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텃밭 있는 집
(귀농귀촌 찬가)
서 호 련
작가 서하진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로
“아이 입양 후 ‘마당 있는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건사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 꼭 넓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감나무, 석류나무, 개암나무 각각 한 그루, 그리고 일년초 꽃모종을 심을 수 있으면 족하다. 욕심을 낸다면 나무 그네를 놓을 수 있는 공간 정도. 손에 흙을 묻히며 아이들과 나는 작은 꽃을 심는다. 감 하나를 따서 나누고 잘 익은 개암은 항아리에 재어 두고 겨우내 퍼먹을 것이며 붉은 석류 알갱이를 한 옴큼씩 서로의 입에 넣어주고 그 신맛에 눈을 찡그리다 웃음을 터뜨리고…. 생각만으로도 흐뭇한 이야기이다.”
텃밭 가꾸기는 즐거움과 재미를 넘어 자연의 영감까지를 준다. 남원의 집은 비교적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지리산 연봉이 한눈에 보인다. 바로 밑에 있는 널따란 잔디밭, 신라 천년의 고찰, 매월당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로 널리 알려진 만복사지(萬福寺址)이다. 뒤에는 아담한 복음산이 앞녘의 넓은 들을 보듬고 있다. 마을은 허름해도 비교적 조망이 좋은 곳이다.
봄에는 앞마당에 자산홍, 모란꽃이 그리고 잘잘한 분홍색 모과꽃 꽃망울이 마치 붉은 구름과도 같다. 하늘을 온통 희게, 붉게 물들게 하는 매화꽃, 살구꽃 그리고 핏빛처럼 붉은 가을의 화살나무 단풍잎, 흰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설중매, 소복이 쌓인 눈 속의 페라칸사스, 그 빨간 열매를 따먹기 위하여 몰려드는 까치 떼의 울음소리도 좋다.
집 뒤엔 좀 너른 밭이 있지만 진흙땅이기에 작물이 자랄 수가 없었다. 거의 버려진 땅을 군데군데 파서 과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크게 파고 낙엽과 거름을 섞어 흙 갈이를 한 것이다. 그렇게 심은 과일나무가 여러 주가 되었다. 보리수, 살구, 자두 대추는 올해 열어서 따 먹었고 . 꾸지 뽕과 단감나무, 앵두, 체리, 석류는 내년에 열매를 맺을 것 같다.
참가죽나무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잎사귀를 장에서 사다가, 온갖 양념을 한 찹쌀가루 죽을 발라 말린 것을 기름에 튀겨 주셨는데 그때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 한 그루 심었다. 지금 나는 건강원 앞에 놓아둔 약 찌꺼기를 차에 싣고 집에 오는 것이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내는 얼굴이 타니 일 좀 그만 하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애호박이며 토마토, 오이 가지들을 한 바구니씩 따들고 애들처럼 좋아한다.
양이 많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남에게 선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번은 아내가 서울을 가는 길에 채소들을 골고루 따서 박스에 넣어 가까운 친척집에 갖다 주었는데, 마나님 왈, 마트에 가면 몇 천원만 주면 얼마든지 사는데 이렇게 이고지고 왔느냐면서 꾸중만 하더란다.
뜰에서 두어 시간 요리저리 헤집고 다니노라면 운동량으로도 골프에 못지않다.
아무리 골프가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하나 손수 씨를 뿌려 싹이 나고 묘목이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을 경험하는 텃밭 놀이와 비할 수 있겠는가? 텃밭 몇 평 가꾸는 일이 농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여유와 성찰의 시간뿐만 아니라 노역의 가치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운동임에 틀림없다.
들꽃 한 송이 볼 수 없는 서울 살이가 서러워 주말농장을 한지 7년째라는 권영상 아동문학가는 3평 밖에 안 되는 밭이지만 마음 쓰는 건 3천 평 농사를 짓는 이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라도 해서 도심을 벗어나오지 않으면 몇 달이 가도 흙 한번 디뎌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근 인적 드문 작살나무 그늘에 벌렁 누우면 가을 하늘이 다 내거다. 하늘이 커도 저렇게 크고 파래도 저렇게 파랄까. 그늘이 싫으면 딍굴뒹굴 굴러서 햇빛 속으로 나온다. 아무도 날 나무랄 이 없는 이 맨땅이 좋단다.“고 그는 말한다..
( 잿빛 도심에서 벗어나 녹색 전원생황을 꿈꾸는 사람들, 베이비부머(‘55~’63년생)의 은퇴와 전원생활을 통한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민의 증가로 지금 귀농ㆍ귀촌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고 남원시에서도 2013년 올해 목표인 300호를 초과하여 그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 남원언론문화재단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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