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고문. 수필가 서 호 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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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선엽장군의 남원추억
-춘향의 광한루보다 인월 피바위에 더 관심 -
작전 중 지리산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주야간 및 고도 간 기온차도 심해 장병들은 혹심한 고초를 겪었다. 장병들은 물론이고 잡혀온 그들도 거의 동상환자들이었다. 나로서는 정찰기를 타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지형이 복잡한 지리산에 강풍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상공은 항상 난 기류였다. 에어 포킷( Air Pocket-수직기류)에 걸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 한 아찔한 경우를 하루에도 몇 번씩 겪어야한다. 나중에 미 공군이 내게 메달을 하나 수여 했다. 에어 메달(Air Medal)이라는 것으로 적의 사격범위 안에 들어 있는 상공을 20회 이상 비행한 사람에게 주는 메달이었다. 적의 상공에 진입해 비행하는 것을 언더 에니미 파이어(Under Enemy Fire)라고 부르는데 적의 사격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공임에도 용감하게 비행에 나서는 사람을 포상하는 제도였다.
1년 반의 토벌작전으로 빨치산들의 조직은 붕괴되었고 근거지도 파괴되었다. 1월 말엔 백 야전전투사령부의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직전기간 중 육군본부 자료에 의한 양 사단의 전과는 사살 5800명, 포로 5700명으로 집계되었다. 1월 12일 나는 유군본부로부터 중장에 진급되었다는 전문을 받았다
백선엽장군의 남원회고록이다.
6.25 전쟁이 터진 뒤 벌써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미 휴전 협상은 벌어지고 있었으며 38선 주변의 각 전선에서는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소모전 양상의 전투만 펼쳐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규모의 게릴라 토벌작전이 벌어지고 있던 지리산은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지대한 관심이 몰렸고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남원으로 찾아 왔다. 초기의 작전에 성과를 내지 못했던 우리는 남원의 백 야전사령부를 찾아 내려와 격려했던 벤프리트장군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 백장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잘 될 것입니다.” 내가 탔던 세스나 정찰기는 성능이 좋았다. 활주로를 길게 닦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남원 춘향의 무대, 광한루인근 요천변 주생 쪽에 간이 활주로를 만들도록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전용 경비행기를 띄웠다. 그 무렵에 춘향의 광한루를 들렸던 것 같다. 춘향의 초상도 잠간 바라본 것 같다. 그러나 춘향의 정절을 추념하기에는 여러모로 전황이 급했다. 그저 무덤덤하게 광한루를 둘러보았던 것이다.
역사를 회고하자면, 나는 오히려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운봉 피바위에 마음이 향했다. 그곳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장군들 가운데 이름을 크게 드날리도록 한 지역이다. 고려 말의 가장 큰 현안은 바다를 건너 온 게릴라, 왜구의 침탈을 막는 일이었다. 전라도에 상륙해 큰 기세로 이 지역을 약탈과 방화, 살육으로 분당질 치던 왜구는 출동한 이성계에 의해 큰 타격을 입었다. 그가 적장 아끼바스(아지발도)의 투구를 화살로 맞힌 뒤 드러난 얼굴에 다시 화살을 날려 즉사케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그때의 승리가 황산대첩이었다. 그때 흘렸던 피가 바위에 스며들어 지금도 바위가 빨갛다는 피바위가 있다고 들었다. 빨치산을 토벌키 위해 나섰던 나는 평화롭던 시절에 벌어진 이몽룡과 춘향의 러브 스토리보다는 이성계의 강력한 활 솜씨와 왜구를 무찌른 역사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당시의 내 숙소는 월락초등학교 숙직실이었다. 나는 오전 5-6시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브리핑실 이었다. 오전 8시에는 브리핑이 시작된다. 내가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고 사령부 참모들이 왼 쪽, 미군고문관들이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다. 내 정면의 벽에는 지리산과 그 주변지역을 상세하게 그린 5만분의 1 지도가 걸려 있다. 브리핑은 그날 새벽까지의 적정(敵情), 토벌대의 작전상황, 전과가 있는지를 각 담당자들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기상과 보급관계를 확인하는 순서다. 브리핑 실에는 대개 50명 정도가 들어온다. 참모와 고문관 외에 공중 연락장교, 각급부대의 연락관이 모두 들어오기 때문이다. 브리핑은 오전 9시 정도에 끝난다. 브리핑이 끝나는 대로 나는 바로 광한루 인근 요천 변에 마련한 간이 비행장(주생비행장)으로 가서 세스나 경비행기인, L-19에 올라타고 지리산 위로 날아올랐다. 작전을 지켜보는 게 내 일이었다.(계속12-백선엽이 만든 주생비행장- 전용 정찰기로 전투
그룹 05 > 사설·칼럼 0 페이지
13-01-12 21:4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