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남원시에 바란다
남원학연구소
노상준
올해는 용의해이다. 남원은 용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고장으로 백제 초기(AD15)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용성부(龍城府)라는 애칭이 있었다.
용은 우리말로 미르라고 부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설속의 동물로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황실에서 문장으로 사용하여 신성시 되어왔다.
고대 중국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용은 하늘을 지배하는 천룡(天龍), 인간의 부를 지켜주는 복장룡(伏藏龍), 수로(水路)를 다스리는 지룡(地龍),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신룡(神龍)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지룡과 신룡은 물을 다스려 민간신앙세서 중요하게 여겼다.
용은 추상적인 동물에 불과하지만 하늘과 우주를 자유로 날아 다닐 수 있고 우주의 풍수(風水)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고 옛 조상들은 믿었던 것 같다. 또한 변화무쌍한 용은 영웅호걸 장수로도 표현되고 인간 세상의 모든 상서로운 일에 비기기도 한다. 그리하여 장군의 휘장, 군도, 제왕이 않은 용상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용의 태몽은 장수, 영웅을 낳는다고 하여 신혼부부는 단밤에 용꿈 꾸기를 원하며 용해에 결혼을 많이 한다.
우리고장에서는 예부터 용과 관련된 지명과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용을 섬기여 잘 사는 고장이라 하여 고룡군(古龍郡)이라 이름하였고 용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용마(龍馬)놀이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백제 건국초기 고룡군이던 것을 백제 초고왕(肖古王, 196년)때는 남원이 용으로 인해 섬진강, 순자강, 적성강, 요천, 축천 등 강물과 냇물이 띠를 두른 듯 많다하여 대방군(帶方郡)이라 고쳤다 한다. 그 뒤 백제 구수왕(仇首王 230년)때는 남쪽에서 제일이라 하여 남대방(南帶方)이라 했으며 행정구역이 여수, 순천까지 미쳤다고 한다. 남원에는 용(龍)자가 들어간 이름이 너무도 많다. 교룡산성, 용성관, 용성부, 청용사, 용담사, 용정동, 용담리, 용궁리, 용호서원, 용성초등학교, 용성중학교, 용북중학교, 용마놀이 등 현재까지 조사된 용자를 사용한 이름이 30여에 이른다. 이는 용의 위력을 믿고 이름과 지명에 용자를 붙여 사용한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호남지방에 용마희(놀이)가 있다는 기록이 보이고 숙종 25년(1669년)에 간행된 용성지에 놀이 방법이 자세히 기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우리고장은 신라와 백제 변경에 위치하여 심한 국경분쟁이 있었음으로 전쟁과 관계되는 어떠한 놀이로 용마놀이가 시작 되었지 않았을까 하기도 한다. 1986년 춘향제(56회)를 맞아 춘향문화선양회와 문예진흥원의 지원에 힘을 입어 남원문화원이 재현하여 춘향제 길놀이의 하이라이트가 되었고 전국민속놀이 경연대회 식전행사와 쌍용그룹 기념행사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용성지 풍속조에 기록된 용마놀이의 내용을 역을 하여 보면 「고을풍속에 예부터 악귀를 제거하고 재앙을 막는 외에 또한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 위하여 용마놀이를 하였다. 고을 이름이 용성(龍城)인데서 용마(龍馬)놀이라 하였다. 매년 섣달그믐이나 정월 보름에 사는 곳에 따라 남과북 두 편으로 나누어 각각 큰 용마를 만들고 오색 용문(龍文)을 그린 후 외바퀴 수레에 실어 거리로 나오면서 백가지 놀음으로 대진하여 승부를 겨룬다. 이때 남쪽이 승리하면 풍년이 들고 북쪽이 이기면 흉년이 듣다고 한다. 그 유래가 오랜 고로 관가에서도 금하지 아니하고 간혹 도와주기도 하더라고 기록되었다. 」
용마놀이는 장쾌한 남성적 민속놀이이다. 용마놀이는 남원고유의 역사 깊은 민속놀이로 전승과 보존의 필요성 있음에도 현재 단절되고 있음을 아쉽게 생각된다. 또 한편 남원의 명산인 교룡산(蛟龍山)이 잘못 표기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교룡산은 황룡(黃龍, 皇龍)산 이였으나, 황룡산을 격하여 교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룡산은 군왕지지로 제왕이나 성인을 상징하기 때문에 옛 선비들은 불충으로 생각하여 보잘 것 없는 교룡산으로 격하하여 불러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룡산에는 덕밀암 은적당(德密庵 隱跡堂)이 있었다. 이곳은 민족종교인 천도교(동학)의 창시자 수은대신사 최제우가 동학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을 집대성 발표한 동학의 제2성지이며 기미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분인 백용성(白龍城)조사의 첫 출가지다. 조사의 법명은 진종이요 호는 남원의 애칭을 따라 용성이라 하였다. 남원시가 이러한 중요한 유적지를 방치한것은 크게 잘못이며 조속이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남원시민들은 지역의 자존심과 발전의 전기를 갖기 위해 교룡산을 황룡산으로 개명하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남원시는 하루 빨리 절차를 밟아 황룡산으로 명명할 수 있도록 국토지리정보원 중앙지명위원회에 상정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