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설 고 문 서 호 련
논설고문.수필가 서 호 련
남부군이청주를 기습점령 할 무렵 이름모를 전염병이 밀어닥쳤다. 그것은 토벌대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1951년 이른봄 백아산의 전남 유격대로부터 시작된 이 괴질은 산맥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월중에는 덕유산의 전북부대 그리고 지리산, 속리산의 남부군에 창궐하여 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1950년 12월도 저물어 갈 무렵, 드디어 토벌군은 대대적인 수복작전을 개시했다. 곡성군당은 해방구마자 잃어버리고 백아산 기슭의 화순 방석포라는 마을로 거점을 옮긴 상태였다. 간혹 보급투쟁에 나갔던 유격대가 소를 몰아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동지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시가보다 몇 천원 더 얹어주면서 사오는 것이다. 그런 날은 온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고 오락회가 열렸다. 소 한 마리라고 해보아야 4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먹어대니 몇 점 돌아가지도 않았다.
오락회가 있는 날이면 옆 동네 할머니들 까지 어린손자의 손을 붙들고 희미한 달빛을 밟아 평지 마을로 왔다. 마을 공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군당 기관별로 대항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맹원들은 부끄럼 없이 앞으로 나가 노래를 한가락씩 뽑고 흥이 오른 노인네들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 신나는 탭 댄스가 이어졌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나가 되었다
52년 3월 20 일, 오전 11시쯤 느닷없이 미군비행기 세대가 백아산 상공에 나타나 저공비행을 시작했다. 사전정찰을 하는 듯 비행기는 백아산 골짜기마다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고지에 주둔해 있는 유격대가 소총으로 사격을 했지만 응사도 없이 삼십분 쯤 정찰을 하다가 비행기는 유유히 돌아갔다.
22일 도당에서 지도원이 하는 말이다. “잔인무도한 미제 놈들이 이젠 세균전까지 시도했소. 이십일 아침 비행기는 정찰 임무도 있었지만 세균살포가 주목적이었소. 살포 전에 부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미리 예방주사를 놓았다고 하오. 벌써 백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소. 재귀열이라고 하는 병인데 처음에는 세균으로 감염되지만 나중에는 이가 병을 옮긴다 하오. 죽을병은 아니라고 하지만 적이 쳐들어오면 큰 걱정이오.” 전방에서 세균을 살포했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도당에서는 긴급 지시문이 내려왔다.“ 모든 기관과의 왕래를 원칙적으로 금한다. 부득이한 경우 왕래자는 단발을 시켜 머리에서 이를 없앨 것이며 의복은 매일 증기 소독을 하고 머리도 매일 1회 이상 감게 한다. 여성대원들도 가능한 한 단발을 한다. 재정이 허락하는 대로 DDT나 구충제를 구입한다.”
23일 밤 총사에서 긴급 작전지시가 내려왔다. 내일부터 대대적인 백아산 토벌작전이 실시 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됐다는 것과 곡성군 유격대도 540부대와 함께 방어전에 참여 할 것, 비무장 단체는 오늘밤 12시 안으로 백아산을 빠져나가라는 것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환자가 불어나길 기다렸다가 드디어 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벌써 백아산에는 재귀열 환자가 7백 명이 넘었다. 밤이 어둑해져서야 정찰조들이 돌아왔다. 어제 매봉에서 한 대원이 소총으로 전투기 한 대를 격추했는데 비행기가 공중폭발하자 그때부터 각 고지에서의 적의 공격이 중지되고 퇴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백아산 에서는 상봉 밑의 원봉 고랑이 가장 넉넉하고 지형이 좋아 대부분의 투쟁인민들이 거기 모여 있었고 유격대나 당 기관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점이나 방어에 유리한 지점인 매봉고지나 삼각고지에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안전하리라고 믿었던 원봉고랑에 집중적으로 세균을 살포하는 바람에 바깥으로 전투를 자주 나가는 유격대나 당기관원들보다 투쟁인민들의 발병률이 훨씬 높았다. 간호원까지 감염되어 드러누운 채 의무요원 한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고열에 들떠 신음하고 있는 한 환자의 머리를 짚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이마를 짚고 있는 그의 손등으로 이 떼가 새 하얗게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검은 전투복도 이 떼가 바글바글 꼬여 흰옷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남부군 이현상부대는 후평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단양 경찰서, 문경경찰서 습격, 문경, 영풍의 미군부대습격,10일간 죽령 국도 차단 등 후방의 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면서 소백산을 버리고 속리산으로 향했다. 비행기의 공습은 끊임없이 이들을 쫓아 왔고 이 무렵부터 재귀열 환자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로를 해서 염병(장티부스)에 걸린 줄 알았으나 나중에 평양 중앙방송을 듣고서야 미군의 세균 살포로 인한 것이고 병명도 염병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재귀열이라는 것을 알았다. 재귀열이 퍼진 것은 남부군 뿐 만이 아니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북쪽에서도 재귀열이 창궐해 환자들이 속출했다. 남부군에서도 날이 갈수록 환자가 늘었다. 살을 엘듯 한 추위속에서 환자를 들것에 싣거나 둘러메고 혹은 부축한 채 계속 남쪽을 향했다.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며 나무꼬챙이 처럼 마른 환자들이 비틀거리며 남부군은 2월 초 간신히 속리산에 도착했다.
수많은 재귀열 환자들이 죽은 채 시체로 나갔고 남마다 더 많은 환자가 생겨났다. 박종하가 부대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약품을 보급해왔지만 아스피린이 최고의 약이었다, 이가 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도대체 이를 근절시킬 방법이 없었다. 추위에 떨며 끙끙거리고 있는 환자들의 옷을 벗겨 활활 타 오르는 모닥불 위에서 탈탈 털면 후두두둑 이 타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이가 생기는지 날마다 옷을 털어도 날마다 그 만큼씩 이가 생겼다. 게다가 재귀열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몸조리를 잘 못 했다가는 두 탕, 세 탕, 심지어는 다섯 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부군의 저자 이태는 남부군의 초판이 나온 후, 당시 전남도당 의무과장이었던 의사 이모씨로부터 이 전염병에 관한 소상한 제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재귀열이라는 전염병이었으며 한번 내렸던 열이 두번, 세번 다시 도지는 것이 특징이어서 재귀열이라는 병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가 전염하고 고열과 함께 심한 고통을 수반하며 치유 후에도 한동안은 기운을 못 차려 토벌대가 접근하는 것을 보고도 비실비실하다가 맞아죽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병은 십 여일 가량 정신이 몽롱할 정도의 고열이 계속되고 심신이 완전히 탈진되는 점은 장티푸스와 비슷했지만, 장티푸스처럼 발진이 생기지 아노고 증세가 가혹한 데 비해 사망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전염병은 51년 2월경 전남부대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산맥을 타고 4월경에는 전북부대로 번져갔고 5월경에는 속리산의 남부군에까지 전염돼갔던 것이다. 전남부대에는 당시 3명의 의사가 있었으나 재귀열이 워낙 드문 병이어서 임상경험이 없어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으며, 특효약인 마파상 주사약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제때에 투약하지 않아 막대한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전남에서는 이 병에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해서 많은 환자들이 물도 못 마시고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제보자인 이 씨는 이 병의 임상경험이 있었으나 당시 지리산에 파견 나가 있어 당초 백아산, 광양 백운산 등지에서 창궐하던 이 병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전염병은 백운산 트 에서 시작되어 덕유산으로 이동한 즈음에는 온 부대를 휩쓸어 삽시간에 거의 반 수 가까운 대원이 앓아눕게 되었다. 초기의 환자 중에는 이미 건강을 회복하여 대열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열이 내린 후에도 탈진한 체력을 회복 못하고 바보처럼 흐느적거리며 먹을 것만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 회복기 환자들의 조속한 대열 복구는 당시 사령부의 최대 과제였다. 소백산맥을 북상하며 번져간 이 전염병으로 아마 1천 명 정도의 희생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이 전염병은 빨치산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대사건이었다)
정치 일꾼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매장하고 그 위치와 사망 날짜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얼마나 많이 죽어나갔는지 시체를 매장하는 것만도 힘이 벅차 같이 앓아누울 정도였다. 봄이 되자 기세를 떨치던 재귀열도 차츰 가라않기 시작했다. 이미 백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났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몇 탕씩 재귀열을 앓고 거의 페인이 된 대원들이 많았다. 51년 4월 말경 남부군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환자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청주 해방작전에 동원 되었다.
남부군이 청주를 기습점령 할 무렵 이름모를 전염병이 밀어닥쳤다. 그것은 토벌대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1951년 이른봄 백아산의 전남 유격대로부터 시작된 이 괴질은 산맥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월중에는 덕유산의 전북부대 그리고 지리산, 속리산의 남부군에 창궐하여 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1950년 12월도 저물어 갈 무렵, 드디어 토벌군은 대대적인 수복작전을 개시했다. 곡성군당은 해방구마자 잃어버리고 백아산 기슭의 화순 방석포라는 마을로 거점을 옮긴 상태였다. 간혹 보급투쟁에 나갔던 유격대가 소를 몰아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동지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시가보다 몇 천원 더 얹어주면서 사오는 것이다. 그런 날은 온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고 오락회가 열렸다. 소 한 마리라고 해보아야 4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먹어대니 몇 점 돌아가지도 않았다.
오락회가 있는 날이면 옆 동네 할머니들 까지 어린손자의 손을 붙들고 희미한 달빛을 밟아 평지 마을로 왔다. 마을 공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군당 기관별로 대항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맹원들은 부끄럼 없이 앞으로 나가 노래를 한가락씩 뽑고 흥이 오른 노인네들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 신나는 탭 댄스가 이어졌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나가 되었다
52년 3월 20 일, 오전 11시쯤 느닷없이 미군비행기 세대가 백아산 상공에 나타나 저공비행을 시작했다. 사전정찰을 하는 듯 비행기는 백아산 골짜기마다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고지에 주둔해 있는 유격대가 소총으로 사격을 했지만 응사도 없이 삼십분 쯤 정찰을 하다가 비행기는 유유히 돌아갔다.
22일 도당에서 지도원이 하는 말이다. “잔인무도한 미제 놈들이 이젠 세균전까지 시도했소. 이십일 아침 비행기는 정찰 임무도 있었지만 세균살포가 주목적이었소. 살포 전에 부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미리 예방주사를 놓았다고 하오. 벌써 백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소. 재귀열이라고 하는 병인데 처음에는 세균으로 감염되지만 나중에는 이가 병을 옮긴다 하오. 죽을병은 아니라고 하지만 적이 쳐들어오면 큰 걱정이오.” 전방에서 세균을 살포했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도당에서는 긴급 지시문이 내려왔다.“ 모든 기관과의 왕래를 원칙적으로 금한다. 부득이한 경우 왕래자는 단발을 시켜 머리에서 이를 없앨 것이며 의복은 매일 증기 소독을 하고 머리도 매일 1회 이상 감게 한다. 여성대원들도 가능한 한 단발을 한다. 재정이 허락하는 대로 DDT나 구충제를 구입한다.”
23일 밤 총사에서 긴급 작전지시가 내려왔다. 내일부터 대대적인 백아산 토벌작전이 실시 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됐다는 것과 곡성군 유격대도 540부대와 함께 방어전에 참여 할 것, 비무장 단체는 오늘밤 12시 안으로 백아산을 빠져나가라는 것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환자가 불어나길 기다렸다가 드디어 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벌써 백아산에는 재귀열 환자가 7백 명이 넘었다. 밤이 어둑해져서야 정찰조들이 돌아왔다. 어제 매봉에서 한 대원이 소총으로 전투기 한 대를 격추했는데 비행기가 공중폭발하자 그때부터 각 고지에서의 적의 공격이 중지되고 퇴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백아산 에서는 상봉 밑의 원봉 고랑이 가장 넉넉하고 지형이 좋아 대부분의 투쟁인민들이 거기 모여 있었고 유격대나 당 기관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점이나 방어에 유리한 지점인 매봉고지나 삼각고지에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안전하리라고 믿었던 원봉고랑에 집중적으로 세균을 살포하는 바람에 바깥으로 전투를 자주 나가는 유격대나 당기관원들보다 투쟁인민들의 발병률이 훨씬 높았다. 간호원까지 감염되어 드러누운 채 의무요원 한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고열에 들떠 신음하고 있는 한 환자의 머리를 짚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이마를 짚고 있는 그의 손등으로 이 떼가 새 하얗게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검은 전투복도 이 떼가 바글바글 꼬여 흰옷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남부군 이현상부대는 후평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단양 경찰서, 문경경찰서 습격, 문경, 영풍의 미군부대습격,10일간 죽령 국도 차단 등 후방의 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면서 소백산을 버리고 속리산으로 향했다. 비행기의 공습은 끊임없이 이들을 쫓아 왔고 이 무렵부터 재귀열 환자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로를 해서 염병(장티부스)에 걸린 줄 알았으나 나중에 평양 중앙방송을 듣고서야 미군의 세균 살포로 인한 것이고 병명도 염병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재귀열이라는 것을 알았다. 재귀열이 퍼진 것은 남부군 뿐 만이 아니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북쪽에서도 재귀열이 창궐해 환자들이 속출했다. 남부군에서도 날이 갈수록 환자가 늘었다. 살을 엘듯 한 추위속에서 환자를 들것에 싣거나 둘러메고 혹은 부축한 채 계속 남쪽을 향했다.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며 나무꼬챙이 처럼 마른 환자들이 비틀거리며 남부군은 2월 초 간신히 속리산에 도착했다.
수많은 재귀열 환자들이 죽은 채 시체로 나갔고 남마다 더 많은 환자가 생겨났다. 박종하가 부대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약품을 보급해왔지만 아스피린이 최고의 약이었다, 이가 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도대체 이를 근절시킬 방법이 없었다. 추위에 떨며 끙끙거리고 있는 환자들의 옷을 벗겨 활활 타 오르는 모닥불 위에서 탈탈 털면 후두두둑 이 타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이가 생기는지 날마다 옷을 털어도 날마다 그 만큼씩 이가 생겼다. 게다가 재귀열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몸조리를 잘 못 했다가는 두 탕, 세 탕, 심지어는 다섯 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부군의 저자 이태는 남부군의 초판이 나온 후, 당시 전남도당 의무과장이었던 의사 이모씨로부터 이 전염병에 관한 소상한 제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재귀열이라는 전염병이었으며 한번 내렸던 열이 두번, 세번 다시 도지는 것이 특징이어서 재귀열이라는 병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가 전염하고 고열과 함께 심한 고통을 수반하며 치유 후에도 한동안은 기운을 못 차려 토벌대가 접근하는 것을 보고도 비실비실하다가 맞아죽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병은 십 여일 가량 정신이 몽롱할 정도의 고열이 계속되고 심신이 완전히 탈진되는 점은 장티푸스와 비슷했지만, 장티푸스처럼 발진이 생기지 아노고 증세가 가혹한 데 비해 사망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전염병은 51년 2월경 전남부대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산맥을 타고 4월경에는 전북부대로 번져갔고 5월경에는 속리산의 남부군에까지 전염돼갔던 것이다. 전남부대에는 당시 3명의 의사가 있었으나 재귀열이 워낙 드문 병이어서 임상경험이 없어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으며, 특효약인 마파상 주사약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제때에 투약하지 않아 막대한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전남에서는 이 병에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해서 많은 환자들이 물도 못 마시고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제보자인 이 씨는 이 병의 임상경험이 있었으나 당시 지리산에 파견 나가 있어 당초 백아산, 광양 백운산 등지에서 창궐하던 이 병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전염병은 백운산 트 에서 시작되어 덕유산으로 이동한 즈음에는 온 부대를 휩쓸어 삽시간에 거의 반 수 가까운 대원이 앓아눕게 되었다. 초기의 환자 중에는 이미 건강을 회복하여 대열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열이 내린 후에도 탈진한 체력을 회복 못하고 바보처럼 흐느적거리며 먹을 것만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 회복기 환자들의 조속한 대열 복구는 당시 사령부의 최대 과제였다. 소백산맥을 북상하며 번져간 이 전염병으로 아마 1천 명 정도의 희생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이 전염병은 빨치산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대사건이었다)
정치 일꾼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매장하고 그 위치와 사망 날짜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얼마나 많이 죽어나갔는지 시체를 매장하는 것만도 힘이 벅차 같이 앓아누울 정도였다. 봄이 되자 기세를 떨치던 재귀열도 차츰 가라않기 시작했다. 이미 백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났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몇 탕씩 재귀열을 앓고 거의 페인이 된 대원들이 많았다. 51년 4월 말경 남부군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환자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청주 해방작전에 동원 되었다.
그룹 05 > 사설·칼럼 0 페이지
13-04-06 09:4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