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黃喜)정승의 초당(草堂)
남원학연구소 노상준
황희는 누구에게나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알려진 인물이며 조선초 세종때의 재상으로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여 세종의 가장 신임받는 조선조 최장수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도 때로는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한때 세자책봉문제로 태종의 오해와 정적의 모함을 받아 교하交河(지금의 파주)로 1418년에 유배되었다가 1419년 다시 그에 선영이 있는 남원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왕은 특별히 그의 어머니와 부인을 배소(配所)에 따라 가게 하였고 사헌부에 명하여 보통 죄인처럼 도사(都事)를 따라 보내지 않게 했다.
황희의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이며 조부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판강릉부사(判江陵府使) 군서(君瑞)의 아들로 태어났다.
황희는 훤칠하고 잘생긴데다가 눈이 부리부리하여 항상 눈을 감고 있다가도 한 번 딱 부릅뜨면 앞에 있던 사람은 누구도 마주보지 못할 정도로 무섭고 위엄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연보를 보면 그 뒤 서울 석정동으로 이사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국태민안을 이끄는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는 젊은 선비시절 들길을 가다가 농부가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것을 보았다. 좀 쉬어 가리라 생각하면서 밭을 가는 농부에게 무심히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농부는 선비의 소매를 끌고 소에서부터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서 귀에 대고 말하였다. “누런 소는 일을 잘하고 말도 잘 듣습니다만 검은 소는 일도 잘하지 않고 꾀만 부리며 말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였다. 선비는 이상하여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귓속말을 할게 뭐요?” 농부는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제 잘못을 이야기 하는데 좋아할 리가 있습니까?”
굳이 잘못을 이야기하여 불쾌하게 할 것까지야 없지요.
선비는 이 농부의 말에 크게 깨달아 그 후로 내내 언행에 조심하여 큰일을 이루었다. 그는 평생토록 이 농부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일거일동에 심사숙고한 조심성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전국의 장수 황씨는 20만명 정도이며 전북에서 황희정승이 배향된 서원은 남원 풍계서원, 장수 창계서원, 완주 용진서원, 진안 안천 화산서원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황희를 낳게 된 것은 황희의 아버지 황군서가 고려 말 유명한 승려 나웅대사가 잡아준 홍곡단풍(鴻鵠丹楓)명당(남원시 대강면 풍산리 뒷산 견바실)에 황균비(黃均庇/황희 조부)의 유해를 옮겼더니 그로부터 얼마 후 귀동자를 낳았는데 이가 곧 황희라고 한다.
황씨본관인 장수(長水)에는 장수황씨의 유적은 없으나 구전으로 전해 온 이야기는 장수읍 고기부락 뒷산에 황총(黃塚)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장수황씨 시조황경이 장수군으로 봉 받아 장수황씨 부족국가를 이루고 살았다는 기록이 장수군지에 있다.
지금 남원에서 예촌 제2지구에 황희가 귀양 와서 기거하였던 초당을 재현하고자 초가삼간을 건립 중에 있다. 그가 남원 귀양에서 풀려난 지 600여 년 만이다. 남원에서 유배생활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역사기록엔 아무것도 없다. 다만 향토지에 광통루(廣通樓)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가 기거하였던 집은 초당에 불과하였을 것 같다.
황희 정승의 남원 생활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시(詩)한 수가 그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청계상(淸溪上) 초당 외에 봄은 어이 늦었는고
이화 백설향에 유색(柳色) 황금란(黃金嬾)이로다.
만학운(萬壑雲) 촉백성중에 춘사망연하여라.
이 시의 내용을 보면 맑은 시냇물, 그 위에 초가삼간, 여기에 봄철이 찾아오니 눈같이 흰 배꽃은 향기가 싱그럽고, 푸른 버들은 누른빛을 띠어 장차 움이 트려는데, 먼 산에는 구름이 엉기고 두견새 소리는 처량만 하여 여러 가지 생각에 갈피를 못 잡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이 선하다.
황희가 남원에 귀양 온 뒤 요천강변의 초당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손님을 거절하고 하루 종일 다만 운서(韻書)만을 탐독하였을 뿐 누각을 짓는 등의 사치스런 생활을 없었던 것 같다. 당시 태종이 유배지에 보낸 오치선(吳致善)의 보고를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 태종이 차차 황희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 시작하여 세종 4년(1422)2월에 황희를 한양으로 불러 황희는 태종을 배알하고 유배생활을 끝냈다.
향토지에는 황희가 1419년 그의 선조이던 황감평(黃監平)이 일제(逸齊)라는 서실을 지었던 옛터에 누각을 세운 뒤 광통루(廣通樓)라고 하였다고 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된다. 후일 초당을 헐고 그 자리에 후손들이 광통루를 세웠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 후 1434년에 부사 민여공(閔汝恭)이 규모를 늘리었으며 1444년 전라도 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광통루에서 노닐다가 주위의 경치가 월궁(月宮)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 흡사하다고 감탄하게 되어 이때부터 광한루(廣寒樓)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황희는 오랫동안 영의정을 지내고 떠나신 만인(萬人)의 재상이다. 지금 그 분이 머물다 가신 자리에 조그마한 초당을 만들어 유배시 생활모습을 재연하고 추모의 장을 마련하여 청렴한 그 분의 인품을 배우고 올곧은 선비정신을 기리는 장소로 사용했으면 한다. 황희정승의 초당이 건립되면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남원의 위상도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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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6 13:46:27
