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국은 무너질까
- 미국여행기 17 -
뉴욕에서 한 달여,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국이란 나라 대단한 나라요,
경이로운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어떤 경우 역사나 지형. 사물을 보는 눈이 현지인보다는 이방인의 눈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가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데 육지 사람들은 그곳을 둘러보고 제주도에는 돈이 굴러다닌다고 하는 것과 같다.
혹자는 미국을 가리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실상의 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로마제국, 대영제국도 영원할 수 없었듯 미국도 패권을 상실할 날이 필연적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미 역사학자 알프레드 맥코이는 지난해 ‘미 제국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글을 통해 2025년쯤 몰락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현역 언론인인 크리스 헤지스가 쓴 ’미국의 굴욕‘이란 책에 의하면, 세계의 최강자 로마가 멸망한 가장 큰 이유는 로마의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넘치는 재화의 무감각적인 소비, 권력집중과 귀족문화의 폐해로 인해 로마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현대판 로마로 불리는 미국 또한 쇠퇴기 로마의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미국을 망국으로 몰아넣은 원인을 5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로 저급한 대중문화를 꼽았다. 모든 대중담론이 열 살짜리 아이들 수준이어서 이 수준의 사람들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능력조차 잃어버렸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섹스문화-포르노그래피 산업이 미국사회를 타락시키고 있다. 여성의 상품화, 폭력사회, 그리고 높은 이혼율, 사회적인 타락성이 만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엘리트주의와 돈에 물든 교육이 미국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고 꼬집었다. 정관계와 재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유명사립대학출신들이 이너서클(내부서클)을 만들어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부추기고 부패의 고리를 만듦으로써 누구나 노력하고 성실한 삶을 살면 성공하다는 건국초기의 가치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현재 미국의 인문학은 고사 지경에 이르렀고, 대학들은 지혜를 갈고 닦는 정신과 도덕성에서 벗어나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의 지배계급은 경제위기를 포함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한탄한다.
다섯째는 미국파탄의 조짐은 단순히 금융위기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에서부터 일상과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체제와 삶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됨으로서 미국적 가치 상실이 마치 로마의 가치상실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파국을 막기 위해선 미국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마치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S&P의 국가 신용등급위원회 의장 존 체임버스는 미국신용등급 강등 이유를, 미국의 재정적 수치는 부차적이고 미국정치의 무기력이 더 큰 문제라면서 정치적 교착상태, 정치력, 리더십의 부재가 경제적 재앙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이러한 미국에 대한 견해들이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시각일 뿐이라는 점이다. 프리스 헤지스의 주장은 미국사회의 병폐를 매우 정확히 지적하고 있지만 그러한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병리현상이지 그것이 미국의 몰락징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오히려, 코넬대 정치학 박사로 정치. 경제. 외교 싱크탱크인 ‘스트랫 포(Stratfor. Strategic Forecasting 약자)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군사정치전문가인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 63) 의 견해에 더욱 공감하는 편이다.
그는 2009년,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급부상으로 세상이 놀라워 할 때 '100년 후(Next 100Years)' 란 책에서 “미 제국은 앞으로도 500년 동안 유지된다.”고 갈파했다. 이 책은 미국. 일본.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었는데, 역사와 미래를 보는 그의 혜안은 그가 군사전문가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 대한 그의 신뢰는 확고했다. “미국은 세계 GDP의 25%를 차지한다. 중국. 일본. 독일을 합친 규모다.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가 자국 GDP의 5-1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해외 직접투자는 세계 해외투자의 22.5%를 차지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지만, 그 사실 자체로 미국은 세계시장에서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누구도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제국이라고 말하지만 그 제국의 성격이 다르다. 미국은 제국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킨 첫 국가였다. 대영제국에 대한 독립선언은 대영제국이 아니라 제국이라는 그 제국자체의 개념을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제국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비용도 부담스럽고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싫다는 것이다. 지금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에 미국이 쇠퇴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늘 그렇게 말해 왔다. 1930년대 대 공황 때도 그랬고, 1970년대 베트남전 후 실업률이 치솟고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졌을 때도, 그리고 1980년대 일본이 경제의 슈퍼파워로 등극했을 때도 사람들은 일본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믿음은 모두 깨졌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두고도 사람들은 미국이 빚더미에서 빚을 얻어 돌려막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미국의 몰락이 시간문제라고도 말했지만 EU에 비하면 잘 극복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죠지 브리드먼은 미국의 쇠퇴를 믿는 그러한 믿음이 미국을 지금의 위치로 끌어 올린 동력이라고 했다. 쇠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20년, 미국의 위대한 선조들인 102명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곳 신천지에 도착하여 황무지를 개척한 지가 불과 390년, 그들이 이 짧은 기간에 이러한 초거대문명복지국가를 이룩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하면서 우주개발에 나서고 있는 미국사람들의 프론티어 정신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많은 인종들이 하나의 미국시민이 되어 법과 질서를 지키며 조화를 이루고 사는 모습은 마치 잡철들이 용광로 속에서 용해되어 새로운 철강으로 변신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에게 이러한 애국심과 일체감,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들의 역사에서 그들의 저력을 믿고 있는 편이다. 수 천 년 동안에 걸쳐 건설된 유럽의 화려한 문명을 제치고 단 수 백년 만에 황무지에서 이러한 문명국가를 일으킨 원동력은 서부를 개척했던 그 프론티어 정신이 아닐까? 물론 이 거대국가 이면에는 범죄나 마약, 저급문화, 사회의 부조리 등 어두운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건 문제가 없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위정자들도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세계 제2위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지표인 국내 총생산(GDP)만 가지고는 국가의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자유와 인권의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거대제국을 건설하고 문화를 창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중국이 잘해왔지만 중국은 동시에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중국은 10억 인구가 극빈층이다. 6억 명이 가구당 하루 3달러 미만의 벌이로 산다. 4억4천만 명은 6달러 미만으로 산다. 13억 명 중 10억 명 이상이 아프리카처럼 가난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연간 2만 달러를 버는 6천만 명의 중국인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5% 미만이다. 중국 산동성 칭따오를 비롯한 몇 곳을 둘러보고 돌아 왔지만 나의 눈에 비친 도시와 농촌의 빈부격차는 여전하였다. 브리드먼은 말했다.
“현재 중국은 실업을 인내할 여력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이들의 원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중국은 6천만 명에게 세금을 더 거둬들여 나누어야 한다. 거둬들인 돈으로 군대의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해법은 인민들을 억압하는 것뿐이다. 중국은 내부경제(Internal Economy)가 없는 나라다. 유럽과 미국이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존립할 수가 없다. 그래서 중국은 외부세계의 인질이나 다를 바 없다. 중국은 수출 의존과 빈곤의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10년 내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만일 미국이 몰락하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시장을 발판으로 수출 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들도 함께 파탄에 이를 것이다."이 책은 한국경제계가 중국, 중국하면서 중국에 의존하는 ‘중국 대망론’에 경고를 던진 셈이다. 만일 미국의 일극지배가 끝나면 그 대신 중국이 1위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환상이다.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다극화는 미국을 제외한 일본, 중국, 독일 등 2위 이하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일일뿐이라고도 말했다.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를 지도하는 1위국가로 남을 것이라는 ‘죠셉 나이’ 교수의 지론과 죠지 브리드만의 '미 제국 500년 지속 설'에는 한 가지 분명한 근거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의 번영과 팽창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로마나 중국과 같은 왕조나 전제국가가 아니다. 미국의 최고 지도자를 뽑는 과정을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어떠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미국의 국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프론티어 정신이다.
미국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기업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레쥬의 표상이다. 미국의 위정자들은 선조들이 이루었던 문명을 내세워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정의와 평화의 새로운 제국을 향해 매진한다면 미국은 500년 이상 지도국의 위치를 견지할 것이라는 조지 브리드만의 주장에 나는 적극 동조하고 싶다.
그룹 05 > 사설·칼럼 0 페이지
11-10-17 08: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