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와 향약
남원학연구소 노 상 준
향약(鄕約)은 전통 지방자치제의 규약(規約)이라 할 수 있다. 남원에는 대방향약(帶方鄕約:원동향약)이 전북유형문화재 146호로 지정하여 보전되고 있다.
“향약”이란 향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도덕적 삶을 위해 상호간에 권선징악(勸善懲惡:착한 행실을 권장하고 악한 행실을 징계함)과 미풍양속(美風良俗:아름답고 좋은 기풍이나 풍속)을 기리며 상부상조하기 위한 자치규약이다.
남원은 예부터 기름진 들판이 100리에 걸쳐 있어 옥야백리(沃野百里)로 하늘로부터 주어진 고을의 땅(天府之地)으로 일컬어져 왔으며 호남웅부 가운데 하나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리하여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남원을 가리켜 “땅이 넓고 사람들은 굳세다.” 하였으며, 조선시대 남원부사 홍석기(洪錫箕)는 남원을 “해동(우리나라의 옛 이름) 추로지향(鄒魯之鄕 : 맹자의 고향 추나라와 공자의 고향 노나라 같음)”이라 하여 유교가 융성한 고장으로 표현하였다. 역사의 고도이자 추로지향 남원지역에는 오래전부터 향약이 실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정유재란을 거치면서 향약이 소멸되었다가 16세기 말에 이르러 다시 복원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남원시 왕정동 532번지 소재 양사재(養士齎) 대방향약소는 대방향약을 전수 보전해온 곳으로 향교의 부속건물이며 선비를 양성하는 곳이다. 양사재는 1642년(인조 20년)에 건립되어 매년 봄, 가을로 상읍례(相揖禮:절하는 예법), 독법례(讀法禮:글을 읽는 예법), 향음주례(鄕飮酒禮:음식과 술을 먹는 예법)를 거행하고 백일장을 장려하며 과거의 예습과 유학을 연구하는 선비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다. 또한 향약을 크게 위배하고 지역 사회에서 못된 짓을 자행한 자를 “덕석몰이(잘못한 사람이나 그 잘못한 자의 명패를 덕석으로 몰아 여러 선비가 매질하는 벌칙)”를 하기도 하여 지역자치와 주민화합에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다.
이와 유사하게 율곡선생이 정한 “해주 향약”은 벌을 상벌(上罰), 차상벌(次上罰), 중벌(中罰), 차중벌(次中罰), 하벌(下罰) 다섯 가지로 나누고 양반과 상민에게 가하는 형벌도 달리하였다 한다. 이를테면 아버지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대들거나 상중(喪中)에 술에 취해 주정을 하면 상벌에 해당된다. 그것이 상민이면 태(笞) 40대를 치고 양반이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 자기 이름을 써 들고 앉아 있는 명예형(名譽刑)을 가했다. 만인 앞에서 이름을 더럽히게 하는 것이 어떤 체벌보다 더 중형이었다. 이를 통하여 조상들이 이름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서당, 관청, 군대, 감옥에 신참자가 들어오면 고참자들에게 주(酒)․식(食) 향응을 받치는 관습이 있었고 신참자들은 고참자들의 온갖 모욕과 학대를 받아야했다. 신참 학대 가운데 가장 가혹한 것은 자기 아버지 이름을 쓴 종이를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었다. 몸을 다쳐 병신이 되는 것은 적은 일이요, 이름을 훼손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라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이름을 훼손하지 않고 또 후손들에게 조상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굶고도 잇새를 쑤시고, 영화를 등지고 가시밭길을 걸어 간 선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법치국가에서 합리화될 수 없는 전근대적 제재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프라이버시(privacy)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다시금 생각해 볼만한 일이기도 하다.
“향약(鄕約)”은 윤리와 도덕성이 상실되어 무질서가 난무하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지방자치제가 올바르게 시행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지방선거에서까지 후보자의 당 공천제가 시행되면서 시민이 패가름 되고 아름다운 향리의 정서가 사라져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지방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향약의 귀중함을 다시 인식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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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3 17:5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