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12) 백선엽이 만든 남원주생비행장-전용정찰기로 전투지휘
여자빨치산 오양수와 비련으로 끝난 김대위.
논설고문. 수필가 서 호 련
남원월락초등학교에서의 브리핑은 오전 8시에 시작하여 9시쯤 끝난다. 브리핑 실에는 대개 50명 정도가 들어온다. 참모와 고문관 외에 공중 연락장교, 각급부대의 연락관이 모두 들어오기 때문이다. 브리핑이 끝나는 대로 나는 바로 광한루 인근 요천 변에 내가 손수 만든 주생의 간이 비행장으로 나가서 경비행기 세스나 L-19에 올라타고 지리산 위로 날아올랐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대공포판(對空布版- 하늘에서 볼 수 있는 표시판)을 등에 부착한 아군 토벌대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비행기 엔진 소리만이 귀에 들어온다. 저 밑으로 보이는 토벌대의 움직임은 한가로이 등산을 즐기는 행렬로 만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박격포와 기관총, 그리고 성능이 좋은 M-1소총으로 무장한 우리의 군대였다. 적이 눈에 띄면 가차 없이 공격을 퍼 붓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부대들이다. 그들은 능선만을 뒤졌던 것이 아니다. 내 명령에 따라 적이 숨어 있을만한 곳을 모두 훑고 있었다. 산골 모두를 빠짐없이 훑고 있는 중이었다. 일종의 ‘토끼몰이’였다. 손에는 모두 막대기를 들고 토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토끼가 나타나는 순간에 대열을 한 곳으로 몰아 포위 한 뒤 때려잡는 그 사냥방식 말이다. 빨치산은 어디에 숨은 것인가. 언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비행기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지리산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피아간에 총을 겨누고 싸우지만 사람끼리의 묘한 인연은 토벌과정에서 늘 화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빨치산 형과 국군동생이, 게릴라와 토벌대로 전장에서 마주쳤다가 형이 동생에게 잡힌 경우도 있었고, ‘백야사‘ 참모장이었던 김점곤 대령은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살해한 빨치산을 포로수용소에서 만나 속으로만 울분을 삭이기도 했다. 수도사단의 한 대대장은 작전 중에 죽마고우였던 빨치산 친구를 잡았다가 풀어줘 혼이 나기도 했다. 토벌대 대위와 빨치산 여자대원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있다. 수도 사단 26연대의 선봉 중대장이었던 김 대위는 51년 12월 말 장안산 남쪽 장수군 지지리에서 미군 파카를 뒤집어 쓴 채 눈밭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 빨치산을 발견했다. 그 여인은 오양수라는 이름의 당시 20세의 꽃다운 미인이었다. 명문 전북고녀(전여고) 출신으로 전북여맹 부위원장의 지위에 있었으나 자진입산해서 빨치산이 된 것은 아니었다.
북한군 치하의 인공이 들어서자 아버지가 면장이었던 그녀의 가족은 반동으로 몰렸으나 전북여맹에 있던 그녀의 친구들이 “ 가족을 살리려면 여맹에 가입해야한다” 해서 이를 따랐다는 것이다. 동상으로 발이 부어오르고 배고픔과 추위에 찬, 긴 산속생활로 몸 상태가 위독했던 그녀를 김 대위는 중대 막사에 옮겨 극진히 간호했다. 싸움이 벌어지는 진중에서 그렇게 1주일을 보낸 뒤 두 사람은 완연한 한 쌍의 연인으로 변했다. 부대전체에서 시빗거리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지금부터 이 여자는 내 아내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공언 할 정도였다. 그들은 결국 서로 사랑에 빠졌고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 대위는 군인가족 증을 만들어 그녀를 본가로 보냈다. 그러나 김대위는 얼마 있지 아니하여 빨치산대원을 은닉해 빼돌렸다는 혐의로 방첩대에 체포되었고 김대위의 본가에서 참한 며누리로 칭찬받으면서 시부모를 모시던 오여인도 체포되어 그들은 가혹한 심문을 받았다. 오여인은 감시병이 잠시 한눈을 판사이 벽에 세워져 있던 카빈 소총을 낚아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대위에게 조금이나마 누가 될까 봐서렷다.
김대위는 남원 노암동의 수도사단 감방에서 구금되어 있다가 부대 철수 시 석방되었고 논산훈련소등에 자원해 근무하면서 전주일대에서 오여인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73년 군 생활을 마치고 육군 중령으로 예편해 대전에서 만년을 보냈다. 작전도 끝나고 전쟁도 끝난 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다. 전장에서 서로 총구를 겨누는 아군과 적군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사람의 이야기는 피어난다.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끊어 놓은 것은 한번 벌어지면 줄일 수 없는 이념의 거리가 아닌가. 전쟁은 그렇게 무수한 아픔을 딛고 치러진다.
(백선엽) 계속 13 <김일성과 이현상의 자녀들 >
그룹 05 > 사설·칼럼 0 페이지
13-01-16 20:5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