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음식을 건강식이라 했다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 이병채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속할 뿐만 아니라 생명활동의 근원인 동시에 먹는 즐거움 또한 안겨주는 것이다. 중국은 일찍이 신농(神農)이래 약은 풀에서 근본을 삼았다고 해 나온 말이 본초(本草)이다. 본초의 명저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중국 명나라 이시진(李時珍)이 1590년에 집대성했다. 1892종을 7항목으로 나눈 것으로 총 52권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선조 때 허준(許浚)이 어명으로 편찬한 동의보감에 상세히 적혀 있다. 식탁에 올리는 식품이 훌륭한 약이 되며 산과 들의 식물도 좋은 음식 재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음식문화의 전통은 오랜 역사를 통해 축척되어 왔으므로 우리 조상 대대로 철따라 즐겨 먹어왔던 계절 음식에 대하여 식이위천(食以爲天)이라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들을 들춰보면 1월 1일 설날 음식으로 떡국 외에 찰떡 식혜 수정과 엿 나박김치 세주가 있으며 입춘(立春)일에는 오신반으로 눈 속에서 돋아난 움파산갓 당귀 및 미나리 싹은 새봄의 미식으로 오장육부에 전하는 오신반(五辛盤)이 있으며 정월 보름 상원일(上元日)에는 밤 대추 잣 호두 3월 3일은 중삼절로 화전놀이를 하며 두견화나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치고 탕평채를 먹는다.
5월 5일은 단오절로 수리취떡(쑥) 제호탕 앵두화채 준치국 붕어찜 어채류 등을 먹고 6월 15일은 유두절(流頭節)로 일미인 떡수단 증편 편수 보리수단 상추쌈을 먹고 초중말복 등 삼복더위에는 더위를 이기는 음식으로 육개장 삼계탕 개장국 민어탕 등을 먹는다.
7월 7일 칠석(七夕)일에는 밀전병, 밀국수, 넙치, 취나물, 계피 떡을 먹고 7월 보름 백중일에는 게장, 게찜, 두부, 햇과일, 멸치젓 등을 먹으며 추석(秋夕)절인 8월 15일에는 햅쌀, 송편, 토란국, 햇과일, 화양적, 닭찜, 송이 단식 등을 먹는다.
중구(重九)절인 9월 9일에는 국화주, 국화전, 도루묵찜, 메밀만두, 밀만두, 떡볶이, 갈비요리, 호박고지, 시루떡을 먹고, 동지(冬至)절인 11월은 붉은 팥을 끓인 물에 찹쌀가루로 둥글게 빚은 새알심을 나이대로 넣어 동지죽을 끓여 먹고 액운을 막기 위해 집안 벽에 뿌리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는 음식들을 제철에 먹음으로써 오장육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어린 아이들은 청국장이나 시래기국맛을 모르고 있으니 치아와 시력이 약해지는 것은 운동부족이라는 원인도 있지만 키(신장) 또한 크지 않고 옆으로 퍼지는 뚱보(비만)율이 높아지는 것 또한 당연지사이다. 특히 인스턴트 식품 등 먹거리에 의존도가 높아만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제철음식이 최고인 것으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옛날 성현들께서도 식성이 꽤 까다로웠던 것 같다. 제철에 나는 음식 아니면 먹기를 고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또 끓여먹고 굽거나 볶을 것을 모르고 요리한 것은 맛도 보지 않았다. 더구나 계절음식이 아니면 양식(良食)이 독식(毒食)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계절음식을 고집했던 것은 음식 문화의 지혜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 문화의 전통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축척되어 왔으므로 인간의 체질과 건강을 유지하고 문화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되는 바 몇 가지 예를 들면 설날에 꿩 탕으로 끓이는 떡국은 팔진미(八珍味)에 버금가는 맛이지만 5-6월에는 반하(半夏)를 해 먹는 꿩이 독육(毒肉)으로 변하며 콩팥과 방광을 도와 이수(利水)를 하며 피부미용에도 좋다는 잉어(鯉爲魚)는 산 위의 물에서 사는 것은 먹지 못하며 닭고기는 여름철에 돼지고기는 겨울철이 제격이라고 했다.
1943년에 나온 일문(日文)의 전주부사에는 이 지방 사람들이 콩나물을 즐겨 먹었다는 것은 풍토병 예방에 콩나물이 특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각종 암의 공포시대를 맞아 제조생산 유통되고 있는 각종 식재료 등 자연식으로 대체가 시급한 실정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은 우리나라의 지방 명식으로 개성의 엿과 저육, 해주의 승가기(勝佳妓) 평양의 냉면 의주의 대만두,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회양의 곰기름정과, 강릉의 방풍죽, 삼수갑산의 돌배말국, 차호의 홍합죽과 더불어 전주의 콩나물국밥을 들고 있다. 밤술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시다 떨어진 날의 다음 날 아침이면 쓰라린 속을 달래어 마구 콩나물 국밥집으로 내달려한다는 이야기가 이를 증명한 것 같다.
이상과 같은 제철음식 하나만 (특히 대자연의 보고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산나물 포함)잘 갖추어 특색화(생산유통 등)해도 남원에도 전국의 미식가들이 모여들어 재래시장의 활성화 뿐만 아니라 제철 음식점들이 북적댈 것으로 기대되는 바 크다.
그룹 05 > 사설·칼럼 19 페이지
17-03-18 0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