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고문.수필가 서 호 련
중국에서 맹자를 만났더니 혁명론을 설파하시네!
< ‘벗이 멀리서 찾아와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하면서>
맹자의 고향 추성현은 성도 제남 시에서 동남쪽으로 70km, 곡부에서 25Km 떨어진 곳이다. 우리는 곡부에서 공자를 하직하고 곧장 맹자를 뵈러 추성으로 달렸다.
맹자를 기리는 사당인 맹묘(孟廟)를 아성묘(亞聖廟)라고도 부른다. 두번째 성인의 묘란 뜻이다. 부지면적 5만여m2에 64개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은 중국의 중점문물보호지다. 아내와 함께 주 건물인 아성전 앞에 공손히 서니 맹자님이 나와 하신 말씀이다. ’유명자원방래락호(有名者遠方來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와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글귀는 지난번 북경 올림픽 개막식 때 인사말로 사용되었던 맹자 논어의 첫 구절이다. 아성전 회랑에 26개의 거대한 팔각형 돌기둥이 받쳐져 있고 그 기둥마다 용, 봉황, 꽃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그 거대한 돌기둥을 어떻게 하나같이 팔각형으로 깎고 형상들을 조각하여 옮겨 세웠는지. 이 맹묘(孟廟)에는 한나라 때 화상석(畵像石) 100점을 비롯하여 진나라 때부터 청나라에 이르는 중국 고대 문화재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힐만한 석각작품이 357점이나 소장되고 있다는데 일일이 다 볼 수가 없다. 맹모삼천지교의 주인공인 맹자의 어머니 맹모전(孟母殿)엘 들렸다. 그분은 자녀교육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분이 아니신가?
삼천지교(三遷之敎)라! 우리나라도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맹모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어머니들은 많다. 좋은 학교에 보내기위해 살지도 않는 곳에 위장전입을 하는 어머니들이다. 장관, 대법관등 고위직 상당수가 부동산 투기를 위해서나, 자녀의 학교를 위해서 위장전입을 밥 먹듯이 한다. 우리나라엔 맹모 오천지교(五遷之敎)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직접 맹모삼천지교의 원조를 보는 감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맹자가 생활하던 아성부(亞聖府)라고도 부르는 맹부(孟府)는 22,400m2의 면적에 148칸의 방들이 있고 관원을 접견하던 대당(大堂)과 대당 뒤에 쓰어위안(四合院)으로 지어진 맹자의 주택에서 성인의 체취를 느낀다.
그러나 중국이 낳은 세계의 성현, 공자맹자를 중국이 대대로 숭앙했던 것은 아니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그러나 칼이 붓보다 강할 때도 많았다. 한나라의 유방이나 수나라 양견, 명나라의 주원장처럼 중국 여러 황제들은 그 출신이 깡패나 승려처럼 비루한 이들이 많아 글 읽은 지식인들을 혐오했다. 때로는 붓이 칼을 부르는 때도 많았다. 제왕의 권력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뜻을 세우려다가 황제들에 의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식인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아닌가?
중국이 열강에 의해서 침탈당한 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치욕적 지위로 전락하게 되자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 <중국의 국부 손문孫文>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요, 중국의 대표적 지성 -노신(루쉰)魯迅 (신청년에 게재된 중국현대소설의 첫 작품-광인일기의 저자),> < 중국근대철학자. 중국북경대학 학장. 중국공산당 설립자인 진독수陳獨秀> < 중국 근대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호적胡適> 등, 근대 중국의 대표적 지성들이 정신적 만족만을 강조하는 유교를 통열히 비판하기 시작 했다. 그 때 모택동은 호남성 장사에서 반봉건잡지요 중국 신문화운동의 주요 매체인 <신청년> 을 끼고 다녔다하니 후에 그의 문화대혁명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5‧16 군사혁명 후 나는 나와 절친하게 지내던 혁명 주역 한 분과 시국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재경위원장이었던 그분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손수 성안. 집행 한 분이다. 안동출신 아버지, 독립투사 유림(柳林)을 따라 북만에서 어린 시절 부터 항일 의식을 키웠고 5.16때는 혁명 주역으로 거사에 성공했으니 이미 혁명의 유전자가 그에게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길, “공자의 주된 가르침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아닌가? 먼저 자신을 다스리고 다음에 가정을 다스린 뒤에 국가를 다스리고 천하를 도모하라는 뜻인데, 당장 나라가 썩어 무너지는데 평생을 해도 모자랄 수신제가를 언제 다 마치고 가정을 다스리며 국가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국가나 사회를 바로 잡을 혁명이 언제 이루어지겠는가? 공자는 권력을 넘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기득 권력자들의 앞잡이밖에 안된다. '고놈, 공자!” 하면서 심히 꾸짖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 역시 루쉰과 오위와 같은 이념의 혁명가였으며 마오와 궤를 같이 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불어학자였으며 귀국해서는 독립노농당 당수를 지냈는데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여행가이드가 말해준 맹자의 글귀는 좀 색다르다.
‘노심자치인(勞心者治人) 노력자치어인(勞力者治於人) - 마음을 쓰는 자는 사람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 이글로 맹자도 당시의 제왕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하니 붓이 가야 할 길이 쉬운 것이 아니다.
맹자는 ‘민심은 천심으로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라는 민본설을 제기했다. 그리고 ‘군주가 백성들에게 인정을 베풀지 못하고 민심을 거슬리면 왕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혁명론을 제기하였다. 맹자의 혁명론은 후세에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이론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여 민본설, 혁명론 등을 담은 ‘맹자’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어느 날 천안문 광장에 마오가 헐어 낸 공자의 상이 화려하게 다시 섰다. 언젠가 한 언론사 특파원이 천안문 광장을 찾았더니 공자가 모택동의 초상화를 내려다보며 근엄한 미소를 짓고 있더란다. 국가박물관 앞에 선 9.5m의 거대한 공자상은 맞은편 천안문에 걸린 마오의 초상화보다 훨씬 컸다. 죽은 공자가 다시 살아난 셈이다. ‘중화세기’의 상징으로 다시 선 공자를 마주 보게 된 마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공자는 이처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는 공자와 3천 명의 제자들이 등장했다. 최근엔 대작으로 tv드라마나 tv만화로 제작. 방영 되고 있고 급기야 350억 원의 거금을 들여 ‘공자’라는 영화를 만들어 전국에 상영하고 있다. 중국정부, 공산당의 권력유지-지배 이데올르기에 활용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유교를 앞세워 중화사상으로 세계의 문화를 제패하려고 하는 중국의 문화굴기(文化崛起)정책의 일환이 아닌가.
‘중국문화선언’을 집필하였던 유명한 중국철학자 당군의 선생이, 중국대륙에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공자에 대한 비난도 그와 함께 그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임종의 고통가운데서도 그토록 기뻐하면서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저지난 해 4월 21일, 천안문광장의 공자상이 다시 사라졌다는 것이다. 공자가 다시 죽은 것이다. 아직은 중국이 사회주의 쪽에 더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중국의 근현대 위대한 철학자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중국공산당의 변화는 좀 더 기다려야겠고 중국의 문화대국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자는 죽었다가 다시 살고 살았다가 다시 죽는 수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연중 곡부 추성을 찾는 관광객 수가 천 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다 공자와 맹자, 유교를 알고 오는지 그냥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하니 집 구경이라도 하러 오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공자가 결코 죽지 않았다’고 하는 증거는 된다. 아무래도 공자와 한문은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아무리 뜻과 도가 심오하다고 하지만 문자가 어려우니 그 사상이 널리 퍼질 수 있을까? 부상하고 있는 중화의 유교 권에 살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이 한자로 대한민국도 제대로 쓰는 자가 많지 않다니 이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음 목적지는 태산이다. 관광버스 안에서는 돌아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만담도 한다. 평소 땐 나도 들은 글귀로 문자를 한두 구절 쓰기도 하는데 여기 공자와 맹자의 본고장에서, 또 내 옆에 공자학회 회장인 김교수가 떡 버티고 있으니 주눅이 들어, 어찌 문자를 쓸 엄두를 내랴.
그룹 05 > 사설·칼럼 0 페이지
13-06-04 21:4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