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남원시 위생약국
약사 노 상 준
사약(賜藥)
옛날에는 왕족이나 신하, 사대부, 지방수령, 방백이 죄를 크게 지었을 때 먹고 죽을 약(賜藥)을 왕이 내렸다. 일종의 사형제라 할 수 있다. 사약을 내린 것은 전제 군주시대에 왕이 친정(親政)이나 나라 질서를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고위 관속과 왕가 친인척의 잘못을 벌하고자 내렸던 것으로 본다.
사약의 역사를 보면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사료된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약의 재료로 짐새의 독(짐독)을 사용했다고 한다. 짐새는 검은 자색의 깃털, 긴목, 붉은 부리를 가진 새로 수리나 독수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짐새는 독사만 먹고 살기 때문에 독사의 독이 짐새의 온몸에 퍼져있다고 한다. 이 짐새의 깃털을 술에 담가서 독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나라 이후에는 짐독이 아닌 비소를 사용한 독살 방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이외에도 뿌리에 독성이 있는 식물인 부자를 비상과 함께 조제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조선시대 내의원 사약 제조법은 비밀이라 알려진 것은 없으나 혈관확장제, 비상, 수은 혹은 온갖 독성의 재료를 섞은 혼합제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가장 흔하게 사용한 재료는 비상이다. 비상은 비소와 황의 화합물로 석웅황(As2S3), 계관석(AsS), 독사(FeAsS) 등을 총칭한다. 옛날에 비상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비소덩어리(비석)을 흙가마에 올려놓고 그 위에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상태로 태우면 비소 증기가 위로 올라가 솥 안쪽 벽에 붙게 되는데 이것을 떼어내면 비상이 된다. 비소의 급성치사량은 약120mg이며, 주사나 입으로 복용하면 빨리 혈류로 통해 간, 심장 등 전신으로 퍼져 증상은 수분에서 수시간 내에 일어난다. 조선시대 법의학서인 ‘무원록’에 비상을 먹고 자살한 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을 보면 비상에 중독되어 죽은 자는 만 하루가 지나면 온몸에 작은 포진이 발생하고, 몸의 색깔도 청흑색으로 변하고, 눈동자와 혀가 터져 나오고, 입술이 파열되고 두 귀가 부어서 커질 뿐 아니라 복부도 팽창하고 항문이 부어 벌어진다고 하였다.
두 번째로 사용된 재료는 부자이다. 부자는 오두라고도 한다. 부자(초오)를 다진 물을 사약으로 쓰는데 뜨거울 때 많이 마시면 사약이 되지만 식혀서 적량만 마시면 보약이 된다고 한다. 부자를 그대로 말린 것은 생부자, 소금물에 담갔다가 석회가루를 뿌려서 말린 것을 백하부자, 약 120℃로 가열하여 다소 유효성분이 변질한 것을 포부자라고 하며 모두 약으로 쓰인다. 부자의 주성분은 ‘아코니틴’으로 성인의 피하치사량은 2～4mg정도로 맹독성이며, 생약의 경우 5mg이상 먹으면 위험하다. 이외에도 독성이 강해 장희빈 독살 시 사약으로 사용했다는 여러해살이 풀인 천남성도 있다. 그러나 사약을 먹은 후 체질에 따라 죽지 않은 경우도 많아 이럴 경우 사약을 가져갔던 금부도사가 활줄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예로 단종도 사약을 거절하자 관노가 활시위로 목을 졸라 질식시켰다고 한다. 송시열(1607～1689, 조선 숙종 때의 학자. 노론의 영수, 당파싸움에 희생)의 경우 특이체질이라 사약을 네 사발 마시고도 죽지 않아 입천장을 끊어서 상처를 낸 후 사약을 한 사발 더 마시고 나서야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여러 나라와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투쟁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민생을 외면한 권력집단은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당대 훌륭한 인물들이 권력이나 정치싸움의 회오리에 말려 사약을 받았던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을 위해서 뚜렷한 공적도 남겨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활동에 가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고위공직자는 정치세력들로부터 사적, 공적인 과오를 지적받았을 때 그것을 은폐하지 않아야 바른 행정, 바른 정치가 된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가 먼저 바로서야 나라도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나 정치가들은 서로 상대방의 존립을 허물려 하지 말고 타협하는 자세와 국익을 위하여 서로 상호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참고문헌
<의사의 시각으로 본 조선왕들의 삶과 죽음>
최일생(세계 신경학회 한국대표, 현 연세의대 명예교수)저
그룹 05 > 사설·칼럼 11 페이지
13-09-02 19:5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