할 게 아니라 남원에서 그 일을 맡아 할 수 있다면? 이런 가정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이게 진짜 재능기부 아니겠어요? 어때요? 기부는 아니겠구나.”
그녀는 멈칫하며 토를 달았다.
“일거리를 달라는 게 아니랍니다. 일거리를 빼앗겠다는 것은 더욱 아니고요. 남원시에서 나오는 홍보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랄까...”
고개를 젓는다.
“무슨 말인지 알고 이해하겠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으니까요. 절대 공감합니다. 그러니 참여해주셔야지요. 저도 그래서 시작한 일이거든요.”
응수하면서,
“오프더레코드라 하셨는데 이런 제안의 글 정도는 써서 올려도 되겠지요?”
그녀가 이름만은, 하며 역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끄덕인다.
“이 선생님이 만났다는 그분들을 꼭 만나봐야겠는 걸요. 만나게 해주실래요?”
“각자의 삶에 몰입하고자 온 사람들이라 귀찮아할 거예요. 내가 그러면 남들도 그럴 테니까요. 우린 인사만 했지 전화나 명함 같은 것 안 나눴어요. 아니 내가 요구하지 않았지요. 그럴 필요도 없었고요. 귀농인과 귀촌인을 구분하던데 대개 귀촌인인 그들은 숨어산다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겁니다. 소로나 니어링 부부처럼요.”
문득 든 생각. 남원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규모삶터’를 동호인, 또는 유사 직종 전문인들이 모여 사는 삶터로 묶어 보면 어떨까. 그녀가 제안했듯이 이들의 수준 높은 능력을 남원시가 받아들이면 어떨까. 지난 5월엔가 선진지 견학으로 다녀온 고창에서 받아온 홍보물이 떠올랐다. 고창은 이런 류의 문화마을을 이미 꾸리고 이들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며 홍보물 제작에도 참여하게 하고 있지 않던가. 그 문화마을에서 제작된 고창의 홍보물과 남원의 홍보물을 비교하며 씁쓸해했던 기억.
“이 그림들은 제 글에 올려도 되지요?”
극구 사양했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흉볼 걸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하지요? 지리산에 와서 배우고 얻은 것은 순수함이랄까, 평생 달고 다니던 타인의식을 버릴 수 있었지요. 이 낙서 맘대로 쓰고 버리세요.”
재능기부 동참을 얻어내지 못했지만 그녀의 그림과 함께 그녀의 대화로 충분한 공감을 선물로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고맙다고, 그녀는 반갑다며 우리는 헤어졌다.
“남원시로 내려오시면 연락주세요.”
“운봉으로 올라오시면 연락주세요.”
대화 속에 지리산이 중심에 있었다. 남원이란 곳의 의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리산이 든든히 턱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그룹 05 > 사설·칼럼 35 페이지
15-10-12 14:08: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